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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한 Apr 28. 2024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유서

90년대생 공무원이 자살시도를 하기까지

유서


제가 자살시도를 성공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읽어주겠지요. 제가 죽든, 안 죽든.


지옥은 공무원 임용부터 시작됐습니다. A구청 A과로 발령난 후, A 과장이라는 사람을 만난 후, 그 때부터 제 인생은 박살이 났습니다. 일주일 간 저는 업무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한 여자 주임님이 과장 음식이나 차려 놓으라더군요. 과장 음식 챙겨주고, 그릇 설거지하고. 그게 제 업무였습니다. ‘2021년’에 광역권 9급으로 들어갔는데, 처음 하게 된 일이 그겁니다. 인서울 4년제 대학 나오고도 취업난에 10개월 공부하고 겨우겨우 들어왔는데 말이죠. 당연히 제 자존감은 처참히 무너졌죠. A 과장은 아침마다 허구한 날 전 직원을 집합시켜 쓸 데 없는 회의를 했습니다. 알맹이는 없고 큰 소리만 버럭버럭. 이건 나중에 구청에 방문한 주민분의 발견으로 A구청 구청장에게 바란다에 신고까지 된 사항입니다. 도대체 80년대 조직문화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 골자였습니다. 당연히, 처벌은 전혀 없었습니다. 내부적으로 경고만 했겠죠. 과장이 전직원 또 불러놓고 미안하다 했댔나?


티셔츠에 슬랙스를 입고 화장기 없는 저에게 과장이 비아냥 거리는 투로 그러더군요. “넌 좀 여자처럼 입고 다녀라.” 놀라지 마세요, 2021년, 도시, 맞습니다. 뭔가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잘 배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괴롭힘은 이때부터 시작됐어요.


“아버지 뭐하시니?”


말죽거리 잔혹사 영화 보는 줄 알았습니다. 이런 질문을 하는 무례한 사람이 아직도 있구나.. 아버지 직업을 말씀드리기 싫었습니다. 이혼한 거에 딱히 피해의식도 없었고.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라는 뜻으로 사실대로 말씀드렸는데요. 이 이후로 무시가 시작되더군요. 일주일 후에 갑자기 보건소로 출근을 하랍니다. 당일에 저는 갑자기 보건소로 가게 됐습니다. 예, 코로나 근무가 시작됐습니다. 과장이 암암리에 저를 그쪽으로 보낸겁니다. 코로나 근무는 빡셌어요. 6시 알람을 맞춰놓고 출근해서, 집에 도착하니 그 알람이 다시 울리더군요. 24시간 근무한 겁니다. 그런데 수당은 밤 11시까지밖에 인정이 안됐죠. 예, 공무원이 뭐 그렇죠.


이 당시 충격으로 많은 친구들을 잃었습니다. 만나면 제정신이 아니었고, 사람 만나기가 두려웠어요.


6개월 정도 지났나, 어찌어찌 코로나 근무가 끝나고 다시 A과로 돌아왔습니다. 시보를 코로나 부서에서 뗐어요. 당연히 A과 업무는 아무것도 모르죠. 역시 아무도 업무를 설명해주지 않았어요. 어떻게든 저를 기쁨조로 삼으려는 어른의 탈을 쓴 짐승들 뿐이었습니다. 기안문을 올리면 과장이 괜한 꼬투리를 잡더라고요. 예를 들면 아주 간단한 기안, 이전의 기안을 복사해서 붙여넣기 해서 올리면 되는 그런 기안문임에도, 5번이나 빡구를 당했습니다. 쓸데없는 군기 잡기였죠. 심지어 제가 민원전화 응대를 할 때도 사사건건 개입하시더라고요. 과장이 9급에게. 그 압박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전혀, 저를, 일하러 온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았던 거죠.


사적으로 밥을 먹자고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저는 물론 단 둘이는 절대 먹지 않았습니다. 그 과장이 기분 맞춰주면 승진시켜주는 걸로 유명해서, 그런 걸 오히려 이용하는 직원들도 있었습니다. 도대체 공무원이 왜 이런 정치질을 해야하는지 저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요. 사기업에서 그런거에 신물이 나서 왔는데, 우스울 따름이었습니다. 참다 참다 시에 고충을 썼습니다. 1년 이내 전보는 불가능한데, 제 사정이 딱하다며 다행히 보내주셨습니다. B구로.


