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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 Sep 23. 2024

후회

-essay-

SNS를 떠돌던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연로한 아버지가 아들 내외 집을 방문한 것으로 시작됐다. 

글쓴이는 그 아버지의 친동생이다. 그가 거동이 약간 불편한 형님을 모시고 조카의 집을 방문한 것이다. 

두 명의 집안 어르신을 맞이한 조카의 집은 다소 썰렁하고 찬 공기마저 느껴졌다. 명문대학에 입학하여 집안의 자랑이 된 장손 녀석은 어디에 있는지 코빼기도 안 보인다. 할아버지와 종조부이신 작은할아버지 오셨다는 조카의 말에 대학생 손자 녀석이 그제야 자기 방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두 할아버지 앞에서 가볍게 고개 숙이고는 잠시 쭈뼛거리다가 다시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글쓴이는 형님을 모시고 다시 집을 나서기까지 그 종손(從孫)을 못 보았다고 한다. 


글쓴이가 조카와 종손을 싸잡아서 투덜댔다. 

겉으론 티를 내진 않았지만, 운전대를 잡고서 돌아가는 길에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노쇠한 형님을 보니 더욱 화가 나더라는 거다. 자주 볼 수 없는 손자를 명절 한때라도 실컷 볼 수 있기를 한껏 기대했건만 두 노인네가 뒷방늙은이 취급당한 것 같은 기분에 씁쓸하더라는 거다. 자신은 그렇다 치더라도 친할아버지가 모처럼 오셨는데 인사만 억지로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사라져버린 종손도 그렇고 그렇게 키운 조카도 마음에 안 들 긴 매한가지라고 했다. 형님이 살아야 얼마나 더 오래 살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가족의 온정이 느껴지지 않는 명절이 서럽다는 뭐 그런 이야기다. 

마치 가지 말았어야 할 곳을 다녀온 듯한 이상한 찜찜함에 의한 투덜거림이 고스란히 나에게도 전달이 됐다. 그 이유는 할아버지 앞에서 다정다감하지 못한 젊은 아이가 일방적으로 비난당하고 그렇게 키운 아빠까지도 도매급으로 혼났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스스럼없이 재롱떨던 손자의 어린 시절 모습을 여전히 기대하던 것은 아니었는가 하는 두 노인의 이기적인 마음이 읽혀서 조금은 불편한 글이었다. 


흔히 미운 일곱 살이라고 해서 초등학교 들어가기 직전 아이들은 순수함과 귀여움을 털어낸다. 

즉 반항기가 서서히 싹트는 나이대가 되어 재롱부리는 걸 멈추는 시기가 온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에게 일곱 살 아이는 더 이상 사랑스럽지만은 않은 나이대로 접어들어 얄미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시기가 더 빨라서 이젠 미운 다섯 살이라고 해야 할 정도다. 얄미움이 더 일찍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어른들 앞에서 재롱 피우는 모습이 마냥 귀엽고 그래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이는 딱 다섯 살까지다. 

이후 자기주장을 뚜렷이 펼치고 말을 곧잘 하면서부터 서서히 어른 들 눈 밖에 나기 시작한다. 


언젠가 SNS에서 공유된 사진 한 컷에 무수한 댓글이 달린 걸 본 적이 있다.

어버이날 아침 큰아들 녀석이 아무런 말 도 없이 수학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엄마는 내심 따뜻한 말 한마디 기대했지만 무뚝뚝한 아들이 훌쩍 떠나버렸다. 현관문을 나서는 아들의 그 모습을 엄마가 사진을 찍어서 SNS에 공유했다. 그러면서 짧은 글을 남겼다. 아들이 쓴 모자가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이다. 

이 사진에 천여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아들의 모자를 트집 잡는 걸로 어버이날 받은 불만을 토로한 것이 너무 재밌다는 반응도 있었으나 상당수가 우리 집 얘기라는 반응이 많았다. 이래서 아들보다 딸이 더 낫다는 댓글도 있었지만, 딸도 만만치 않다는 댓글도 꽤 있었다. 


엄마들의 탄식은 줄을 이었다. 

