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들이 꽉꽉 운다. 아마 두세 시간째. 덕분에 이 세상에 사람과 고양이 말고 다른 동물들도 있었지,라는 생각을 하며 창밖을 보려고 창가 책상에 앉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에만 해도 비가 엄청 와서 집 앞 공원의 산책로에 있는 다리까지 물에 잠겨있더니 한숨 자고 일어나 보니 어느새 물이 빠져있다. 배수업체가 다녀간 걸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인공호수의 물 높이는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범람한 물이 지나간 농구장을 세척하는 사람들과 불평하듯 꽉꽉 우는 거위들의 소리로 내가 아침에 본 게 헛것이 아니었다는 걸 안다.
요즘은 아무것도 안 해서 불안해지더라도 ‘아무것도 안 하기’를 해보려 노력 중이다. 휴직 중이니 해야 하는 일도 없는 요즘엔 돈만 아껴 쓰고 반려묘 율무와 나만 잘 돌보면 그저 장땡이겠다. 어디 나가서 전시회도 보고 북토크도 듣고 좋은 풍경에서 신선놀음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좋을 테지만 사실 그걸 한다고 해서 내 마음이 편해지지 않으리라는 걸 이미 다 해보아서 안다. 내 속이 훨씬 시끄러운데 조금 소란스러운 바깥을 다녀온다 한들 내 안에서 들려오는 말들을 소거할 수는 없는 거니까. 고요하게 괴로워지는 곳의 도어록 비밀번호를 다시 누르는 것보다야 집에 머무르는 편이 안전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기복 없이 잔잔한 편이 낫다.
글을 한편씩 쓸 때마다 고민이 늘게 된다. 내가 진짜 쓰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아직 쓰지도 말하지도 못했는데 그걸 결국은 쓸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내 마음은 회복하고 싶은데 누군가의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고, 내 이야기는 하고 싶은데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의 비밀을 말하고 싶지는 않아서다. 소설로 써볼 생각은 더더욱 없다. 소설이라는 핑계로 내가 어디까지 적어버리게 될지 모르겠어서다. 한번 쓰기 시작하면 그 마음은 통제할 수 없는 광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진짜 쓰고 싶은 것은 못 쓰고 실없는 농담 같은 말을 얹는 글을 요즘 계속 쓰게 되었다. 사실 내가 진짜 쓰고 싶은 건 “밤양갱”인데. “밤양갱”에 대한 묘사는 결계에 묶여있는 게 나을 것 같다. 농구장을 청소하는 사람들, 꽉꽉 우는 거위들만 모른 체 하면 오늘 집 앞 호수의 물이 넘쳤다는 게 어쩌면 내게 있어서만큼은 없는 일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써버리면 모두가 알게 되니까. 내가 기억하고 당신을 미워하고 있다는 걸.
그래서 어제는 그중 하나를 꺼내어 남자친구에게만 말을 했다. 어린 시절 들었던 말 하나를. 이렇게 말하고 나면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상처가 뾰로롱 사라져야 하는데. 실로는 그렇지 않다고. 자장면. 이런 말도 안 되는 단어 하나로도 연결되어 그 말이 다시금 파도가 치듯 또 찾아오고,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처럼 마음이 아프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을 한 그 시절의 사람의 심정을 그때의 어린 나도 이해했다고. 그렇게 다 이해하고 나면, 결국엔 스스로를 돌보는 마음만 모른 척하면 되고. 어디에서도 스스로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어린아이가 내 고요한 속에서 사무치게 꺽꺽 우는 소리를 견뎌야 한다고. 그러면서 울었고.
물론 그 아이는 겨우 이 정도 위로로는 울음을 그치지 않을 테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지내보려고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