빛 좋은 개살구
시영아파트에서 살며 수중에 백 몇십만 원 있었던
시간강사 경력도 없었던 대학원생이었던 내가 정말???
이제 두 번 다시 자격운운하며 아이들을 내놓으라 할 수 없겠지.
나는 감격했고 감사했다.
하지만... 놀라지 마시라.
정규직 전환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정규직 전환 후 세금 공제 후의 월급이 26만 엔(현재 환율로 한화 250만원도 안됨) 정도였다.
1년 계약직일 때와 차이가 없었다.(정말 어이가 없네)
당장의 26만 엔이 문제가 아니었다. (보너스는 별도)
이 대학의 급여 체계는 1년에 5000엔 정도(한국돈으로 약 4만 5천원) 밖에 인상이 되지 않고
글쎄 55세가 되면 급여 인상이 멈추어 65세 정년까지 55세 때의 급여 그대로 받는다는 것이었다.
즉, 65세 정년퇴직 때 월급이 40만 엔(300만원대!)도 안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보너스는 별도)
뭐라고라고라???
여기서 정년까지 근무하며 애들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고 노후를 보내려고 했던 내 꿈은 ㅎㅎㅎ
정말 꿈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정직원 대학교수로 취직을 했어도
나 혼자서는 경제적으로 아이들을 키워내기 부족하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아이들의 양육을 위해서 남편이 보내주는 월 100만 원은 내게 너무나 중요하고 필요한 돈이었다.
남편도 사업이 어려운지 보내주는 날짜가 들쑥날쑥했다.
나는 매일 몇 번씩 돈이 들어왔나 확인하고 실망하는 일을 반복했다.
정규직 전환이 된 후 나는 아이들의 학교에서 가까운, 각자의 방이 있는 월셋집으로 이사를 했기 때문에
월세를 내고 나면 생활이 빠듯했고, 저축은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게다가 내게는
박사학위 취득이 남아있었다ㅠㅠ
지도교수님은 박사학위를 절대 포기해서는 안된다며 정기적으로 푸시를 하셨다.
직장에 적응하면 바로 복학해서 박사논문을 제출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새로운 과목들을 맡게 된 나는 매일매일 수업준비하고 수업하느라
날짜가 며칠인지, 어느 계절인지조차 느끼지 못했다. 복학은커녕 휴학을 연장했다.
과중한 업무, 자라나는 아이들, 박사학위 취득을 위한 학회지 논문 투고...
아토피 증상은 더욱 심해져 팔다리 몸뿐 아니라 얼굴까지도 번져갔다.
그래도 일이 없고 월급이 없을 때를 생각해야지.
아이들 내가 못 키울 뻔했잖아.
감사함을 잊어선 안돼.
이런 생각을 계속하면서도 너무 지치고 벅차서
나는 박사논문 한 줄도 쓸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주여, 나를 도우소서. 나를 구해주소서.
A대학에 근무할 때는 돈이 없어서 근처에도 못 가본 식당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