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 - 그 농밀한 기억 15- 12
사람들이 그렇게도 갈구하는 행복은 어디에 있는 걸까? 골드러시를 따라 미 서부로 향했던 그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찾았을까. 공자는 행복을 궁금해하는 제자에게 ‘행복은 없다’고 명료하게 일렀죠. 더하여 ‘인생에는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공자가 말한 행복은 눈이 혹할 보석 같은 게 아니었습니다.
바위 밑 은밀한 곳이나 화려한 샹들리에 속에 숨겨진 것도 아니고, 우리가 사는 일상생활 속의 그 사소한 것들, 그 일상에 흐르고 있음을 말하려 한 것으로 내 나름 주석을 달았습니다. 행복은 더 이상 파랑새도 아니고 신기루도 아닌, 바로 우리의 일상 속에 흘러갑니다. 매일 우물에 나가 물을 길어 올리듯 행복도 기쁨도 일상이란 우물에서 때마다 순간순간 길어 올려야 합니다.
나이가 들면 외롭다고 합니다. 돌아보니 그 많고 아름답던 내 일상들이 허공에 흩어졌기 때문입니다. 내게는 우주의 어느 시간보다도 값진 것들입니다. 그 많은 날들을 되돌릴 수 없고 함께 할 수 없으니 쓸쓸한 것이겠지요. 자식들로 들썩이던 집안은 소산 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흐릅니다. 전화도 오고 주말이면 찾아주니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지만 그마저 옛일입니다. 가깝게 살던 막내마저 지난봄 본사가 이전한 진주로 내려갔습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옛말이 떠오릅니다. “마음이 지척이면 천리도 지척이고, 마음이 천리면 지척도 천리다”라는 말. 예나 지금이나 세상사 이치가 어쩜 그렇게 한 점 한 획도 틀리는 게 없을까. 형제간의 소통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통화를 해도 쉽게 대화거리가 궁해집니다. 전 같으면 자식 걱정에, 자기 자랑에, 줄줄이 엮겠지만, 같은 처지인 빈 둥지끼리 나눌 것은 그저 서로의 건강 걱정이나 해주면 끝이죠.
흉허물이 없는 후배와 만났습니다. 슬하에 두 딸을 두었는데 다들 공부를 잘해 해외에 살고 있습니다. 큰 딸은 사위와 함께 독일에서 어렵게 학위를 따고 현지에 눌러앉은 지 벌써 11년째랍니다. 대학 정교수가 되는 게 꿈인데 아직도 넘을 고개가 많다고 합니다.
둘째 딸은 미국에서 학위를 받아 스위스에 있는 유엔 산하의 국제기구에서 일한답니다. 직장은 좋아 보이는데 사는 것은 생각만큼 삼빡하지는 못한 모양입니다. 게다가 코로나 덫에 빠지면서 허술한 유럽의 민낯을 목도하고는 마땅한 자리가 나면 한국에 들어오고 싶어 한답니다. 치안, 대중교통, 특히 의료 시스템에서는 한국만 한 곳이 없다는 거죠.
처지가 비슷해 둘이 만나면 자식들 얘기가 격의 없이 오갑니다. 그와 만나고 온 날엔 미국과 일본에다 각기 둥지를 튼 자식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아들 걱정을 하다가 맺는말은 늘 알아서들 잘하겠지. 잠에서 깨나면 오늘은 손자가 화상통화라도 줄려나?
“그래, 이번 주는 시험이라고 했지. 할아비가 깜박했다. 그래 공부 열심히 해야지.”
하며 생각을 접습니다.
다시 생각은 딸네를 향합니다. 일본에 있는 둘째는 지난 통화에서 아이 교육이 힘들다고 넋두리하던데. 일본은 우리네 대학에 가는 것만큼 중학교 입학이 지옥문이라고 하던데.
“얘야, 어쩌겠니. 타지도 아니고 타국인데. 각오하고 살아야지.”
힘든 생활이 한눈에 선해 보여도 이젠 아비로서 할아비로서 도와줄 것이 없구나. 그저 잘 되기만 기도할 뿐입니다. 하루 삼시 세끼와 잠잘 때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자식들을 위해 눈을 감아 기도합니다.
제 둥지를 찾아간 자녀들한테 옛 일상을 더듬자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비가 되어서 넋두리만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것이 인생이 거쳐야 할 여정으로 받아들입니다. 마음의 평안을 위해 눈을 감고 명상의 시간을 갖습니다. 늘 아쉽고, 부족하고, 늘 그리움이 많은 게 우리네 인생입니다. 그래도 남은 인생이 있고 걸어야 할 길이 있고, 일상이 이어지는 한 희망이란 새 한 마리 날아와 내 어깨에 앉아 주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마다 간절해지는 것은 하늘의 은총입니다. 그 분만이 내 남은 생의 삶의 무늬를 함께 짜 주실 분입니다. 빈 식탁의 자리를 채워주고 내가 입술을 열어 기도하면 반겨 주시지요. 성경을 펴면 말씀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자고 합니다. 예전에 느끼지 못한 행복감을 느끼는 건 이때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한 식탁의 축제는 흩어진 지 오래여도, 식탁의 감사는 오늘도 노을만큼 아름답습니다.
저녁 하늘이 노을에 물들었다 함은 내일 아침이 찾아온다는 증표입니다. 특별한 것은 없더라도 내일이란 것에 기대를 겁니다. 혹시 모를 일. 생각지 않은 귀한 손님이라도 찾아올지, 아직은 여기저기 연락할 사람들이 남았으니까요.
창밖 노을이 아름다운 사랑과 그리움이 절은 집에서, 가족들의 기억이 숨 쉬는 공간에서, 커피 한 잔 탁자 위에 놓고 고 장영희 교수가 남긴 ‘영미시 산책’을 폈습니다. 타고난 장애와 세 번의 암 투병 속에서도 삶의 희망을 노래했던 그녀의 영미시 해설은, 지금 읽어도 생각을 맑게 해 줍니다. 그가 유독 좋아한 월트 휘트먼의 시 ‘나의 노래’가 이젠 나의 노래가 되었죠.
❝고뇌는 내가 갈아입는 옷 중 하나이니, 나는 상처 받은 사람에게
기분이 어떤지 묻지 않는다. 나 스스로 그 상처 받은 사람이 된다.❞
(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