그렇게 B구로 피난 가듯 도착하고 얼마간은 괜찮았습니다. 여긴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서로 조심하는 분위기였거든요. 그런데 지나고보니, 또 시작이었습니다. 이번엔 B 팀장. 이 사람은 A보다 더 영악한 사람이었어요. 제가 처음에 수수하게 다니니, 또 없는 집 자식이라 생각하고는 괜히 태워주겠다, 집 주소를 물어보시더군요. 뭔가 쌔해서 집 근처 큰 건물을 이야기하니, 집요하게 물어보시더라고요. 다행히 주소를 말씀드리지는 않았습니다만, 이게 정상적인 대화는 아님을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더 잘 알 거라 생각합니다.


B구에서는 마음을 새롭게 먹었어요. 조용히 다니자. 그런데, 조용히 있으니까 저를 만만하게 보시더라고요. 전임자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고, 코로나 근무하다가 그냥 넘어와서 아무것도 모르고, B구 시스템은 또 A와 달라서 적응이 힘들다고 말씀을 드리는데도. 괜히 일을 안하려고 그런다는 식으로 오해를 하시고는, 업무를 하나씩 하나씩 과중시키더군요. 그 당시 제 업무기록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진짜 일을 안 했는지. 저는 지출도 이 때 처음 했습니다, 거의. 지출, 구매, 계약, 남들은 3개월 정도 익숙해져야 하는 그걸, 일주일만에 했어야 했어요. 거기다 체험원 운영, 근로자 채용, 임금, 심지어 공사까지. 그리고 온갖 잡무와 막내의 재롱떨기 그리고 통계, 민원까지. 이게 전부, 제대로 된 보직을 받고 ‘처음’ 해보는 업무였습니다. 잘 모르겠다고 알려달라고 하면 무시하거나 일을 안 하려고 한다며 교묘히 업무적으로 스트레스를 주더군요. 심지어는 본인 e호조 하는 방법을 모른다며 간단한 업무의 수발을 들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죠. 팀장이 e호조를 모르겠습니까? 설령 모른다한들 그게 맞아요? 팀장이?


점점 건강까지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참고 잘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 팀장은, A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어요. 이 사람은 어쨌든 팀장이니까, 더 가까운 관계일수밖에 없잖아요? 식사 때마다 은근슬쩍 경제 사정이 어떤지 재보시더라고요. 제가 유럽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니,


“흥! 다 해봤잖아?”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하긴 그 전까지 저를 어떻게든 관차에 태우고 다니시면서 온갖 멋있는 척을 해대시는 분이었는데, 배신감이 느껴지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뭐, 여기까진 그냥 자존감 낮은 흔하디 흔한 그시절 공무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업무지시가 말도 안됐습니다. 새로운 시설이 설치된 구간에 전혀 필요없는 시설을 설치하라더군요. 근거는 없습니다. 그냥 하랍니다. 또, 나쁜사람 되기 싫어하시는 분이라, 다른 사람에게 지시해야할 업무를 저보고 지시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팀장의 앵무새 노릇을 하게 됐습니다. 자연스럽게 타 직원들의 아우성은 제게 왔죠. 아무것도 모르는 말단인 제가 그 비난을 모두 감내했어야 했어요. 팀장의 괴롭힘과 더불어 부서직원들의 증오까지. 속이 썩어들어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더군요. 그 당시 팀원들과 직원들도 정말 밉지만, 실명을 밝히진 않겠습니다. 그들은 그래도 같은 실무자 입장이었으니까요.


