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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유선생 Sep 29. 2022

관 없는 장례식(3)

교원 인사에 관한 여러 자료를 쉽게 열람할 수 있는 교무부장이 인사기록부를 뒤져 황선생 본가의 전화 번호를 찾아내고 황선생이 있으면 바꿔달라고 한 것이다. 그랬더니 전화를 받은 사람이 자기가 황선생 어머니라면서 무슨 일이냐고 되묻는 것이었다. 아들이 모친상을 당했다고 학교로 통보를 했고, 조문을 간 여러 선생님들 앞에서 상복을 입고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았던 위패의 주인공, 바로 그 황선생의 어머니가 직접 전화를 받은 것이다. 아들이 근무하고 있는 학교라고 하자, ''아들이 며칠전에 본가에 와 있는데, 볼일이 있는지 밖에 나가서 안 들어왔다.'' 면서 무슨 일이냐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되물었다.

교무부장은 황선생이 학교에 모친상을 당했다고 하면서 장례식까지 치르고 있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아들이 들어오면 즉시 학교로 연락을 하도록 전해달라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드디어 한산중학교 교무실에서는 긴급 교직원회의가 열렸다.

''먼저 황선생에게 금전적인 관계가 있는 교사들의 신고를 수합해서 갚도록 조처해야 한다.''

그 의견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었다.

''그 다음은 징계위원회에서 논의를 거쳐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 의견에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문제는 그 다음, 이 사건을 재단이나 교육청에 보고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몇몇 교사들이, 특히 교장과 교감이 강력하게 반대했다. 이런 일이 외부에 알려지게 되면 학교의 명예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게 뻔하다는 논리였다.

몇 시간 동안 기다렸지만 황선생에게서는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런 거짓말을 하고도 어떻게 동료교사들 앞에 얼굴을 내밀 것인가? 하지만 빚을 청산하지 않고 이대로 그냥 끝낼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금전적인 문제를 조사한 결과, 관련된 교사들이 18명이고 총액은 2억 2천만원 정도였다. 당시 황선생 연봉의 10배,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에게 빌린 것은 또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었다.

멀쩡히 살아있는 어머니를 사망했다고 속여 거짓 장례식을 꾸며서 동료교사들의 부의금까지 챙긴 것은 결국 지금까지 이런저런 사유를 달아서 빌려간 돈을 갚지 않겠다는 표시라고밖에는 볼 수 없었다.

저녁 무렵, 대다수 교사들이 퇴근도 못하고 웅성거리고 있을 때, 황선생의 아버지라고 하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 왔다.

황선생이 면도날로 팔목을 그어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얘기였다.

평소 같았으면 다들 깜짝 놀라서 걱정을 했을 테지만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나니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황선생과 같이 근무했던 한산중학교 교사들이라면 누구라도 그가 정말 자살하려고 그런게 아니라 지금의 곤란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꼼수를 부린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황선생과 동료교사들 사이에 있었던 금전적인 관계는 다양했다. 직접 몇 백만원을 현금으로 빌려준 것이나 컴퓨터를 싸게 사준다는 구실로 대금을 미리 받아둔 것도 여러 건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형태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서 연대보증을 서 준 것이었다. 아무래도 큰돈을 쌓아놓고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려는데 보증 좀 서 달라는 것을 거절할 리가 없다는 점을 노렸다고 볼 수 있었다. 또한 여러 사람들에게 직접 돈을 빌렸다는 건 소문이 날 수도 있지만, 은행에서 자기 이름이 아니라 황선생 이름으로 돈을 빌리는 일에  도장을 찍어줬다는 건 당사자들이 쉽게 잊어버릴 개연성이 농후했다.

그런데다가 상대적으로 거액을, 그것도 여러 차례 보증을 서 준 교사들은 거의 다 황선생과 연배가 비슷했고 술을 좋아하는 남교사들이었다는 점이었다.

황선생이 고급 주점에 자주 드나든다는 소문은 뜬소문이 아니라, 보증 서달라고 부탁할 동료교사에게 부담을 느낄 만큼 과분한 접대를 해서 거절할 명분을 주지 않으려고 행해진 치밀한 전략이나 다름없었다.

지금까지 드러난 행태로 추측할 때, 황선생이 은행에서 빌려간 돈을 갚지 않겠다는 심산이라는 건 누가봐도 뻔한 일이었다. 그리고 황선생이 갚지 않은 은행 채무는 당연히 연대보증을 서준 동료교사들이 대신 떠안게 될 것이었다.

일이 이렇게 된 상황에서 황선생이 학교로 돌아올 확률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빠른 시일내에 채무를 상환하도록 해야 하는데 여기저기서 돈을 꾸어갔다는 건, 그리고 개개인적으로는 얼마 안되는 금액이지만 사기를 쳐서 받은 부조금을 누구에게도 돌려주지 않는 걸 보면 빚을 한 푼도 갚지 않겠다는 심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른바 '배째라'는 말이었다.

교무부장이 이런저런 통로를 거쳐 알아본 결과 얼마 안 되는 퇴직금마저도 몇 달 전에 최대한도로 대출을 받아간데다, 얼마 남지 않은 금액마저도 채권자가 손을 댈 수 없다고 한다.

김선생은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황선생에게 돈을 빌려주었다거나 보증을 서달라는 제의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건 김선생이 친목회 총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황선생이 여기저기서 돈을 빌리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빨리 수면 위로 떠오를지 모른다고 조심한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어쩌면 황선생이 작성해 둔 연대 보증 서달라고 부탁할 예정 리스트에서 아직 순서가 오지 않은 시점에서 이번 사기극이 들통난 것인지도 모른다.

또다시 긴급 교직원회의가 열리고, 여러가지 대응책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발해야 한다.''

