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전 상서

Family - 그 농밀한 기억 15- 14

by 이관순


유품에서 나온 아버지 편지를 읽고 북받쳐 운지 30년입니다. 종이는 누렇게 바랬어도 한 땀 한 땀 써 내린 볼펜 글씨엔 아직도 아버지의 인자가 촉촉하고, 내 배내옷을 들고 체취를 맞던 그 모습이 선연해 찌르르 아들 가슴에 전류가 흐릅니다.


어느새 아들이 아버지가 떠나시던 그 나이가 되었습니다. 연초에, 가신 후 처음으로 아버지를 생시처럼 꿈에서 뵌 후 저도 아버지처럼 제 아들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글을 써두었습니다. 아들이 아비 유품에서 편지를 쥘 때면 저 역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 곁으로 가 있겠지요. 아들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아들아, 울 것 없다. 대단한 일 아니다. 때가 되어 갈 뿐이다. 낙엽이 지면 그 위로 흰 눈이 덮이고 계절이 바뀌면 그 자리에 새 생명이 싹을 올리거늘, 무엇이 슬퍼할 일이더냐. 생명의 질서일 뿐”이라고 일렀습니다. 삶이란, 한 조각의 구름이 생겼다 사라지는 것이니 애석해하지 말라고요. 죽음 역시 인생의 한 부분임을 깨달으면 삶을 더 여유롭게 성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나는 옛날 사람’이라고 자신을 낮추셨지요. 지금은 제가 셈법이 빠른 요즘 아이들 총기 앞에 몸을 낮춥니다. 코로나19가 창궐할 때는, 이 참에 요양원에 계신 노인들 다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소리도 들어보았습니다. 사람이 부대끼고 접촉하며 살아야 하는데, 인터넷, SNS 같이 접속에만 능한 아이들이다 보니 딱히 탓할 일도 아닙니다.


저보고 ‘넌 책 줄이나 읽었으니 잘 헤아리며 살 거다’ 하셨는데, 그 말씀은 아버지가 틀리셨습니다. 세상사 막막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같더군요. IMF 때 구조조정을 당한 후, 한동안 집에 말도 못 하고 남산으로 출근할 때, 친구 보증을 섰다가 날벼락을 맞을 때, 전 허깨비에 마른 수수깡임을 알았습니다. 그 앞에 세상의 지식과 앎이 얼마나 허접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인생을 살며 ‘구할 것은 화해이고 용서’라는 것도 깨쳤습니다. 겨울이면 난방비를 줄이려고 주유소에서 20리터 플라스틱 통에 기름을 실어 날랐습니다. 제가 자동차로 실어 오면 어린 아들과 함께 4층까지 들어 올렸습니다. 그때는 아이의 도움이 아비에게 뿌듯함을 안겨주었는데 세월이 흐른 뒤, 그것이 아이에게 힘에 부친 일임을 알았습니다. 어느 명절인가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얘기 끝에 아들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어려서 기름통 들어 올리느라 키가 자라지 못했다고···.


아들은 재미로 말했겠지만, 실없는 농담 사이로 활짝 핀 숯불이 가슴에 얹힘을 느꼈습니다. 예리한 철필에 가슴이 찔리는 아픔과 슬픔이 따랐습니다. ‘그럴 수 있었겠다. 무식한 아비였구나.’ 이후로 아들의 키를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곤 했지요. 실수는 또 있습니다. 아이를 체벌로 다스려서는 안 되는 걸 알고도 아픔을 주었습니다. 부모라면 다 겪는 일, 돌아보면 한 때 과정인 것을. 이를 부박한 아비가 몰랐습니다.


