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님의 은밀한 사생활
아이들과 함께 일본에 온 지 10년 만에
남편과 별거한 지 5년 만에
코로나시기였던 2020년 나는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를 받고 난 후 1년 동안
나는 오랜 시간 기다리게 했던 아이들에게 온 정성을 쏟았다.
매일 아이들이 좋아할 요리를 했다. (나는 요리하는 것이 싫다 싫다 싫다 싫다 ㅋ)
매일 아이들을 상냥하게 배웅하고 반갑게 맞았다.
매일밤 아이들과 뉴스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웃었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평화롭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약 1년간 모든 수업을 비대면으로 할 수밖에 없었는데.
나는 대부분의 수업을 zoom으로 진행하였다.
청소기를 돌리다가 시간이 되면 컴퓨터를 켜고 수업을 했다.
립스틱만 바르고 조명을 밝게 하면 공들여서 메이컵을 한 것처럼 보였다.
하의는 집에서 입는 헐렁하고 편안한 바지를 입고 상의만 깔끔한 블라우스를 입어도 충분했다.
수업이 끝나면 바로 누워서 쉴 수도 있었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안락함과 여유를 느꼈다.
물론 아이들이 사춘기인데다가 코로나 시기에 학교에 갔다가 못 갔다가 하니 짜증도 늘고
둘이 서로 싸우고;;; 아이들 돌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나는 수업준비 이외의 어떤 공부도 연구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개월 지나자 그동안 나를 끔찍하도록 고통스럽게 했던 아토피가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했다. 매일 밤 올라오던 두드러기도 잠잠해졌다. 내친김에 꽃가루 알레르기 면역 치료도 꾸준히 했다.
밤에는 해변을 뛰기도 하고 혼자서 공원을 산책하기도 했다.
코로나 시기에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것이 일본에서 늘 긴장하며 살 와왔던 내게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아이들과 이곳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얻고자 노력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적을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동안 직장에서도 교회에서조차도 상황을 파악하여 맞추고, 특히 말을 조심해 왔다.
하루에도 몇 백 명씩 마주해야 하고, 보이고 평가받는 직업인 교수가 된 다음엔 더더욱 튀지 않으려고 애썼다. 연구회나 학회도 직접 갈 필요가 없고 온라인상에서도 카메라를 끄면 되니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애써 웃을 필요도 없고 분위기 파악해서 조심할 필요도 없었다.
내 인생에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아... 이렇게 계속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무능력하다며 아이들을 키우지 못할 거란 소리를 이 세상 누구에게도 듣지 않아도 된다.
정년까지 건강하게 일하면서 아이들을 대학 보내고 내 노후를 준비하고 싶다는 희망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충분히 실현 가능해졌다.
남편은 나와는 거의 연락하지 않았지만 아이들과는 자주 통화하며 소통하려고 애썼다.
나는 남편에게 이사나 전학, 아이들의 교육비 등에 대해 카톡으로 여러 번 연락을 했지만
대부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남편은 내가 대학에서 정규직 교수(전임강사)가 된 줄은 모르는 것 같았다. 시간강사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사업이 좀 안정이 되었는지 몰라도 첫 째가 사립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생활비를 꽤 보내왔다. 감사했다.
그렇게 나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서서히 되찾아갔다.
인생 처음으로 경제적으로도 조금씩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정말 그와 마주해야 한다.
벌써 별거를 시작한 지 6년이 흘렀다...
맛있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