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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photo Jun 19. 2024

종이공

열 살의 연애

“연애다운 첫 연애를 한 건 언제였어요?”


두 번째 데이트에서나 들을 법한 이 질문에 나는 늘,


“스물네 살요. 대학 졸업할 때까지 외사랑만 하고 주는 사랑은 안 받겠다고 고집을 피우다 연애다운 연애를 해본 적이 없거든요.”라고 답해왔지만.



이것은 거짓말이다.



호기심이 왕성한 탓에 무어든 빨리 알고 싶었던 내가 스물네 살에서야 연애에 관심을 가졌을 리가 없다. 남들 다하는 거라면 뒤처지기 싫어하기도 했고, 마음속에서 이상하게 일렁이던 그 마음을 모른 채 넘어가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만난 지 얼마 안 된 이 앞에 첫 연애담을 진솔하게 꺼내놓기엔 영 부끄럽다. 글로 써서 어디 잘 보이는 데에 읽어보라고 슬쩍 놓아두는 수밖에.



열 살 소년 규진이(가명)는 열 살의 나와 같은 반이었다. 규진이는 넉살이 좋고 유머 감각이 훌륭한 아이였다. 그 아이 주변에는 늘 규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깔깔 웃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의 주책맞은 나와는 달리 잘 웃지도 않고 말도 없는 편이었다. 아이들 따라 웃는 나를 규진이가 보기라도 할까 봐 늘 하나도 관심 없는 척을 했다. 내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듯 이것저것 하고 있었지만, 실로는 그 아이의 이야기에 온 신경이 가있었다. 그 아이의 말에 교실이 온통 왁자지껄해지는 순간에는 내 두 콧구멍이 커지는 걸 다스려야 했다. 속으로 박장대소하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내 표정을 감추다 보면, 콧구멍이 하늘 위로 갈수록 부풀어 오르는 헬륨 풍선 마냥 무진장 커졌기 때문이었다.



[쉬는 시간]


동급생 1 (만 10세): “규진이 진짜 깜찍하고 재밌지 않나?”


동급생 2 (만 10세): “맞다. 거기다가 머스마가 축구도 잘한다 아이가. 멋있어.”


동급생 3 (만 10세): “은근 생긴 것도 귀엽다. 깎아놓은 밤톨처럼.”



안화용 (만 10세): (끄덕끄덕) ‘글치. 규진이 진짜 깜찍하고 귀엽지. 멋있고.’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은 HOT나 god에 대한 얘기보다도 규진이에 대한 얘기를 더 많이 나눴다. 친구들 사이에서 소리 없이 그들의 말을 듣기만 하다가 어느 날엔 나 역시 나도 모르게 규진이의 매력들을 속으로 나열할 수 있게 되었다. 범생이인 나였기에 무슨 데이에 초콜릿이나 사탕 따위를 못 받아도 기분이 괜찮았던 거였는데. 이거 큰일이었다. 이성에 눈을 떠버린 것이다. 규진이가 오로지 나에게만 초콜릿과 사탕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물며 우리 집 강아지도 가족들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는데 생판 남인 규진이가 나에게만 관심을 주었으면 한다니. 엄마 말대로 나는 정말 나만 아는 이기적인 아이인가 싶어서 괜히 울적해졌다. 모든 친구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규진이를 보면 잠시 서운했다가 나 역시 다정하게 대해줄 때면 또 괜찮아졌다. 자신을 보며 웃다가도 갑자기 싸늘해지는 나의 기색에 당황스러워하는 규진이의 눈동자를 보고선 결심했다. 옆 반 남자아이도 내 친구에게 했다는 그것을. 고.백.



고백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직접 말로 전하는 고백은 차마 선택할 수 없었다. 인생 1회 차 10살의 나는 좋아하는 아이의 눈을 바라보는 것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내 표정과 내 눈동자를 규진이가 다 읽고 내 마음을 알아챌 것 같아 두려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들키려고 하는 것이 고백 아닌가 싶어서, 상대가 알 수 없게 마음을 전하려던 열 살의 내가 귀여우면서도 우습다.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가서 알려준다 해도 그 아이가 육성 고백을 당차게 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다 열 살 여자아이의 심장이 콩닥콩닥거리다 터져버릴지도 모르니. 공부만 열심히 하느라 바른 글씨를 잘 쓰게 된 열 살이 선택한 회심의 방법은 바로 연서였다.



[  좋아해  ]



공책 한 장 귀퉁이를 찢어서는 정자로 잘 쓰던 글씨를 알 듯 말 듯 모르게 구겨진 듯 적었다. 너무 반듯하게 적으면 규진이가 친구들에게 이것 보라며 화용이가 나를 좋아한대, 하고 소문을 내서는 동네방네 우리 학교 애들이 나를 놀리고 다닐 거 같았기 때문이다. 눈싸움하려 눈을 뭉치듯 꼬깃꼬깃한 종이를 더 동글동글하게 말아서는 열이 잔뜩 나는 손에 꾹 쥐고선 두세 자리 건너 앞쪽에 앉은 규진이 뒷모습만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딩-동-댕-동!”



하교 시간이었다. 놀기 좋아하는 규진이답게 그 아이는 하교 종이 치자마자 잽싸게 교실 문을 박차고 나가선 학교 정문으로 뛰어갔다. 평소에 운동도 안 하던 내가 그 아이를 따라잡느라 얼마나 숨이 찼는지 모른다. 잘 뛰지 않는 내가 숨을 헐떡이며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것인지 그냥 교문을 향해 뛰는 것인지 어리둥절해진 규진이는 날리던 운동장 모래 먼지를 잠재우며 속도를 줄이고서는 나를 가만히 봤다.



“니 내 따라오는 거가?”


“어. 줄 게 있어서.”


“줄 거?”


“(지우개 똥 크기의 조그만 종이공을 내밀며) 응. 이거…. 그럼, 안녕!!!”


‘?’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그날 오후와 밤에도, 다음날 수업 시간에도 마음이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종이공에 대한 대답이 어떻게 오려나 싶어서였다. 아마 그날 아침 엄마에게 졸라서 가장 예쁜 머리 방울로 머리를 묶고 갔을 나는 하굣길을 터덜터덜 걸었을 거다. 하루 종일 답장을 받지 못해서였다. 하굣길에서 고백을 전했으니 하굣길에서 그 답을 받을지도 모른다며 혼자 기대도 잠시 해보았지만 내 뒤에는 규진이 같은 모습을 한 남자아이는 없어 보였다. 그때 내 발 앞에 끝이 닳아있는 축구 운동화를 신은 아이가 나타났다. 내가 기다리던 아이였다. 그 아이는 평소에 재미있는 말만 할 줄 알지 좋아하는 아이에게 고백을 해본 적이 없었나 보다. 숙맥이던 내가 그걸 알아챈 건 내 손을 향하는 그 아이 손에 종이공이 쥐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  나도 좋아해  ]



그러니 나의 첫 연애는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비행기 게임 <라이덴> 끝판왕 깨기, 우리 집에서 엄마가 해준 떡볶이, 철길 시장 구경하며 걷기, 엄마가 준 용돈을 받아 <플레이월드>(지금의 대형 키즈카페)에서 하루 종일 놀면서 서로 웃는 모습 놀리기 같은 장면들이 아직도 선명한 색깔로 선연한 걸 보면. 열 살이었어도 우리는 좋아하는 마음의 모양을 알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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