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novel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hann Oct 22. 2024

라크리모사(Lacrimosa) #5

- 중편 소설 -

3. 묻지마 살인     


차량 지붕을 정신없이 두들겨 대던 빗소리가 일순간 잦아들었다.

그리고 순간 번쩍거림이 있었고 동시에 주변이 환해지면서 오래된 폐 휴게소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였다가 사라졌다. 다시 어둠에 휩싸이기까지 짧은 순간이었지만 흉물스러운 낡은 건물이 제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자 을씨년스러움이 한층 더해졌다. 그런데 K 대표가 폐 휴게소 뒤편으로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본 것 같았다. 또 다른 하나의 건물을 본 듯했다.  


“방금 뭐였지?”


그가 어둠에 싸인 폐 휴게소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없었다. 다시 번개가 번쩍이기를 수 분 동안 기다리며 폐 휴게소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렸던 번개가 다시 한번 번쩍하고 일어나더니 곧 이어진 천둥소리와 함께 폐 휴게소의 흉물스러운 모습을 한순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때 그가 폐 휴게소 뒤편에 있는 또 다른 흰색 건물 하나를 볼 수 있었다. 역시 그가 아까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상하게 여기고 얼른 내비게이션의 현재 위치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가 보았던 흰색 건물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휴게소 뒤편은 그냥 야산이었다. 내비게이션에도 아무런 건물정보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의아해하고 있던 그 순간 룸미러에 강력한 전조등 불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고막을 찢는 듯한 경적이 뒤에서 들려왔다.

그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뒤로 돌려 확인하려 했지만, 전조등의 불빛이 너무나도 강렬하여 눈을 제대로 뜨고 확인할 수가 없었다.


“뭐야? 저놈은!”


K 대표는 알 수 없는 차량의 정체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와 동시에 짜증도 같이 밀려옴을 느꼈다.

그렇지만 짜증보다는 겁이 더욱 났던지 차량의 문이 안전하게 잠겨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때였다.

경적을 울리면서 그의 뒤에 있던 정체불명의 차 한 대가 굉음을 내며 그에게로 마치 자살폭탄 테러하듯 거침없이 질주하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어, 어, 엇!”


그가 너무 놀란 나머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는데 쏜살같이 달려오던 정체불명의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는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자신의 차로 미끄러져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비가 내린 지면이다 보니 급브레이크를 밟아도 소용없었다. 그가 어찌할지 모르는 사이 ‘쾅’ 하는 충돌 소리와 함께 강한 충격이 그의 온몸으로 전달이 됐다. 안전벨트를 매고 있지 아니하였기에 그 충격이 온몸으로 전달되었다. 그나마 미끄러져 온 뒤 들이받은 것이 천만다행이라 할 정도였다. 급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그대로 와 들이받았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가 정신을 채 차리기도 전에 자신의 승합차를 들이받은 정체불명의 차가 후진을 하여 다시 한번 굉음을 내며 한참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드디어 전조등이 꺼졌다.

어둠 속에 본 그것은 아까 보았던 SUV 차량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확히 확인하고 싶었다. 무엇 때문에 느닷없이 자신의 차를 들이받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술에 취한 정신 나간 운전자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K 대표는 조심스레 자신의 차 문을 열었다. 가벼운 차량접촉 사고와 같은 교통사고 후 피해자가 목덜미 잡는 거짓 연기를 할 필요조차도 없이 가볍지 못한 차량 충돌사고를 당한 그가 차 밖으로 나오면서 자연스레 목덜미를 잡았다.

그리고 자신이 보았던 것이 SUV 차량이 맞는지 확인하려 했다.

어둠 속에 요란한 엔진의 공회전 소리만이 폐 휴게소 주차장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드디어 그의 시야에 정체불명 차량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맞네. SUV. 아까 그 자식인가? 미친놈! 음주운전에다가 사람이 타고 있는데 일부러 차를 들이받은 건 살인미수다. 이 새끼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야!”


K 대표는 음주운전 차량이라 확신한 듯 경찰에 신고하고자 휴대전화를 자신의 주머니에서 꺼내려 했지만 없었다. 차 안에 두고 아직 충전 중이었다. 그가 다시 차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SUV 운전자가 전조등을 켰다. 상향등까지 작동시켰는지 그가 손으로 시린 눈을 가리는데 갑자기 SUV가 또다시 굉음을 내며 그에게로 돌진해왔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자신의 차가 들이받히기 전에 그가 재빨리 몸을 날려 피했다. 빗물이 흥건한 주차장 바닥에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몸이 여러 번 굴렀다. SUV는 다시 후진하며 방향을 틀더니 이번엔 넘어져 있는 K 대표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가 얼른 몸을 일으켜 냅다 휴게소 건물로 뛰기 시작했다. 계단을 날 듯이 뛰어 올라갔다. 무조건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폐 휴게소 건물은 모두 잠겨있었다. 어디로 도주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저 멀리서 SUV 운전자가 추격을 멈추고 시동을 끄더니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후드티를 걸쳐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손에는 30cm는 족히 돼 보이는 날카로운 회칼이 들려있었고 또 다른 한 손에는 굵은 쇠사슬을 들고 있었다. 그가 쇠사슬로 마치 채찍을 휘두르는 것처럼 공중에서 몇 번 돌리더니 이내 그의 승합차를 내리찍기 시작했다.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유리가 박살나고 차량이 찌그러졌다. 그가 회칼로 타이어를 찌르자 공기가 순식간에 빠지기 시작했다.

K 대표는 넋이 나갔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빠르게 생각해 내고 있었다.

이상한 의뢰를 받고 현장으로 차를 몰고 가던 도중이었고 다른 운전자와는 아무런 실랑이도 없었다. 운전하는 도중에 다른 운전자를 위협했다거나 차 사고를 일으킬만한 원인을 제공했던 적도 없었다. 그가 이곳까지 오는 도중 도로 위에서 잘못한 것을 생각해보려 했지만, 도무지 아무 잘못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정말이지 미칠 노릇이었다. SUV 운전자가 무언가 오해를 해도 단단히 하는 듯 보였다.

다른 누군가의 차와 자신의 차를 혼동한 것이 아닌가도 싶었다. 그렇게 생각이 들자 더는 도주할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따지고 이성적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To be continued...



매거진의 이전글 라크리모사(Lacrimosa)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