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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photo Feb 01. 2024

콧노래

며칠을 집에만 있다가 바깥바람을 쐬러 길을 걸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온다.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이 있으~려나. 흠흠흥~! (쾌지나 칭칭 나네)”

내용이랄 게 없는 가사로 즉석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순간 내 것에 화음이 쌓였다. 나를 스쳐 지나가던 아저씨의 콧노래가 내 노래에 얹어진 거다. 길에서 소리가 다 나게 콧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참 귀엽다.(물론 나도 포함해서다.) 나 같은 4차원이 또 있다는 생각에 너무 신이 났다. 순간 가던 방향을 돌려 아저씨를 따라가며 콧노래를 이어갈 뻔했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 아저씨에게 겁을 줄 수는 없어서 좇아가기를 관두었다. 다 큰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이상하게 보일 것을 무릅쓰고 내적 신남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희미하게 부르는 노래라니. 옆에서 기본박마다 박수를 쳐주고 싶은 기분마저 든다. 이런 내 모습에 당황할 사람들의 표정을 떠올리면 왠지 음침하게 웃게 된달까. 크으크으크으으.


내가 콧노래를 부르다 추후엔 작곡이라는 취미까지 갖게 된 건 우리 엄마의 영향이 컸을 거다. 엄마는 설거지를 끝내고 싱크대 물기를 닦다가도, 뱃살을 빼는 데에 좋다는 일명 'AB슬라이드'라는 운동을 하다가도, 양념 간이 딱 맞아떨어져 흥이 오를 때에도, 신묘한 춤을 추며 콧노래를 부르곤 했다. 산신령이 지팡이 하나로 도술을 부려 꼬부랑꼬부랑 산을 타듯 신명 나게 음을 이리저리 타던 엄마의 콧노래는 그야말로 기가 막혔다. 당시에 KBS에서 토요일 아침마다 <도전! 주부가요스타>라는 노래 경연프로그램이 방영되었는데, 우리 엄마는 가사를 부르지 않고 콧노래만 불러도 거기에서 우승할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여겼더랬다. 하루의 모든 일과를 콧노래로 지어 부르던 엄마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게 재밌었다. 그래서인가. 콧노래를 부르면 누군가와 함께 있는 느낌이 들어서 외롭지 않고 그저 즐거워진다.


어제도 역시 콧노래를 불렀다. 책으로만 만나왔던 이슬아 작가님, 그리고 얼마 전 그의 동반자가 되신 이훤 작가님의 합동 북토크에 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북토크에 오신 관객 분들이 작가님들의 말씀에 다들 얼마나 귀를 기울이시던지. 가끔씩 집중을 못하고 주의가 산만해지는 나를 가다듬으며 바른 자세로 듣게 되었다. 경청해 주심에 감사하다며 두 작가님께서 답가로 돈 맥클린(Don Mclean)의 <Vincent>를 불러주셨다.(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했던 반 고흐를, 인생 100주년에 추모하기 위해 만든 노래라고 한다.) 그중 유독 귀에 꽂히는 노랫말이 들렸다. 

"네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이제 알 것 같아.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지나간 콧노래와 그 비스무리한 것들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 뭐였을까, 떠올리다 보니 두 작가님의 노래가 끝이 났다. 답을 찾지 못한 채로 여운이 남아서인지 다음에 노래를 듣게 될 때는 노래 부르는 이를 더 잘 들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노래가 끝났을 때, '네'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이제 알 것 같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루어뒀던 작별인사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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