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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유선생 Aug 31. 2022

접대의 덫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는 딸이 저녁에 들어와서 속이 안 좋다고 소파에 드러눕는다. 점심 때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제공한 김밥이랑 만두를 먹었는데, 좀 기름진 음식이라 위에 부담이 된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가끔씩 김밥이며 샌드위치 같은 걸 퇴근할 때 싸가지고 오길래 같이 먹었는데 그것들도 거의가 그사람들이 보내준 걸, 병원에서 먹다가 남으니 버리기 아까워서 가져온 모양이다.



''이거 김영란법 위반 아냐?


잘못하다간 큰일 나는데.''


그랬더니 딸은 금액이 얼마 안되기 때문에 상관없단다. 그러면서도 좀 찜찜하긴 한지 어디가서 이런 얘기 절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딸의 당부도 있는데다가, 내가 이제 퇴직한 지 몇 년 지났다고, 이를테면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당시에 함께 근무했던, 더구나 지금도 현직에 계시는 후배 교사들의 치부를 들춰내는 것 같아 이 글을 쓰는 일이 영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허구의 형식을 빌어 소설로 다루기에는 적절치 않은 소재라 어쩔수 없이, 사실을 담는 수필로 쓰는 필자의 고충을 헤아려 주시길 바란다.



그러면 병원은 '갑'이고, 제약회사는 '을'의 관계인가? 병원이 어느 회사의 약을 많이 처방하느냐에 따라 제약회사의 매출에 영향을 줄테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아주 오래 전, 내가 대학을 막 졸업하던 무렵, 제약회사에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던 대학 동창이 떠올랐다.


덩치가 크고 성격도 활달한 친구였는데,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 모임 자리에서 자기 애로사항을 토로했다.


주로 병원이나 약국으로 영업을 다니는데, 약 샘플을 가지고 가서 약효나 가성비 따위를 설명하는 건 아주 드물고, 주로 하는 일이 의사나 약사들에게 술접대를 하느라 죽을 지경이라고 한다.


이 친구가 대학 다닐 때는 술자리에서 한가락하는 사람이었고, 자기 돈으로 접대를 하는게 아니라 회사에서 나오는 판촉비로 같이 술을 마시니 나쁠 게 없지 않나 싶었지만, 그 친구 얘기를 들어보니 무엇보다도 남의 기분을 맞춰주느라 굽실대야 하는 그 기분이 더럽다는 거였다.


그 친구의 푸념을 듣고 나서, 나는 남에게 접대를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직업은 절대 택하지 말아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하지만 접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은 없는 것 같다. 굳이 언론에 보도되는 사례들을 들어볼 필요도 없이, 우리나라에서 접대문화는 정말 오랫동안 계속되어온 고질병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죽하면 김영란법을 제정해 이해당사자 사이에 일정 금액 이상의 접대가 발생할 경우 처벌을 받도록 했겠는가?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그런 관행은 사라지지 않고 음지에서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평생을 중등학교 국어교사로 살아온 나는 접대를 하기보다는 주로 받는 입장에 있어서 접대하는 사람들이 겪을 아픔을 절실히 느꼈던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접대를 받는 사람의 마음도 엄청 불편하고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받을 그 순간에는 공짜로 뭔가가 생기고, 내가 남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는 자부심으로 좋을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자기 의사 결정을 어렵게 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에서 부끄러운 짓을 저질렀다는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십수년 전, 내가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을 때 있었던 접대에 얽힌 사연을 얘기해 보고자 한다.


학교에서 여러 잡무를 담당하는 행정실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에게 이해관계가 얽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래도 병원과 제약회사의 관계처럼 느슨한 '갑을 관계' 가 교사와 서점 사이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전자는 상시적이고, 후자는 일시적이라는 차이는 있다. 또한 이건 대학입시, 그것도 수능 시험을 치러야 하는 고등학교에만 국한된 문제일 수도 있다.



