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on Dec 27. 2018

<서버비콘> 해석(스포일러 포함)

요즘 연말이라 정신이 없네요. 얼마 전에 영화를 몰아서 보았습니다. 그 중 한 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영화의 이름은 <서버비콘>입니다.

왓챠를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평이 안 좋더군요. 코멘트를 몇 개 읽어보았습니다만 납득이 가는 것도 있고 가지 않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감독인 조지 클루니가 생각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이해한 <서버비콘>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50년대 '서버비콘'이라는 백인들만 살고 있는 마을입니다. 이 마을에서 살고 있는 백인 가족과 이 마을로 이사 온 흑인 가족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내용입니다. 흑인 가족이 이 마을로 이사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흑인들이 본인들의 마을에 이사가 왔다는 사실들을 알고 마을 주민들은 난리가 납니다. 마치 불길한 어떤 것이 마을에 침입한 것처럼 분노와 두려움을 담아서 그들을 주시합니다. 이렇게 흑인 가족을 배척하는 분위기 속에서 니키의 엄마와 이모는 니키에게 흑인 아이 앤디와 야구를 같이 하고 오라고 합니다. 니키는 귀찮아하면서도 앤디에게 야구를 같이 하자고 하지요. 그리고 그 날밤 니키의 집에 괴한들이 쳐들어옵니다. 짙은 밤 사람들이 마을 밖으로 나와 있는 연출과 흑인 아이와 백인 아이가 같이 논 당일 밤이라는 시점은 이 괴한들을 KKK단의 일원이 아닐까하는 의문을 들게합니다. 또는 마을 사람들이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따지러 침입한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괴한들에 의해서 니키의 엄마가 죽습니다. 백인 아이가 흑인 아이와 야구를 좀 했다고 해서 그게 부모가 죽을 만큼 잘못된 일인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불쾌감이 듭니다. 그리고 날이 밝고 가드너에게 유감을 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불쾌감을 넘어서 섬뜩함까지 느꼈습니다.

로즈의 죽음은 가드너와 마가렛의 공모에 의해서 벌어졌습니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그런데 사실 그게 아니었습니다. 가드너의 집에 침입했던 괴한들은 마을 사람들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고, 오히려 가드너가 보험금을 타고 처제인 마가렛과 결혼하기 위해서 가드너가 고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가드너는 여러 곤란한 상황에 빠집니다. 고용했던 괴한들이 직장으로 쳐들어오거나 보험조사원에게 이 일을 들키는 등의 여러 사건이 터집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니키가 목격합니다. 범인을 앞에두고 범인이 없다고 말하는 가드너와 마가렛, 가드너와 마가렛의 불륜 등 니키는 모든 것을 목격합니다. 이제 니키에게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앤디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앤디의 가정은 집 주변에 울타리를 치고, 울타리 너머에서는 24시간 마을 사람들이 그들에게 욕설을 날리고 있는 상황이었죠. 

이제 결말을 이야기해봅시다. 보험 조사원은 가드너와 마가렛을 협박하려다 도리어 죽습니다. 가드너가 시체를 버리러 간 사이에 괴한들이 다시 침입합니다. 한 명의 괴한은 가드너를 쫓아 가다가 구급차에 치여 죽고, 다른 한 명의 괴한은 마가렛을 죽이고 니키를 죽이려하다가 니키에게 연락받고 온 니키의 삼촌에 의해서 죽습니다. 그리고 니키의 삼촌 역시 이 과정에서 칼에 찔려 죽습니다. 가드너가 돌아와서 이 참상 속에서 니키를 설득하다가 마가렛이 니키를 독살하려고 만들어두었던 샌드위치를 먹고 죽습니다. 이 사건들이 벌어지는 동안 서버비콘은 앤디의 가정을 내쫒기 위한 폭동 중이었습니다. 폭동의 결과 앤디의 아빠는 패배를 인정합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혼자 남은 니키는 앤디와 야구를 하러 나갑니다. 취재를 온 방송국 카메라의 앞에서 서버비콘의 주민은 흑인들이 이 마을에 와서 가드너 집안에 불길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말합니다. 

