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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SUN Aug 20. 2019

 우리 아빠는 '발레 하는 할아버지'

발레 하는 할아버지를 읽고


 한쪽 다리를 들고 두 팔을 머리 위로 둥글게 올리고 발레를 하는 할아버지. 그 옆에 앉아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한 아이. 이 따뜻한 그림을 보고 떠오른 것은 우리 아빠다. 내 아이들에게 우리 아빠는 ‘발레 하는 할아버지’였다.


  처음부터 나는 우리 아빠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기였을 때에도 아빠가 안아주기만 하면 빽빽 울었다고 한다. 아빠는 엄마에게 '물 가져와라, 재떨이 가져와라'하시는 가부장적인 분이었고, 불같은 성격으로 동네에 싸움이 나면 나서서 싸움을 말리다가 기어이 함께 싸우시곤 했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에는 아빠와 뜻이 맞지 않아 반항하고 대들기도 여러 번, 그때마다 엄마는 고집스러운 부녀 사이에서 눈물을 많이도 흘리셨다.


   나는 독불장군 같은 아빠가 싫어서  아빠와 달리 자상하고 착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첫 아이를 낳기 전에 아빠는 나에게 무뚝뚝하게 말씀하셨다.

  "아빠는 너 애기 낳고, 조리 끝나고, 하여튼 다 끝나고 퇴원하면 그때 집으로 보러 갈게"

  특별히 섭섭하지도 않다.  세상에 단 두 명 있는 완전한 내 편, 남편과 엄마가 내 곁을 지켜주지 않는가. 나는 내 편들의 눈물과 환호를 받으며 무사히 민호를 낳았다. 제왕절개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날 무렵,  퇴원하기 전까지는 절대 오지 않겠다던 아빠가 병원에 등장하셨다. 갓 태어난 민호를 보고 연신 웃으며 자꾸만 다정하게 말을 거신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아빠는 매일 병원으로 찾아오셨고,  퇴원 후에는 출근하는 나를 대신해  민호를 애지중지 키워 주셨다.


   할아버지가 된 아빠는 손자에게 다정하게 노래도 불러주신다.

   " 아아가야 나오너라. 달맞이 가자……."

    어릴 적 나도 들어 본 것 같은 노래다. 할아버지가 된 아빠는 민호를 조심조심 목욕시키고, 우유를 먹인 후에는 트림을 시키며, 알록달록한 포대기로 업어 주기도 하신다. 민호가 밥상을 휘저어도 벽에 낙서를 해도 항상 즐겁게 웃으신다.

    “아고, 우리 애기가 그랬쪄?”

    할아버지가 된 아빠는 세 살 된 민호에게 트로트도 가르치셨다.

    “밧줄로 꽁꽁, 밧줄로 꽁꽁, 단단히 묶어라. 내 사랑이,가, 떠날, 수, 없게”


   그 시절 우리 가족은 모두 행복했다. 친정에 가면 엄마는 저녁 준비를 하시고, 할아버지가 된 아빠와 민호가 똑같이 뒷짐을 지고 집 앞 골목을 산책했다. 그 후에 두 명의 동생들이 줄줄이 결혼을 하면서 우리 아빠는 일곱 명의 손주들을 만나게 되셨다. 엄격하고 화를 많이 내던 무서운 우리 아빠가, 식사 중에 어깨에 올라 탄 손주가 머리를 잡아 뜯어도 그저 허허 웃으시는 하얀 머리의 할아버지로 완벽히 변신하셨다. 손주 일곱을 한 명씩 불러 차례로 목욕시키시던 그때의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할아버지였다.


  지난 주말, 엄마 제사와 아빠 생신을 챙기러 친정에 다녀왔다. 엄마는 자식들 키울 때 다정하지 못했던 아빠에게 자식들이 혹시라도 소홀히 할까 걱정이 되셨는지, 당신 제삿날을  아빠 생신 딱 3일 전으로 정해 놓으셨다. 지금의 아빠는 엄마가 함께 계실 때보다 더욱 많이 늙으셨고 손주들은 아빠가 늙으신 만큼 훌쩍 자랐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몇 년간 아빠를 원망하고 있던 나는, ‘발레 하는 할아버지’를 읽으면서, 내가 아빠를 덜 미워했었고 아빠가 가장 행복하셨을 그 시절의 우리 아빠를 잠시 동안 다시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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