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통의 시간에 신은 어디에...

[5] 이관순의 손편지

by 이관순

내 고통의 시간에 신은 어디에 계신가요? 누구나 한 번쯤은 ‘신(神)의 존재‘에 대해 물음을 던져봤을 법합니다. 사회윤리가 뒤틀리고 불의가 갈수록 창궐하는 지금, 그 물음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그동안 인문과목으로 만나온 분들에게 “한 번은 신과 인간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해,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치열하게 사색해 보자.”고 권합니다. 그리고 텍스트로 책 한 권을 소개하기도 하지요.


막부시대의 가톨릭 박해사건을 소재로 다룬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소설 ‘침묵(沈黙)’(1982. 홍성사)입니다. 내게는 어떤 신학 서적보다도 더 절실하게 실존의 무게를 안겨준 책입니다. 작가 엔도 슈사쿠(1923-1996)는 이 소설로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올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침묵’ 때문에 받지 못하는 역작용을 부른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기독교의 일본 선교는 16세기에 시작될 만큼 우리나라보다 크게 앞서 시작되었지요.


1614년 도쿠가와 막부(幕府)가 금교령을 실시하자 일본 땅은 삽시에 얼어붙었습니다. 나가사키에서 26명의 사제와 신도가 화형으로 처형됨을 시작으로, 곳곳에서 수많은 신도들이 고문 받고 학살을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침묵’은 이 광란의 시기에 나가사키 북쪽의 바닷가 마을 소토메(外海)를 배경으로 삼고 있지요.


일본 관헌들은 숨은 신도들을 가려내기 위해 혈안이 되었습니다. 마침내는 예수와 성모마리아가 그려진 성화(예수와 마리아 상)를 땅바닥에 던져놓고,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한 사람씩 밟고 지나갈 것을 강압합니다. 잔인한 감별법이었지요. 성화를 밟고 지나가면 배교(背敎)의 대가로 생명을 건지고, 밟기를 거부하면 기독교도로 잔혹하게 처형당합니다. 사람들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생사의 선택을 강요받아야 했어요.


‘침묵’은 포르투갈의 예수회에서 일본에 파송됐다가 붙잡힌 젊은 신부 로드리고의 고뇌를 좇고 있습니다. 이미 적지 않은 사람이 성화를 밟은 상태에서 일본 관리는 신부에게 제안을 해옵니다. “예수의 얼굴을 밟고 가라. 네가 밟고 배교하면 저 사람들을 살려 줄 것이다.” 소설은 이로부터 포교를 위해 이역만리를 건너온 신부의 눈물겨운 고뇌의 과정을 밟아갑니다. 신부는 급박한 위기의 상황에서 끊임없이 기도하고 응답을 구하지만 신의 침묵은 계속될 뿐입니다. 바다조차 어두운 침묵을 깔고 잠잠했습니다. 신부의 배교를 강요하면서 보란 듯이 신도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하는 관헌들...


배교냐? 순교냐? 갈림길에 선 신부는 인간의 진실과 신앙의 진리, 그 어느 것도 쉽게 저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왜 당신은 계속 침묵하시는 겁니까?“ 이 작품은 로드리고 신부의 처절한 물음 속에 신앙의 본질을 탐구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고자 끝까지 성화 밟기를 거부하고 죽음을 당할 것인가. 비굴해지더라도 성화를 밟고 생명들을 건질 것인가. 과연 어느 것이 참된 사랑의 행위인가. 순교라는 미명아래 보고만 있을 것인가. 그는 떨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통렬한 고통 속으로 빠져듭니다.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작장을 따라 새 임지로 이주했다가 예배처가 없다고 교회를 개척한 어머니의 훈교를 받으며 반듯한 기독 학생으로 자라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내게 굳건한 믿음을 지니길 바라셨지만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지요. 신과 나 자신의 관계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서입니다. 1980년대 온 나라가 격동의 쓰나미에 휩싸일 때 책방에서 우연히 ‘침묵’을 발견했습니다. 소설 ‘침묵’은 부닥친 현실과 교회가 요구하는 신앙인상(像)의 간극으로 갈등하던 나를 순식간에 빨아들였습니다.


기독교 선교사(史)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로 신앙의 절개를 지킨 영웅들의 이야기가 절절하게 나옵니다. 이에 비해 ‘침묵’은 한 신부를 통해 변절과 실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내게는 신선하기도 하고 이채로웠습니다. “내가 고통 받을 때 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신부의 물음은 당시 내가 겪고 있는 신앙의 딜레마와도 상응했습니다.


소설은 성직자로서 따라야 할 교리와 인간의 도리 사이에서 고뇌하던 신부가 마침내 성화를 밟기 위해 발을 들며 절정을 향합니다. 그리고 발을 내리려는 순간, 침묵하던 신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 장면을 읽었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또렷한 기억으로 살아나지요.


로드리고 신부의 귀에 바람처럼 흔들려온 그리스도의 음성.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알고 있다. 밟아라.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위해 십자가를 짊어졌다...” 신부가 성화에 발을 올려놓았을 때, 아침이 오고 멀리서 닭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책장을 덮자 그 장면이 환영처럼 펼쳐졌어요. 사방에서 헨델의 ‘메시아’가 울려 퍼지는 듯했고, 그 중앙에 내가 선 기분이었습니다.


엊그제, 서재의 한곳에 묻혀 있던 ‘침묵’을 꺼냈습니다. “로마 교황청에 하나의 보고가 들어왔다. 포르투갈의 예수회가 일본에 파견한 한 신부가 나가사키에서 고문을 받고 배교를 맹세했다는 것이다...” ‘침묵’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다시금 ‘침묵’을 읽으며 가슴에 여울지는 물소리를 듣습니다. 나를 밟아라. 밟는 네 발의 아픔도 나는 안다.... 최후의 순간에 깨닫는 하나님의 사랑과 존재에 대한 경이로움...


굳이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감명을 받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주제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지만, 질문은 우주와의 관계로까지 확장성을 지닙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던지는 질문일 테니까. ‘침묵’을 통해 믿음이란 단순한 맹종이 아니라, 넓게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따뜻한 인종(忍從)과 순응임을 확인할 수 있었지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예수님의 고뇌와 사랑을 생각하게 하는 사순절에. (15.4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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