이 사람이 제게 남긴 가장 큰 트라우마는 통제였습니다. 몰라서 실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저는 그냥 9급인데요. 팀장은 저의 어떤 업무가 시작되기 전에 아무런 설명도 못하면서, 문제가 터지면 책임을 묻고 비난하더군요. 팀장의 문제해결 능력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한데 통제성은 강해서 이래라 저래라 쓸데없는말만 늘어놓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민원인과의 트러블이 있었을 때도, 논리적인 해결방법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무조건 제 탓을 하더군요.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업무를 제가 다하고 문제가 터지면 욕은 욕대로 먹고, 해결도 전부 제가 했습니다. 글로 쓰니 잘 안 느껴지실 수 있는데 이 당시 스트레스 덕분에 병이 생겼습니다. 자율신경실조증.. 갑자기 심장이 막 두근거리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거예요. 처음엔 공황인가 했는데, 아니더군요. 이젠 뭔가 실수가 조금만 생겨도 자학하는 버릇이 생기고 사람이 자신감이 사라지더라고요. 이게 그들이 바란 걸까요? 밝고 젊은 청년을 어떻게든 까내리고 망가뜨려버리는 것.


그 당시 업무기록을 꼭 봐주시기 바랍니다. B구 재무과 직원들에게 물어보세요. 제가 부서 내에서 아무도 안 알려주는 업무를 해내려고 재무과 주임님들과 얼마나 통화를 했는지. 부서사람들의 그짓거리는 명백한 직장내 괴롭힘이었습니다. 그 당시 부서내에서 저에게 업무적으로 도움을 줬던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같은 팀 주임님들은 계속해서 저에게 업무를 어떻게든 맡기려고 했고, 제 업무상황을 끊임없이 감시했습니다. 각자 업무분장이 있고, 각자 업무는 각자가 책임지는 공무원 업무 특성상 그런 짓거리는 절대 용납이 안 되는데요.


그래도 악착같이 버텨내고, 업무를 잘 해내서 슬슬 인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억울해서 이제 자기표현을 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하나하나 조리있게 따지고 들고, 말씀을 드리니 B 팀장의 텅 빈 알맹이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강약약강의 직원들은 힘빠진 B 팀장의 편을 아무도 들지 않는 분위기였죠. 그렇게 그 사람은 비겁하게 C구청으로 도망갔습니다. 지금의 C구청 팀장입니다.


그 사람 가고, 좀 괜찮아지나 싶었는데, 업무가 바뀌면서 이번엔 B 팀장, A 과장과 다를 게 없는 민원인들이 문제더군요. B 팀장 때 발병된 병이, 민원인들을 응대하면서 더 악화됐습니다. 그 감정과 그 상태가 올라오면, 끊임없이 그 때 그 팀장, 그 때 그 과장이 트라우마처럼 계속 떠오르더군요. 매일밤, 매일아침 울며불며 살았습니다. 이 병 때문에 아침에 갑자기 지각을 달고 늦게 출근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이젠 그 역치가 점점 낮아져요. 이젠 조금만 누가 저를 건드려도 심장이 벌렁벌렁, 눈물이 왈칵, 손이 부들부들.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습니다.


누군가는 그럴 수 있습니다, 멘탈이 약하네. 이런 걸로 뭘 자살을 해.


그래요. 저 멘탈 약합니다. 그런데, 저 많이 버티지 않았나요? 저 상황이 3년 내내 계속 됐는데, 그걸 버티고 버티다 이제 무너진겁니다. 제가 무너졌다고 이들의 행동이 아무 잘못이 없는건가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럼 당신도 이미 똑같은 사람인 겁니다..


그렇다기엔 너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민원인이 차라리 더 낫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최소한 민원인은 몇 번 트러블 생겨도, 매일 보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근데 내부 민원인은.. 정말 지옥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이렇게 이용하고 무시하고 조롱하고 괴롭혔던 인간들에게 좀 더 집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시 저는 고작 서른도 안 된 나이 공직사회가 처음인 9급이었고, 그들은 퇴직 3~5년 정도 남은 과장과 팀장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주십시오. 어른의 탈을 쓴 악귀들이 젊은 청년을 어떻게 무너뜨렸는지를 기억해주십시오. 80년대도 아니고, 군기를 잡으려는 의도가 현저히 보이는 괴롭힘을 아무렇지도 않게 휘둘렀던 못 자란 어른들을 비난해주십시오. 가능하다면, 조직 내에서 할 수 있는 처벌이라도 해주십시오. 최소한 조직 내에서 명예를 실추하고 그 사람들 찍소리 못하게 하길 바라는 마음에 이렇게 마지막 글을 씁니다.


저는 임용 후 고작 3년도 채 안돼서 이 모든 것들을 겪고 인생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공무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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