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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 Oct 20. 2024

라크리모사(Lacrimosa) #4

- 중편소설 -

K 대표가 겪은 가장 안타까운 죽음의 흔적은 간호조무사 M이었다.  

간호사의 꿈을 간직하고 있던 그녀는 우선 간호조무사 자격을 얻은 다음 대형병원에 취직하였다. 그리고 학점은행제를 통해 온라인 강의를 수강하며 전문학사 취득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최종 목표는 간호사면허를 취득하여 정식 의료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장소를 정리하기 위해 K 대표가 나서야 했다. 그녀의 유품 정리는 그녀가 살던 반지하 원룸에서 이루어졌고, 그녀가 떠난 자리를 정리하는 일은 바닷가 근처의 어느 여관에서 이루어졌다. 

비릿한 바닷냄새가 차가운 바람에 실려 그녀가 머문 자리에까지 날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일주일 장기투숙을 했던 모양이다. 부검을 굳이 하지 않았더라도 그녀의 죽음이 타살로 인한 것이 아니라 심정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증거가 될 수 있는 약품이 그녀가 머물렀던 방안에서 나왔다. 


염화칼륨 앰풀이 주사기와 함께 그곳에 있었다. 

경찰에 의하면 고칼륨혈증을 동반한 심부전증 사망이라 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사망 시점도 그리 길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장기투숙 이후 약속된 시간까지 퇴실하지 않고 있었기에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그녀가 죽어있었고, 사후경직이 온몸에 일어나기 10시간 내외로 추정하였는데, 이를 토대로 예상해 보면 그녀가 투숙해서 죽기까지 일주일간 상당히 여러 번 망설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시체가 부패하기 전에 발견될수록 K 대표가 일하기 수월해진다. 시체가 발견된 공간의 악취 제거에서부터 구더기 소탕 그리고 장판과 벽지 제거에 이르기까지 그가 해야 할 일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보수도 줄어든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K 대표가 현장을 처음 보았을 때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녀가 매일 한 병씩 마셨을 것으로 추정되는 소주병 사이로 2리터 생수통과 굵은 주삿바늘이 보였는데, 그 안에 담긴 것은 물이 아닌 혈액이었다. 그리고 그 혈액은 그녀의 것으로 밝혀졌다. 거의 반 이상 담겨 있던 것으로 보아 그녀 스스로 채혈하여 과다출혈로 죽음에 이르고자 하였던 것이 아니었나 추정해보았다. 

아마도 본인 스스로 자기 피를 다량으로 뽑는다는 것이 생각만큼 그리 쉽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다음으로 선택한 것이 약물 과다 투여였을 것이다. 

방 한구석에 사용한 흔적이 전혀 없는 번개탄도 보였다. 하지만 번개탄 사용을 위해 방안 곳곳에 공기가 들어올 만한 곳을 전부 밀폐하는 일에서부터 자칫하면 냄새가 복도 등으로 새어 나가면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었기에 그 방법은 아예 시도조차 못 해본 것 아닌가 싶었다. 

결국, 그녀는 장기투숙 마지막 날 저녁 자기 몸에 골격근 이완제 판크로늄을 주사하여 폐와 횡격막의 호흡근들을 마비시켜버린 후 곧바로 염화칼륨 앰풀을 희석하지 않고 고용량을 그대로 주사하였을 것이라고 현장 감식반원들이 추정했다. 고칼륨혈증이 생기면서 심실이 제대로 수축하지 못하였을 것이고 혈액을 펌프질하지 못하여 심장이 일정 시간 동안 수축하지 않아 그대로 심장마비를 유발했을 것이었다. 주사기와 앰풀은 그녀의 직장이었던 병원 병동에서 그녀가 몰래 빼냈다는 것을 경찰 수사결과 모두 밝혀졌다. 


하지만 경찰은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녀가 입수한 염화칼륨 앰풀은 원액으로 입수하기 힘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반드시 믹스처방에 의해 희석액을 조제하여 병동으로 전달하도록 시스템이 되어있는데 어떤 이유로 그녀가 원액 앰풀을 손에 넣을 수 있었는지는 좀 더 보강 수사를 진행해야만 했다. 더구나 그녀의 자살 원인이 미궁에 빠진 상태였다. 집과 직장인 병원만 오가는 단순한 동선과 가족이 전혀 없고 주변인조차 거의 없다시피 한 그녀였기에 탐문 수사도 제자리걸음인 상태였다. 지금까지 경찰은 타살 흔적을 찾을 수 없었기에 M이 어떠한 이유로 신변을 비관한 나머지 자살한 것으로 잠정 결론지었다. 처음으로 실종신고를 한 남자친구라는 사람의 알리바이는 완벽하였다. 

그를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실종 신고 당시부터 M의 행방을 추적하던 경찰들은 단서를 찾아내지 못하다가 실종 전단을 만들고 공개수사로 전환하려 논의하던 상황에 때마침 여관주인의 신고가 이어졌고 그로 인해 M의 죽음이 모두에게 알려졌다. K 대표는 M이 자살한 그 현장에 방문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녀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했는지 그 원인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녀의 남자친구는 그녀가 병원에서의 직장 내 갑질인 ‘태움’을 당해 여러 날 고통스러워했던 기억을 경찰 진술에서 밝힌 바 있었다. 

하지만 병원 관계자들은 이를 모두 부인하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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