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전시를 보러 다니는 것을 좋아합니다. 토요일에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으려하는 몸을 이끌고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예전에 은사님 중 한 분이 언급했던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 전시를 보자고 마음먹기는 한참전이었지만 이제서야 다녀왔네요.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 아직 다녀오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꼭 다녀오시길 권해드립니다. 이 정도로 질과 양을 모두 만족시키는 전시는 흔하지 않습니다. 현재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과 <황금인간의 땅, 카자흐스탄>을 패키지로 예매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패키지를 구입해서 다녀왔습니다. 체력에 자신이 있으신 분들은 구입해서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의 볼거리가 너무 많아서 저는 3~4시간을 보았습니다. 나오니 지치더군요. 그래도 거기까지 간 김에 <황금인간의 땅, 카자흐스탄>까지 보았습니다. 이 두 전시를 보고 나니 느끼는 바가 있어서 몇 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저는 문화콘텐츠학 전공자입니다. 비록 세부 전공이 전시가 아니기 때문에 이 분야를 자세히 공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일단 전공이 전공인지라 조금 공부한 바가 있어서 전시를 볼 때 기획이나 동선 같은 것을 좀 따지는 편입니다.
이런 면에서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은 정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전시입니다. 아픈 역사로 인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고려의 유물들을 모아서 여는 전시라니, 마치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볼 수 밖에 없는 전시죠.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다시 이 유물들이 다 모여있는 전시를 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으니까요. 시기도 훌륭합니다. 이번 정부는 남북 평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의 도성이던 개경(현재 개성 직할시)은 휴전선 이북, 북한에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다운 현재 국제 정세를 잘 반영한 전시라고 하겠습니다.
전시 구성도 훌륭합니다. 입장하면 당시 세계 속에서 고려의 위상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유물이 있습니다.
이후에는 개경과 황실 문화에 대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당시에 개경이 국제 도시로서 얼마나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는지, 얼마나 많은 나라에서 얼마나 여러 종류의 물류들이 개경으로 들어왔는지를 보시게 되면 정말 놀라우실 겁니다.
이후에 찬란하게 꽃피웠던 고려의 불교 문화에 대한 전시를 보실 수 있습니다. 부드러움과 단아함, 화려함이 어우러져 있는 당시의 불교 유물들은 정말 말그대로 지금도 찬란히 빛나고 있습니다. 인상깊은 것은 교과서에서 많이 봤던 수월관음도가 한 종류가 아니라 정말 몇종류의 수월관음도를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교과서에서 항상 한 종류의 수월관음도만 보여줬지만 수월관음도마다 각각의 특색들이 있어서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후에는 고려 디자인의 세련됨을 감상하시실 수 있습니다. 비색만으로도 너무도 단아하고 아름다운데 비색에 흑색, 백색, 적색까지 조화롭게 어우러져 꾸며지는 청자는 현대의 디자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미적 가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천년의 시간을 넘어서도 아름다울 수 있기에 '미'라고 하는가 봅니다.
이 전시가 트렌드나 현대의 분위기 등 많은 것을 고려했다고 느낀 가장 큰 이유는 불교 전시와 지옥에 관한 전시를 분리하여 지옥에 관한 전시를 '신과 함께'라는 이름으로 구역을 나누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최근 영화 '신과 함께'가 선풍적인 흥행을 하면서 이를 의식한 것은 아닐까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황금인간의 땅, 카자흐스탄>전은 사실 하는 줄도 몰랐기 때문에 별 생각 없었는데 표를 사려고 보니 하고 있길래 간 김에 본 전시입니다. 일단 제 감상은 굉장히 불친절하고 관람객에 대한 고려가 없는 전시였습니다. 처음에 입장을 하면 최근에 발굴되었다는 황금인간의 복장의 크게 전시되어 있고 그 복장에 대한 황금으로 된 장식품들이 주변에 흩어져있습니다. 각 유물마다 번호가 매겨져있는데 그 번호는 제멋대로라서 2번 옆에 50번이 있고 그 옆에 25번이 있는 식입니다. 리시버에서 유물 설명은 번호순서이기 때문에 자기가 유물번호순으로 찾아서 보든가 아니면 리시버를 조작하며 찾아서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유물 설명을 보려면 QR코드를 찍어야하는데 이게 생각외로 짜증이 납니다. 몰입도 방해되고, 많이 귀찮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들어가보더라도 별 설명이 없습니다. 번호마다 QR코드가 매겨져있는데 좌우가 다른 유물도 별개의 번호가 매겨져있어서 실제로 들어가보면 아까 그 유물이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리시버에서 해주는 설명과 QR코드에서 써있는 유물 설명이 다른 경우도 있었는데 참 난감했습니다.
2부로 넘어가면 저희가 익히 알고 있는 전시공간이 나옵니다. 그때부터는 볼만했습니다. 저를 스쳐지나가시던 관람객 분들 중 하나는 도록을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시면서 가시더군요. 잘 사셨기 바랍니다. 저는 그냥 빨리 보고 나가고 싶더군요.
이 두 전시를 보면서 결핍은 두 가지의 상반된 감정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는 안타까움입니다. 태조왕건상 전시에 대한 협상이 불발되면서 태조왕건의 스승인 희랑대사상 자리 옆에 공석으로 남아있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시대를 초월한 스승과 제자의 만남을 계획했지만 현실의 장벽에 좌절되는데서 오는 안타까움은 분명 부정적인 감정일 수 있지만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분들만의 공간에서 빈자리가 주는 쓸쓸함과 외로움이 나름 멋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관람객에 대한 고려의 결핍에서 나오는 짜증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건 순수한 짜증으로 다음 전시에까지 제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전시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보는데 그 이후의 전시가 순수하게 좋게 느껴지지 않겠죠.
전시도 콘텐츠입니다. 그리고 콘텐츠는 소비자의 니즈와 원츠를 고려하여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획과 디자인이 필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