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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Mar 30. 2023

고양이가 구원한 남자들

제5회 서울동물영화제 <캣대디들> 프로그램 노트


캣대디들 Cat Daddies

미에 호앙 | 미국 | 2021 | 89분 | 다큐멘터리 | 12세 관람가


세상은 고양이와 여성을 으레 하나로 묶어 대상화한다. 우아하고 새침한 고양이의 성정을 전통적인 여성성에 빗대고, 길고양이를 돌보는 이들은 ‘캣맘’이라 부른다. 이 과정에서 고양이와 남성은 지워져 왔다. 남성이 돌봄의 주체가 되어 고양이와 함께하는 모습은 상대적으로 낯설다. ‘남자답지’ 않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남성은 특이한가? 미에 호앙 감독은 그 답을 찾기 위해 ‘고양이 아빠’를 자처한 일곱 남성의 삶을 들여다 본다.


직업도 성격도 다른 남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고양이와 함께 하며 크고 작은 변화를 맞이한다. 어떤 배우는 고양이 덕분에 닫혀 있던 기회가 열렸다. 소방서에 보금자리를 얻은 고양이는 소방관들에게 공존에서 오는 위안을 알려 준다. 도시와 국경을 넘나드는 트럭 운전자는 고양이와 함께 있기에 어디서든 집에 있다고 느낀다. 무일푼 노숙인이 목숨을 살려낸 새끼 고양이는 어느새 그에게 삶의 이유가 되어 있다.


감독은 “현대의 남성성과 유동적인 성 역할을 탐구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고양이 사랑을 숨기지 않는 모습은 특정 성 역할에 갇혀 있지 않다. 그들의 삶엔 생명을 향한 선의와 사랑, 교감을 통한 행복이 있을 뿐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오랜 시간에 걸쳐 굳어진 사회적 비유를 부드럽게 허문다. 특별한 건 고양이를 사랑하는 남성이 아니라 고양이다. 고양이 한 마리로 인해 삶이 충만해지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당신이 어떤 성별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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