나는 오랫동안 중학교에 근무했는데 거기서는 참고서를 쓰는 일이 별로 없어서 서점 직원과 거의 교류가 없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로 옮기면서 서점과 갑자기, 좋게 이야기하면 엄청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고등학교로 가보니 학교 교무실이나 휴게실에 자주 들르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서점의 영업을 담당하는 직원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이 학교에서 저 학교로, 수업이 없는 빈 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이 실, 저 실을 돌아다니면서 선생님들에게 새로 출판된 참고서 같은 걸 가져다 주면서 홍보를 했다. 하지만 그런 홍보보다는 안부 인사를 하거나,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잡담을 나누면서 친분을 쌓는 것이 더 중요해 보였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학교 주변에 중고등학교 참고서를 취급하는 서점이 십여 곳 정도 있었는데, 이렇게 전문적으로 영업만 담당하는 직원을 둔 곳은 두 군데였던 것 같다.


여하튼 내가 근무하고 있던 학교를 뻔질나게 드나들던 사람은 메이저 출판사 대리점에 소속된 두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들과 몇 년 동안 거의 일주일에 한두번은 인사를 나누며 지내다 보니,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여느 동료 교사들보다 훨씬 더 가까운 사이로 오인받기 딱 알맞았다.


둘 다 연배가 비슷했고 나보다는 20 살 정도 아래였는데, 나를 만날 때마다 만면에 넉살 좋은 미소를 띠고  ''형님, 형님'' 하면서 손을 잡곤 했다.



그러나 정작 학기가 시작되는 시기나 방과후 수업이 개설될 즈음에는 이 두 사람 사이에서 상당히 곤란한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두 곳 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출판사의 교재를 취급하기 때문에,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사용할 부교재를 어느 서점에서 구입하도록 할 것인가를 정해야 하는데 이게 정말 쉬운일이 아니었다.



두 영업사원은 선생님들이 자기네 서점에서 취급하는 참고서나 문제집을 채택하도록 여러 가지 유인책을 썼다.


서로 부담이 없고, 손쉬운 방법은 교사용 참고서를 가져다주면서 홍보를 하는 것이다. 이건 길거리에서 물티슈 따위를 나눠주면서 자기네 교회에 오라고 전도하는 목사님이나, 아파트 분양 홍보를 하는 알바나 다를바 없어 별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좀 부담이 되는 게 과일이나 음료를 보내주는 것인데, 그걸 누가 제공했는지, 누가 먹는지도 잘 알 수 없고, 더구나 김영란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학부모들이 보낸 다과도 자주 있어, 효과가 잘 나지 않아서 그런지 한두해 지나고 사라졌다.


그 다음부터는 학년별로, 또는 교과별로 회식자리를 마련하는 접대로 바뀌었는데, 이것도 여교사 비중이 너무 높아진데다가, 극구 참석을 거부하는 교사들이 있어서 시들해졌다. 또한 술자리에서 있었던 얘기는 잊어버리기 일쑤고, 시간이 좀 지나면 어느 서점에서 낸 술을 얻어 먹었는지도 알쏭달쏭해서 서점측 입장에서는 별다른 효과가 없었나 보다.



그러다가 두 서점간의 부교재 유치 경쟁은 아주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두 사람은 영업전략을 단체 단위에서 각개전투식으로 전환했다.


자기네 서점에서 취급하는 교재를 채택한 교사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어 1만원 짜리 문제집 100권을 주문했다면 총매출액의 5퍼센트, 즉 5만원을 해당 교사에게 주는 식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초기에 별 생각없이 몇 번 받았다.


같은 학년 과목을 교사 셋이서 나누어 담당하다 보니, 학생들이 같은 부교재를 사용해야 하는데, 영업직원은 세 교사 중 연장자에게 세 사람 몫을 계산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나는 받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끌려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다 받고 있는데 나 혼자 고고한 척 한다는 게 다른 사람들 눈에 거슬리는게 아닌가 하는 자기합리화 기제도 작용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몇번 반복되자 우선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꼭 빠져나올 수 없는 덫에 걸린 느낌이 들었다. 계속 미적대고 있다가는 교사로서의 권위, 아니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품격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지경에 빠지게 될 것 같았다.


특히 그 영업사원이 들고 다니는 두꺼운 노트에는 이 지역 교사들에게 제공한 회식날짜며 비용, 그리고 개인적으로 지급한 리베이트 액수 등이 빼곡히 적혀 있을 터였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그 사람들 중 누군가가 그걸 무기로 우리를 협박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얼마 전 대선에서 여야 후보가 리베이트에 관여됐다, 아니다, 한참 시끄러운 적이 있었고, 공직자가 뇌물을 받고 의뢰인의 청탁을 들어줘서 수사중이라는 등, 우리 인간 사회에서 접대는 그에 대한 반대급부를 반드시 기대하고 있다는 의미다.


