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5년 후, 드디어 박사학위를 받다
내게 B사립대학 교수로 부임한 2019년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행운 가득한 시간이었음에는 틀림없지만
끝없는 긴장과 불안으로,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를 경험한 시간이었다.
적게는 10명, 많게는 150명의 학생들 앞에서 모국어가 아닌 일본어로 전문적인 내용을 가르쳐야 하는 내가 긴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몇 백개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나는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스스로를 배우라고 생각하고 강단을 무대라고 생각했다. 내가 준비한 수업내용은 대본이라고 생각해서 나는 수업 전에 여러 번 소리 내어 읽으며 리허설처럼 수업을 준비했다.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면 나는 마음이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도 같이 들렸지만 늘 기도하면서 어깨를 펴고 웃는 얼굴로 강단에 올라갔다.
나는 배우다. 준비하고 연습한 대로 최상의 퍼포먼스(수업)를 펼치는 거야!
수업과 업무... 아이들을 돌보는 것뿐 아니라 나는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 복학을 한 상황이었다. 나의 싸움은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강제적으로라도 나의 뇌와 몸을 쉬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고 본능적으로 느끼면서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대학교도 출입이 통제되고 모든 수업은 비대면으로 바뀌었다.
모든 회의와 연구회, 학회도 올스톱이 되었다.
모든 수업의 자료를 비대면 형식으로 바꾸는 것이 큰 부담이 되었지만
나는 철저히 사람들과의 거리 두기를 실천하며 최대한 몸을 사렸다. 그리고 조용히 박사논문과 마주하는 것에 집중했다.
아이들에게도 딱 6개월만 더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들은 사춘기라 이래저래 집이나 학교에서 불만을 느끼고 더욱더 정서적으로 돌봐야 할 때였다. 어서 학위를 받고 아이들과 편안해지고 싶었다.
그리고 사실 불안감을 줄이는 데는 힘썼지만 불면증은 그대로 두었다.
왜냐면 불면증을 이용해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논문수정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요리와 청소, 장보기 등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박사논문도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나
2020년 여름, 나는 드디어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가족도 친구도 아무도 축하하러 오지 않았지만 괜찮았다.
지도교수님과 몇몇 후배들과 찍은 사진엔 나를 제외하고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2010년 여름에 와서 딱 10년 만에, 남편과 별거하고 난 후 딱 5년 만의 일이었다.
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