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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Oct 09. 2020

한글날에 왜 맞춤법을 걱정할까

세종대왕이 만든 것도 아닌데


어김없이 돌아왔다. 1년에 한 번, 하루 종일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라고 중얼거리게 되는 날. 여기저기서 맞춤법 퀴즈가 열리고 신조어 저격꾼들이 활개 치고 멀쩡히 로마자 표기법에 따른 외국어 단어를 보면서 세종대왕님이 하늘에서 슬퍼하신다며 울부짖는 날. 한글날이다.


아니, 한글 창제를 기념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나 한글 되게 사랑한다. 대학교 졸업 요건이 한자능력검정시험 2급인 바람에 고졸로 남을 뻔한 사람으로서, 이 쉽고도 명확한 문자 체계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한글날의 의미가 흐려지는 걸 두고 보기가 어렵다. ‘한글이 파괴되고 있다’는 이들이 예로 드는 것들이 ‘빼박캔트’, ‘취존’, ‘갑분싸’ 일 때의 절망이란. 이런 건 굳이 따지자면 ‘한글 파괴’가 아니라 ‘한국어 파괴’다. 근데 왜 공공기관이나 언론마저 이 문제를 바로잡지 못하고, 오히려 앞장을 서고 있느냔 말이다.


세상에 외치고 싶다.
‘한글’은 ‘한국어’가 아니다.
‘한글’과 ‘한국어’는 다르다.
‘한글’은 문자고, ‘한국어’는 언어다.
세종대왕은 한국어를 만들지 않았다.
세종대왕은 현대 맞춤법을 모른다.


자, 한글날마다 집중 조명되는 소위 ‘한글 파괴’를 살펴보자. 크게 세 갈래다. 맞춤법에 어긋나는 표현(웨않되?), 주로 인터넷 세상에서 태어난 신조어와 줄임말(운빨, 딥빡..), 그리고 대체할 우리말이 분명히 있는데도 무분별하게 남용되는 외국어(러블리하면서도 시크한 머스트 해브 아이템). 이 모든 사례의 피해자는 ‘한글’이 아니고 ‘한국어’다. 왜냐고?




맞춤법에 어긋나는 표현

맞춤법 지적은 그나마 납득할 여지가 있다. 문자의 형태, 띄어쓰기, 문장부호 활용법 등을 정리한 규칙의 정식 명칭이 ‘한글 맞춤법’이기 때문이다. 과거 ‘훈민정음’에도 자음과 모음의 종류뿐 아니라 이들을 조합하여 사용하는 규칙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훈민정음’을 ‘한글 맞춤법’의 효시로 본다. 현대 맞춤법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뻘인 셈이다. 이런 역사를 고려하면 한글날에 맞춤법을 지키자고 주장하는 게 영 동떨어진 얘기는 아닐 수도 있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다르다. ‘한글로써 우리말을 표기하는 규칙’이어서 ‘한글 맞춤법’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이는 ‘한국어 어문 규범’ 안에 있다. ‘한글 맞춤법’ 본문 제1장 1항이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이다. 맞춤법이 맞고 틀리는 기준은 우리말, 즉 ‘한국어’란 말이다. 맞춤법 오류를 ‘한글 파괴’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근거도 ‘한국어’다. 단순히 초성-중성-종성을 결합해 올바른 문자를 만드는 일차원적인 맞춤법이 아니라, 보다 넓은 의미인 ‘국어 정서법’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괴자번호’, ‘마국간’, ‘궁곳질’, ‘감기 빨리 낳으세요’... 스쳐 보기만 해도 명치가 답답해지는 글자들이지만 ‘한글’ 자체는 파괴되지 않았다. 자음과 모음이 아주 올바르게 제자리를 찾아서 앉아 있다. 이 문자의 조합들이 ‘틀린’ 이유는 어법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약속한 언어 규범을 어겼기 때문이다. 세종대왕님은 이 약속을 모른다. 1988년에 확립되고 2017년까지도 야금야금 개정을 거쳐 온 맞춤법이니까. 그러니까 현대 맞춤법을 틀릴 때마다 세종대왕님께 죄송할 필요는 없다. 차라리 주시경 선생을 찾는 게 옳겠다.