아이에게 카네이션 사 오라고 아침 등교 전에 돈까지 쥐여줬는데 그걸 PC방에서 탕진했다거나, 아이가 학교에서 종이 카네이션을 만들어 오긴 했는데, 가방에 넣어두고 주지를 않아서 잠잘 때 몰래 가방 열어서 직접 카네이션을 꺼냈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자 자기 아들은 가방에 넣어 오는 건 고사하고 아예 학교 사물함에 처박아 두었다는 엄마의 씁쓸한 투정이 나오기도 했다. 자녀가 자기 생일 선물 못 받았으니 어버이날에 뭘 기대한다는 게 이상하지 않냐는 자녀의 말도 나왔다. 어버이날 아침 문자 하나 보내온 게 옷 사달라는 쇼핑몰 링크를 보내온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수많은 댓글 속에서 그렇게 엄마들과 공감을 표하는 여성들이 서로의 미운 자식들을 글로 때리고 있었다. 


어른들은 자녀들의 모습이 반항기 있기 전인 일곱 살, 다섯 살 이전에 멈춰있는 경우가 많다. 

똥오줌도 못 가리고 요람에서 칭칭 댔어도 자녀와 손주는 마냥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하지만 자녀와 손주들이 어느 순간 하나의 인격체로 형성되면서 어른들 생각과 뜻대로 자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것을 인정 못 하고 여전히 자신이 바라는 틀 속에 어린 세대들을 가둬두면 갈등만 생길 따름이겠다. 

그런 수많은 댓글 가운데 누군가 질책하는 소리를 남겼다. 

자기 자식 욕하기에 앞서 자신을 뒤돌아보라는 거다. 콩 심은 데 콩 나는 법이어서 보고 들은 대로 아이들이 행동하기에 정작 본인은 자기 부모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왔는가를 돌아보라 했다. 자녀를 둔재로 낳아놓고 짐짓 천재로 여기지 않는지 반성하라는 거였다. 


그 따끔한 한마디에 가부장적 나의 모습이나 권위를 앞세워 아이들을 화나게 만든 지난날이 떠올랐다. 

성경에서도 자녀들을 화나게 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에베소서 6:4, 골로새서 3:21) 

자녀들을 오냐오냐 키우라는 가르침이 절대 아니다. 

훈육은 부모의 도리이지만 결코 자기 부속물이 아닌 인격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어른들 중심으로 어린 세대들을 대하지 말아야 함은 이미 2000년 전부터 부모들에게 해온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들을 내 세대와 내 기준으로 재단해 버리는 오류를 흔하게 저지른다. 


지난 시대의 지성인이었던 이어령 선생께서는 위암 투병했던 큰딸을 먼저 하늘나라 보내고 난 후 가장 후회스러운 점으로 어린 딸에게 화낸 일을 꼽으셨다. 

유치원 다니던 딸아이가 예쁜 새 잠옷을 입고 자랑하고픈 마음에 이어령 선생의 서재를 불쑥 들어와 아빠를 불렀다. 그때 한창 원고 마감에 시달리던 선생은 딸의 자랑을 들은 척도 안 하고 냅다 방을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그는 생전에 당시의 화낸 그 날을 무척 후회한다고 소회를 밝혔었다. 다정다감하지 못한 부모의 모습은 그렇게 평생 후회로 남는다. 그래서 자녀로부터 받은 한가지 서운함에 매몰되지 말고 내가 자녀에게 했던 한 가지 서운함을 떠올려 볼 일이다. 이어령 선생처럼 후회할 만한 그 한 가지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하며 내 기준과 잣대를 나 또한 내려놓기로 했다. 


내 생각이, 내 가치관이, 내 기준이 곧 내 자녀에게 동일시될 수는 없다. 그런데도 내가 낳은 자식이라는 소유의식이 강하여서 자녀들을 또 다른 인격체가 아닌 내 부속물로 오인한다. 나와는 다른 사람이란걸 인정하지 못하는 거다. 여기서 비교 들어가면 자식이 원수가 되고 서로의 갈등의 골만 깊어 진다. 모든 자녀는 어차피 다섯 살만 넘기면 하나같이 이기적인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변하는 걸 인정해야만 한다. 

커가면서 인간 누구나 그렇듯 자기중심적이면서도 갈등의 대상이 되지만 본격적으로 인간의 모습을 갖추는 것뿐이다. 


부모는 인간을 낳았지, 천사를 낳지 않았다. 

그래서 자녀를 낳은 걸 후회하는 게 아니라 자녀를 화나게 한 그것에 후회해야 실마리가 풀릴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빨리 그것을 인정하는가는 절대적으로 부모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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