가끔씩 언론에 보도되는 장관 후보자 청문회를 보면, 여러 가지 추문이 드러나서 자진사퇴를 하는 경우가 많이 나오는데, 누구도 자기 앞길에 어떤 일이 닥칠지, 자기가 잊어버리고 있던 과거의 오점이 언제 어디서 드러나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묻어서 가는 것이 그래도 위험성이 낮다. 만약 어느 영업사원이 어찌할 수 없는 코너에 몰려 자기가 보관하고 있던 비밀장부를 공개했다. 거기에 'ㅇㅇ고등학교 1학년실 회식 8명 30만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것과 '이ㅇㅇ 선생 실전문제집 판촉 5만원'은 엄연히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 다를 것이다. 단체 이름으로 받은 금품이라면, 단체명 속의 익명으로 숨을 수 있고, 단체 회식이라면 나는 그때 참석하지 않았노라고 발뺌도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가 불거지면 단체든 개인적이든 개개인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단단히 결심을 하고 마지막으로 받았던 돈봉투를 가지고 그 영업사원과 마주 앉았다. 봉투를 주면서 앞으로 이런 게 또 들어오면 당신과 아는 척도 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통고했다.


두 영업사원은 서로 경쟁을 하는 사이면서도 정보를 공유하는지 몰라도 그 다음부터는 나에게 리베이트 비슷한 게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정년이 되어 그 학교를 떠난지가 5년째라 그 영업사원이 아직도 그런 식으로 영업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학부모들의 접대도 완전히 끊어졌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로비도 이젠 거의 사라졌을 것 같다.



평생 교직에 종사한 사람으로서 학부모들에게서 받은 접대를 아무 언급도 없이 그냥 넘어가기는 어렵고, 자세히 밝힌다는 것 또한 굉장히 조심스럽다.


학부모회에서 교사들에게 단체로 식사 대접을 하거나, 개인적으로 과일 같은 걸 집으로 보내는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종종 있었다. 개인적으로 거기에 대처하는 방법은 차이가 있겠지만, 그런 대접을 받을 때마다 나는 항상 빚을 지는 느낌이 들었다.


학부모 당사자에게 갚을 수는 없으니, 해당 아이에게 무언가 혜택을 줘야 하는데, 30명이 넘는 반 아이들이 보고 있는데, 더구나 교사로서의 양심에 비추어 해줄 것이 거의 하나도 없었다. 결국 갚을 길 없는 마음의 빚만 자꾸 늘어날 뿐이었다.


그래서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학부모들의 접대가 싹 사라졌을 때, 학부모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교사들도 마음이 홀가분해졌으리라 생각된다.



얼마 전 나는 접대를 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 지인을 만나 저녁식사를 하면서 그 아픔을 함께 한 적이 있다.


그분은 나와 같은 학교에서 용원으로 근무하다가 정년퇴임을 한 후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학교 행정실에서 의뢰가 들어와 계약직으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을 잘 해 놓아도, 한참 어린 행정실 직원이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자기 속을 뒤집어 놓는다고 하소연했다. 오랫동안 이분과 친하게 지내봐서 아는데 웬만하면 남의 험담을 안하는 호인이 이럴 정도니 누군가에게 갑질을 당한다는 게 얼마나 분통이 터질 일인가 실감이 났다. 그래서 나는 혹시 그분이 자기가 나이가 많다는 자존심 때문에 그 행정실 직원에게 굽신거리지 않아서 그런 사태가 생긴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젊은 시절, 교장이나 교감같은 관리자들에게 전혀 접대를 하지 않아서 알게 모르게 여러 불이익을 당한 경험이 있는 터라 공감이 되었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보라.''는 말이 있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다 보면 거의 모든 경우에 서로간에 가지고 있는 힘의 불평등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우세한 힘을 가진 자가 베풀기는 고사하고 약자가 가진 것을 갈취하고, 인격적인 모멸감까지 안겨준다면 되겠는가?


그런 사회는 점점 더 깊은 병이 들어 진정한 인간 관계는 찾아볼 수 없는, 서로를 불신하는 삭막한 곳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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