신조어와 줄임말

신조어와 줄임말은 무조건 ‘틀렸다’고 하기엔 약간 애매하다. 없다가 새로 생긴 말에 기존 어문 규범을 댈 수도 없고, 줄임말은 본래는 틀리지 않은 말을 짧게만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언어가 시대에 적응하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젊은 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지고 빠르게 사라지다 보니, 세대 간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는 ‘한국어 파괴’가 맞긴 하다. “엄빠 결기 선물 샀더니 갑통알 실화?”가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이어서 선물 샀더니 갑자기 통장이 비어서 아르바이트해야 하는 거 믿어지니?”의 뜻임을 대부분의 어른들은 한 번 듣고 모를 테다. 그래도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 문장을 받아 적을 수도,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한글 파괴’는 아니라는 거다.


다만 ‘멍멍이’를 ‘댕댕이’로 쓰고 ‘ㅇㅇ’, ‘ㄴㄴ’ 등 초성으로만 의사 전달을 하는 사례는 ‘한글 파괴’가 맞다. 한글의 철자법을 무시했고, 표준어 문법에 따라 의미가 일관되게 해석되지도 않는다. 그래도 자음만으로 대화가 이뤄지는 신통한 상황을 세종대왕이 보고서 통탄할지는 의문이다. 되레 당신이 참 문자 하나 기똥차게 만들었다며 껄껄 웃지 않으실까.



외국어 남용

내가 정말 눈 뜨고 못 보겠는 건 외국어 표기가 ‘한글’을 해친다고 믿는 부류다. ‘보그체’라며 외국어와 외래어를 남발하는 패션 잡지 문체가 한창 웃음거리일 때가 있었다. 요식 업계나 자동차 업계도 마찬가지다. 고유명사이거나, 대체어가 없는 전문 용어도 아닌데 괜히 외국어를 가져다 쓴다. 이런 글이 문제 없다는 게 아니다. 적어도 ‘한글 파괴’는 아니라는 거다. ‘오뜨꾸뛰르’, ‘프레타포르테’ 같은 프랑스어가 발음을 거의 유지한 채 우리말 문장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는 사실이 되레 경이롭다. ‘한글’의 힘이다.


몇 년 전 트위터에서 “한글날을 맞아 오늘은 외국어를 한 마디도 안 쓰겠다!”며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생활 속 모든 외래어와 외국어를 ‘한국어’로 치환해서 쓰고 있었다. 그럼 뭐 평소엔 ‘아이라이너’를 ‘eye liner’로, ‘햄버거’를 ‘hamburger’로 쓰고 살았던 건지 묻고 싶다. ‘아이라이너’는 외국어를 로마자 표기법에 따라 표기한 ‘한글’이다. ‘햄버거’도 ‘오렌지주스’도 ‘트렌치코트’도 마찬가지다. 웬만한 외래어와 외국어는 ‘한글’로 잘만 표기하고 살았을 텐데 왜 갑자기 ‘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건가. 역시 ‘한글’과 ‘한국어’를 혼동해서 생기는 일이다. 외국어가 너무 쉽게 섞여 들어서 우리말을 좀먹는다고 여겨진다면, 세종대왕님이 만드신 ‘한글’은 피해자는커녕 그 사태의 가장 큰 조력자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롤 서로 사맛디 아니할새, 양반이고 평민이고 다 같이 읽고 써보자고 만든 문자가 ‘한글’이다. 맞춤법을 잘 몰라도, 소리 나는 대로만 받아 쓰면 기초적인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어지는 마법 같은 문자다. 덕분에 우린 와썹맨 박준형이, 귀화 일본인 강남이 엉터리로 쓰는 한국어를 이해하고 웃을 수 있다. 국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할머니가 삐뚤빼뚤하게 남긴 메모가 ‘キャベツ’가 아닌 ‘갸배쓰’여서, 시장에서 양배추를 사셔야 하나보다- 알 수 있다. 매년 ‘한글 파괴’라며 쏟아지는 기사들은 대부분 ‘한국어 파괴’를 말하고 있으며, 역으로 소리문자 ‘한글’의 우수성을 증명하곤 한다.


‘한글’이 위대한 이유를 곱씹는다면, 한글날은 어쩌면 1년 중 ‘한국어 파괴’에 관대해도 좋은 유일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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