''징계위원회를 열어서 재단에 파면을 건의해야 한다.''

''학교 차원의 대책반을 구성해 황선생의 본가를 찾아가 빚을 갚도록 요구해야 한다.''

''언론에 공개해서 어디에서도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도록 망신을 주어야 한다.''

백가쟁명식으로 의견은 나왔으나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럼 무슨 사기 혐의로 고발해야 하는가? 가짜 장례식으로 부의금을 착복했다고? 사기를 쳐서 은행 보증을 서달라 했다고?

황선생의 본가를 찾아가 봐야 소득이 있을 리 없었다. 어머니라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고, 아버지라는 사람은 아들이 꾸민 사기극에 처음부터 공모를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재단에 파면을 건의한다는 것도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빌려간 돈을 안 갚겠다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은 어려우니 차차 갚아 나가겠다고 말하고 있으니.

언론에 공개해서 망신을 줘야 한다는 의견도 누워서 침뱉기가 될 소지가 다분했다.

'황선생은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지금까지 곁눈질 한번 없이 교직 사회라는 좁은 우물 안에서만 살아온 김선생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이 사람 저사람의 입을 통해서, 소문들은 어떤 구체적인 근거도 없었지만 골목 골목을 휩쓸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한산중학교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황선생이 작년에 아버지 명의로 서울에서 컴퓨터 관련 업체를 차렸다던데 잘 안 되는가 봐.''

''그 사람 어머니가 암에 걸려서 병원에 다녔다는 것도 사실이 아닐거야.''

''사업 벌여놓은 것 때문에 서울에 가봐야 하니, 어머니가 아프다고 핑곗거리를 꾸며냈나 봐요.''

''황선생 아버지란 사람도 이번 가짜 장례식을 황선생이랑 공모해서 추진한 게 틀림없어.''

''부인이 보통 여기에 안 있고, 주로 서울에서 지내는 것 같던데 혹시 딴살림을 차리느라 돈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황선생이 부인을 함부로 대하는 건 틀림없는 것 같아요. 이번 일도 황선생이 자기 마음대로 하는 거지, 부인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안 보이잖아요.''

''황선생 어머니라는 사람도 그렇지. 남편이랑 아들이 자기가 죽었다고 장례를 지낸다는 데도 어떻게 우리한테 하소연 한 마디 안 하지?''

''여자들은 발언권이 아예 없는 지도 모르죠.''

''아직 나이가 젊은데 신용불량자가 되어 어찌 살아가려고 그러지? 애는 앞으로 어찌 되고?''

김선생은 이런저런 이유보다 여기가 각자 별 연고가 없는 사람들이 모여 조직을 이루고 있는 직장이기 때문에 이런 사고가 발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만약 혈연관계로 얽혀 있거나 중고등학교 동창이라면, 언젠가 어디선가 만날 수 있고 소문이 널리 퍼질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여기는 연고가 전혀 없는 타향인데다 좀 결속력이 약한 대학 동문들 몇 명이 있을 뿐이니 떠나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라 이런 일을 벌이기가 쉬웠을 수가 있을 터였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황금 제일주의, 물질 만능의 시대적 흐름이 황선생같은 사람을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4 명으로 구성된 학교 대표단이 황선생이 입원해 있다는 병원을 찾아가 빌려간 돈을 빨리 갚으라고 했으나, 지금은 돈이 없으니 시일을 두고 차차 갚겠다는 말뿐이었다. 그 많은 돈을 어떻게 했느냐고 물으니 어머니 암 치료비로 다 쓰고 한푼도 남지 않았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자살하겠다고 면도날로 팔목을 그었다는 사람의 멱살을 잡을 수도 없고, 그 먼 서울에서 마냥 기다릴 수도 없어 대표단은 아무 소득도 없이 철수했다.

그리고 며칠 후 황선생은 아버지를 자기 대신 재단에 보내서 사표를 제출하고 퇴직금도 알뜰하게 챙겨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선생에게서 돈을 받아내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다.

어떤 이는 황선생의 본가로 전화를 걸어 보았고, 어떤 이는 법원에 가서 황선생의 계좌에 돈이 들어오면 먼저 빚을 갚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황선생 본가에서는 성의없이 전화를 받아 ''돈이 마련되면 갚도록 하겠다.''는 판에 박힌 소리를 반복할 뿐이었고, 황선생은 자기 이름으로 된 계좌는 일절 만들지 않았다. 사기를 치기로 치밀하게 준비한 사람이 허술한 그물을 쳐놓았을 리가 만무했다.

몇 해가 지나면서 보증을 서 준 사람들은 불어나는 이자가 두려워 어쩔수 없이 자기 돈으로 황선생의 빚을 대신 갚았고, 직접 돈을 빌려주거나 물품을 받기로 하고 대금을 맡긴 사람들은 아예 받을 생각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게 황선생은 한산중학교 교직 사회에 누구도 쉽게 믿지 못하는 불신의 풍토를 남겨놓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갔다.

김시백 선생은 봉은사역에서 나와 이제 집으로 내려갈 버스 시간에 맞춰 고속터미널행 지하철을 탔다. 해가 세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마스크 속에 얼굴을 감추고 있는 사람들이 객실을 가득 메우고 어디론가 자기 갈길을 향하고 있었다. 열차에 설치되어 있는 객실 모니터에서는 보이스피싱에 대한 유의사항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기를 당했어도, 갖가지 주의보가 나돌아도, 여전히 사람들은 낚시꾼이 던져놓은 미끼에 걸려들고 있었다.

'과연 우리는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하나?'

'지금도 사람보다 돈이 더 중요한 시대인가?'

김시백 선생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짙은 안개 속에 홀로 남겨진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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