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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 Nov 09. 2021

부부갈등 클리닉의 어떤 상담

- 스마트 소설 -

부부갈등 클리닉을 운영하는 닥터K가 어느 날 약간 혀가 꼬부라졌지만, 꽤 익숙한 음성의 여성으로부터 상담 요청을 받았다.


대면상담뿐만 아니라 비대면 상담으로 진행되면서도 그마저도 상대의 얼굴을 서로 보지 않고 음성으로만 상담을 진행하는 관계로 클리닉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은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그동안 남들에게 말 못 할 부분까지도 스스럼없이 닥터K에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일반전화 상담과는 달리 채팅 창에서 이루어지는 상담은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만들었지만, 화면 공유를 통해 시각적 자료를 제시하고 부연 설명을 성실히 해줌으로써 보다 전문적이고도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여 상담을 진행하는 관계로 의외의 호응도를 끌어내고 있었다.


그가 방송을 통해 유명세를 치렀고 또 여러 언론사 칼럼을 통해 이름이 알려지고부터는 부부갈등을 겪고 있는 많은 자로부터 상담 요청이 쇄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시점에 그가 혀 꼬부라진 음성의 여성과 온라인 상담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저는 방송일에 종사하고 있는 여자예요. 이제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고민이에요. 문제는 결혼 이후에도 방송일을 계속하고 싶은데, 남편과 시댁 측에서 반대한다는 데에 있어요.”


“혹시 어떤 방송일에 종사하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배우예요. 영화와 드라마 다수에 출연했지요.”


닥터K는 그녀의 음성이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인 듯싶었는데 그제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국내 최고의 최정상 여배우였다.

더구나 그의 결혼상대자는 재벌가 아들이며 초호화 결혼식을 곧 할 거라는 언로 보도가 앞다투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상담 중에 ‘후우’ 하는 긴 한숨 소리가 들리는가 싶었지만, 그는 그것이 한숨 소리가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혹시 지금 음주와 흡연을 하고 계신 중이신가요?”


“어머! 어떻게 아셨을까? 죄송해요. 상담 중에. 말을 꺼내려니 너무 답답해서…….”


그녀는 남편 될 사람과도 맞담배를 하고 술을 즐기며 둘이 서로 상당한 애연가이자 애주가라 했다.

닥터K가 끼리끼리 잘 만났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녀의 고민이 어디에 있는지 충분히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가 남편이 더 반대하는지 시댁 어른이 더 반대하는지 물어보자 그녀는 둘 다 반대한다고 답하였다.


언론기사에는 지인의 소개로 만나 짧은 기간 연애하고 결혼으로까지 이어왔다고는 했지만, 닥터K는 그 말을 절대 믿지 않았다.

그녀가 말한 지인이라는 자는 분명히 전문 중매쟁이였을 것이다.

그녀의 결혼상대자는 정말 화려한 학력에 조만간 경영권 승계를 끝내고 재계를 이끌어갈 경제계 유력 인사로 알려졌지만, 그는 여성 편력이 매우 심하다는 증권가 찌라시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닥터K가 이것을 그녀에게 노골적으로 질문했다.

소문의 진상이 사실인지 묻자 그녀가 그것이 자신의 문제와 무슨 연관이냐고 되물었다.

핵심은 결혼 이후에도 계속 배우 활동을 지속하고 싶다는 것이고 남편 될 사람이 여성 편력이 심하다는 건 자신의 문제와 하등 연관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소문은 소문으로만 받아달라고 오히려 주문까지 했다.

하지만 닥터K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맞받아쳤다.


“남편을 사랑하시나요? 아니면 그의 재력을 사랑하시나요?”


닥터K의 질문에 그녀가 머뭇거렸지만, 이내 둘 다라고 답하였다.

닥터K는 거짓말하지 말라며 하나만 답하라 했다.


“박사님! 원래 상담을 이런 식으로 하시나요?”


그녀가 참지 못하고 화를 벌컥 내었다.

닥터K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투로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상담자께서는 이미 답을 다 알고 저를 찾으셨어요. 이 결혼 할까요? 말까요?를 왜 저한테 물으시나요? 제가 상담자님 아버지라면 전 ‘이 결혼 반댈세’라고 말할 겁니다. 백제왕국31대 의자왕이 3000궁녀를 거느렸던 것과 이스라엘왕국3대 솔로몬왕이 700명 아내와 300명궁녀를 거느렸던건 그들이 로맨티시스트였기 때문이 아니라 곁에 두었던 여자마다 싫증 났기 때문이죠. 또 그 두 왕의 특징은 권력가로 많은 재산을 소유했다는 공통점도 있지요. 그들에겐 여자도 재산과 같은 소유물이었지요. 즉 언제든 가질 수 있고 버릴 수 있는 존재. 그분과 시댁 어른은 상담자님을 명품 소유물로 생각하니까 어디 내놓기 싫은 거예요. 명품물건을 함부로 굴리는 거 봤어요? 상담자님! 물건이 되실래요? 아님. 사람이 되실래요?”


거침없는 닥터K의 말에 그녀가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 침묵을 깨고 그가 한마디 더 하였다.


“술과 담배는 기호식품이라는 허울 좋은 가면을 뒤집어쓰고 사람을 항상 실수로 이끌고 질병을 선사하죠. 술 좋아하는 사람이 대부분 담배도 좋아하더라고요. 음주 및 흡연자의 윤리 도덕적 관념지수가 낮고 실수 비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는 연구 보고자료가 있습니다. 본인께서도 둘 다 좋아하시니 판단이 안 될 뿐이지요. 본인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면 오히려 술과 담배를 멀리하는 그런 남자를 찾아보세요.”


그날 상담은 닥터K가 욕 한 바가지 먹고 끝이 났다.


그리고 그녀는 얼마 후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고 일 년도 안 되어 별거에 들어갔다는 뉴스를 증권가 찌라시가 아닌 정식언론매체에서 앞다투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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