“아비처럼 속 끓이고 애태우며 살지 말라고, 눈물 삼키며 살 일 없다”라고 하신 당부도 따르지 못했습니다. 수술실로 아이를 들여보낼 때는 천하를 잃는 것 같았습니다. 면허 없는 아이가 차를 끌고 나가 사람을 상하게 했는데, 세입자가 못 나가겠다 버티는 통에 마음 약한 제가 돌아서야 할 때는 도리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안아 키우지 못한 것도 후회스럽습니다. 좋을 때는 좋아서, 나쁠 때는 더 사랑한다고 말하고 안아주었어야 했는데···. 그래서 손 자녀는 하루에 열 번도 안아주고, 사랑한다며 살뜰히 살을 비빕니다. 고마운 것은 할아버지의 자립심을 닮은 아이들입니다. 둘 다 잘 커줘 스스로 짝을 짓고 사람 구실 하며 앞가림하는 두 아들이 제겐 훈장입니다. 언젠가 아버지 앞에서 말할 저의 자랑거리가 되겠죠.


“부질없는 것이 욕심이고 재물”이라고 하신 말씀은 평생 금과옥조로 삼았습니다. 재벌이나 고관대작인들 죽어 무엇을 들고 갈게 있겠습니까? 남는 건 쌓은 덕이고, 뿌려놓은 사랑뿐인 것을. “아침마다 ‘참을 인(忍)’자 열 번씩 쓰고 나가라.” 아버지가 제게 하신 그 말씀을 실천하면서 인생을 배웠습니다.


운명은 할퀴고 인생은 버티는 것이라는 이치도 알았습니다. “비바람, 천둥 번개에 몇 번 놀라고 가슴을 쓸어내려야 대추알이 붉어진다”라고 하신 말씀. 아이들은 깨지고 부러지고 상처가 나고, 덧나기를 거듭하면서 크고 야물어진다고 하신 말씀은 진리였습니다.


“인생을 비굴하게 살지 말라.” 고도하셨지요. 그것이 왜 인간의 존엄을 갉아먹는 부박한 행동인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이들에게, 남보란 듯이 살려고 버둥대지 말라. 게걸스럽게 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뿔나게 잘 난 사람 없으니, 나답게 살면 족하다고 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제자리를 지키는 일이며, 내 삶이 남에게 그늘을 주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고 일렀습니다. 큰 나무가 잘나 보인다 해서 우쭐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말했습니다. 제 몸통이 만든 그늘로 인해 자라지 못하고 눌려 있는 어린 나무가 없는지 늘 살펴 살라고 했습니다. 아들에게 운명은 수레바퀴처럼 돈다고 타일렀습니다. “오늘은 바퀴 위에 있지만 내일은 바퀴 아래에 있는 것이 삶이니, 아들아 세상사에 일희일비하지 말라.”라고.


백화난만한 봄길도 걸어보고, 녹음방초 우거진 뜨거운 여름도 살았고, 노을로 불타는 가을 산천을 즐겨도 보았고, 세한(歲寒) 언덕에 청청한 솔의 인고도 겪었으니 후회하고 아쉬워할 것이 없습니다. 이만하면 자랑은 아니어도 눈살 찌푸릴 삶은 살지 않았으니, 아들에게 아비의 죽음을 슬퍼할 이유가 없다고 마무리했습니다. 일생을 남에게 손가락질받지 않고 좋은 친구, 좋은 이웃으로 살다가는 평범한 사람의 삶이 비범한 것임을 아이들은 알 테니까요.


이제 저도 돌아갈 본향 집을 늘 머릿속에 담고 살아갑니다. 복사꽃 능금 꽃이 피는 텃밭에서 철 따라 맺는 열매를 따 제 입에 넣어주시던 아버지. 이팝나무가 흰 꽃을 활짝 피운 창밖을 보면서 저도 아버지처럼 정신이 청연 할 때 아이들에게 남길 마지막 말도 준비했습니다.


너희들과의 만남이 축복이었다···.

나를 행복하게 해 주어 고맙다···.

함께 한 세상이 즐거웠다···.


끝으로 생전에 멋쩍어서 못 했던 말씀을 늦게나마 올리고 싶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날로 더 귀하신 이름 아버지... 아버님 전 상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