서버비콘 마을의 유일한 흑인 가정인 앤디의 집은 보이지 않게 울타리가 둘러쳐졌고 울타리 밖에서는 24시간 주민들이 위협합니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하지만 아시겠지만 이 주민의 말은 논리적으로 굉장히 모순되어 있습니다. 흑인 가정은 감정적이든 물리적이든 배척받아서 서사의 귀퉁이에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이 가정을 몰아세운 것은 서버비콘의 주민들입니다. 당연히 가드너 집안에서 일어난 사건에 흑인 가족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다만 시기상 때마침 사건이 벌어졌을 뿐입니다. 우연히도 흑인 가족이 서버비콘에 이사 온 날 가드너의 부인인 로즈가 누군가에게 죽었고, 우연히도 흑인 가족을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난 날 니키를 제외하고 가드너 집안 사람들이 살해됐습니다. 이것은 단지 동시에 벌어진 사건일 뿐 흑인 가족과 가드너 집안의 비극은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가드너는 이미 로즈를 교통사고로 해치려 했지만 실패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은 흑인 가족의 이사와 로즈의 죽음이 전혀 무관한 별개의 사건임을 관객에게 증명합니다. 하지만 서버비콘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설명하겠습니다. A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A에게는 B라고 하는 이웃이 있습니다. A가 우연히 출근을 하다가 B와 마주쳐서 인사를 하는 날 직장 상사에게 혼이 납니다. 우연히도 직장 상사에게 혼이 나는 날 몇 번 B와 마주쳤습니다. A는 B와 마주쳤기 때문에 직장상사에게 혼이 났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두 사건은 전혀 논리적 인과관계가 없습니다. 직장상사가 A를 혼내는 이유는 B와 마주쳤기 때문이 아니니까요. 그저 별개의 두 사건일 뿐입니다. 하지만 A는 B와 만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징크스입니다. 이제 B에 몇 가지 속성을 붙여봅시다. 흑인이나 동성애자, 장애인 등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이러한 속성이 붙는다면 A는 B의 이러한 속성 때문에 자신이 직장상사에게 혼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A는 B에게 붙는 속성군(群)의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갖겠지요. A에게 벌어진 일은 B와 전혀 상관이 없으며, 특히 B가 가지고 있는 속성과는 아주 별개의 것임에도 말입니다. 이 예시를 보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실제로 이런 문제는 역사 속에서 의외로 많이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에게 학살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재일조선인의 존재는 관동 대지진과 어떤 인과관계도 없으며 논리적으로 전혀 무관합니다. 하지만 관동 대지진의 여파로 관동 대지진 학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때 퍼졌던 이야기로는 조선인들이 관동 대지진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처구니없지만 실제로 이런 유언비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습니다. 이 글을 쓰려고 찾아보니 관동 대지진 2년 전에 이판능이라는 조선인이 일본에서 벌인 연쇄살인이 이슈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에서 범인이 가지고 있던 조선인이라는 속성에 대해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무논리적인 적대감의 표출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서버비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흑인 가족은 영화 시작때 등장한 이후 계속해서 서사 변두리에 있었습니다. 서버비콘 주민들이 그들을 몰아세웠고, 구속하여 사실상 집안에 가두어 놓았지요. 가드너 가족과의 접점은 두 가정의 아이인 니키와 앤디가 평범한 이웃끼리의 우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 뿐입니다. 가드너 집안의 사건은 모두 가드너의 욕심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앤디는 로즈를 죽인 범인을 앞에 두고도 없다고 말하는 가드너와 마가렛을 목격합니다. 영화 속 앤디는 목격자입니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그렇다면 어째서 서버비콘의 사람들은 가드너 가족에게 벌어진 비극을 흑인 가족과 엮어서 생각을 할까요? 그리고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답을 제시하는 것이 니키입니다. 여기서 니키는 포지션은 목격자입니다. 이 목격자는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을 말합니다. 니키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닙니다. 모든 사건에 연관되어 있습니다만 항상 중심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의 행동은 어떤 변화도 불러오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건의 모든 것을 목격하지요. 니키의 시선에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이 부재합니다. 이 어떤 것은 사람들에게 객관적인 시선이 아닌 주관적인 시선을 강요하게 하는 어떤 것입니다. '거리'라는 표현으로 이것을 설명해볼까 합니다. 니키에게 최초로 일어난 비극은 로즈의 죽음입니다. 그리고 그 범인은 가드너지요. 니키는 여러가지를 목격하며 그 사실을 알게 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가까운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생긴 다른 누군가로 빈자리가 채워지려 합니다. 이것은 마치 햄릿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의 변주 같습니다. 그리고 니키에게 불안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불안이 니키에게 모든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합니다. 시선은 가까울 때가 아니라 거리를 둘 때 객관적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모든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목격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객관적인 시선을 가진 니키는 울타리를 넘어 앤디와 우정을 나눕니다. 제가 생각할 때 감독은 니키를 통해서 모든 편견을 버리고 본다면 니키와 앤디와 같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요? 

서버비콘 마을에서 앤디에게 호의를 가지고 다가온 것은 니키뿐입니다. 출처 : 다음 영화

저의 해석은 여기까지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쁜 영화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지 클루니라는 배우가 감독으로서 연출능력도 만만치않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제가 이 영화의 평점을 낮게 준 것은 멧 데이먼이라는 배우의 존재 때문입니다. <본 시리즈>, <굿 윌 헌팅> 등으로 인해 제 머릿속에 있는 멧 데이먼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는 먼치킨의 이미지인데 괴한들에게 협박받는 장면을 보면서 몰입감이 깨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배우들이 이미지 변신을 중요시하는 이유겠지요. 그렇기에 감독은 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고려하여 배우를 선택하는 것일 겁니다. 맷 데이먼이 무력하게 얻어맞는 장면들을 볼 때 몰입감이 깨지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주 괜찮은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 남자 왜 저렇게 절절하게 사과하고 있는 걸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