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한강 작가님)
2006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의 일이다. 구독하던 종이신문에 실린 이도저도 아니게 무딘 칼럼들을 며칠 읽다가 내가 이것보다는 ‘동북공정’을 예리하게 다룰 수 있겠다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가열차게 글을 쓴 적이 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라 학교 기숙사 같은 방 친구들이 공부를 하러 면학실에 간 사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과 인쇄해 온 종이들을 내 앉은자리에 잔뜩 펼쳐놓고는 열을 올리며 연필로 종이 여백을 채우던 기억이 난다. 글을 써놓고 살짝 거리를 놓고 떨어져서 글 전체의 매무새를 살펴보니 나도 칼럼을 실어보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의 호기와는 달리 내 글이 얼마나 초라해 보이던지. 지우개로 미처 다 지워내지 못한 얼룩진 공백을 대체할 다른 어떤 단어와 문장을 가져다 붙여보아도 그 글은 넥타이를 처음 매어본 사회초년생의 옷차림처럼 어딘가 어수룩할 따름이었다.
도전이라면 일단 하고 보는 나였지만 이 글은 그저 고등학생 치고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고, 고등학생 치고 비교적 잘 쓴 것에 불과하다는 걸 해당 신문의 오랜 구독자로서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날고 기는 전문 칼럼니스트 사이에서 내 글이 뾰족하게 빛을 발하려면 이 정도로는 부족할 터였다. 원고 투고를 과감히 단념한 대신 다가오는 주말을 기다리기로 했다. 내 성에는 안 차는 글을 누가 볼 새라 기숙사 침대 베개맡에 꽁꽁 숨겨두었다. 토요일 보충 수업이 끝나고 얼른 집으로 달려갔다. 집에는 그저 내가 쓰고 만든 것이라면 무조건 박수를 쳐주고 ‘우리 언니가 최고’라고 말해주는 동생 지용이가 있었다. 동생의 격려로 내 마음속이 가득 채워질 환희를 어서 느끼고 싶었다. 아래 글을 마치 만민공동회가 열릴 법한 광장에서 웅변을 하듯 또박또박 발음하며 읽었다.
현 우리의 역사란 무엇인가? (2006년 작) (요약) ― 중국의 동북공정에 관하여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만 16세 안화용 씀.
얼마 전부터, 아니 오래전부터 대한민국의 역사가 뒤흔들리고 있다. (중략) 중국에게 남은 과제는 단 하나, 중국 국민들이 그것을 인식하는 것뿐이다. 이마저 끝이 나게 되면 대한민국은 뿌리도 없고 정체성도 없는 나라가 되어 버릴 것이다. (중략) 정부에게도 큰 잘못이 있다. (중략)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는 모순이 있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과연 나에게는,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국민인 우리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는가? E.H. 카아는 역사란 현재사회와 과거사회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대화의 주체는 누구여야 하는가? 당연히 그 사회의 주인인 우리가 되어야 한다. (중략)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철학자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라고 말했다. 역사란 현재의 눈을 통해서 현재의 문제에 비추어서 과거를 보는 것에 성립한다는 뜻인데,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을 정곡으로 찌르는 말이다. (중략) 우리는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봐야 한다. 과거의 눈으로 과거를 본다면 그것은 일종의 ‘죽은 역사’이지 ‘산 역사’가 결코 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세계가 인정하는 역사가 될 수 없다. (중략) 우리의 역사가 제자리에 돌아오기 위해서는 그동안 우리가 자국의 역사에 대해 무관심했던 만큼의 대가가 따를 것이고 더욱 힘든 상황이 될 테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강해져야 하고 (중략)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 필요가 있다. (중략) 과거에 우리가 ‘무엇’이었는지, 현재의 우리는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반드시 알아야 한다. 과거의 ‘무엇’은 흘러간 역사이고 이것은 곧 현재를 이해할 때 필요한 배경지식이 된다. (중략) 이 모든 것을 우리가 이해하고 앎으로써, 우리의 역사는 현재의 세계가 인정하는 ‘산 역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중략) 그것은 우리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이 글을 낭독하자마자 동생은 역시나 내가 최고라고 말해줬다. 이 글은 이렇게 숨겨 두기에 아깝다며, 인터넷에 몇 가지를 좀 찾아보더니 동북공정을 다루는 역사 글쓰기 대회가 있다고 여기에 내보자고 했다. 그래서 글을 보냈다. 생각보다는 규모가 큰 대회였나 보다. 마침 국사를 가르치시던 담임선생님께서 상기된 목소리로 나를 부르시더니, 공문이 왔다고 했다. 내가 전국 글쓰기 대회에서 1등 상을 받게 되었다며 교무실이 쩌렁쩌렁 울리게 기쁜 목소리로 서울에 다녀오라고 하셨다. 나까지 괜히 들떴다. 그 상태로 엄마에게 소식을 전했다. 마산에서 서울까지 오고 가는 교통비에, 엄마의 장삿일도 미뤄둔 채로 간 시상식에서 내 어깨는 한껏 솟아 있었다. 상을 받으러 온 학생들 중엔 티브이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영어로 수업을 한다던 그 명문고 학생들도 꽤 있었다. 아마 학교 차원에서 대회 참여를 더욱 장려한 거겠지,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을 포함한 고등부에서 내가 1등을 했다는 것에 잔뜩 잘난 척을 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고등부 최우수상은 안화용 학생입니다. 이번 대회에는 대상이 없는 관계로 1등 상은 대상 없는 최우수상이 되겠습니다.”
대상 없는 최우수상?, 내 글은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거구나, 왜 대상이 될 수 없었지?, 그런 생각에 골몰하느라 막상 꽃다발과 트로피를 들고 단독 사진을 찍을 땐 얼굴빛이 어두워지고 말았다. 학교에 돌아와서도 학교 조회대 단상에 올라 교장선생님께서 활짝 웃으시며 내게 상을 수여해 주셨더랬다. 별나라 같은 서울 구경을 마치고 마산에 다시 돌아온 그때까지도 나는 내가 왜 대상 없는 최우수상인지 생각하며 좌절감에 잔뜩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시상대에서 내려온 내게 친구들이 표정이 왜 이렇게 어둡냐고 물어보았던 기억이 나는 걸 보니까 말이다. 우와 어떻게 전국에서 1등을 했냐며, 축하를 건네는 친구들에겐 인상을 쓰고 손사래를 쳤다. 난 대상 없는 최우수상이라고. 별 거 아니라고. 운이 좋아서 받은 거라고. 축하의 말들을 민망해지도록 하는 굴욕을 잔뜩 선보였다.
그렇게 무어든 잘하려고 어디서든 돋보이려고 그렇게 애도 쓰고 용도 쓰고 기함도 하던 시간들이 흘러간 지금은 2024년 10월 10일, 오늘은 한강 작가님께서 노벨문학상을 받으셨다. 공식발표 직전, 작가님께선 아들과 저녁식사 후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와중에 수상 소식을 전화 한 통으로 전해 들으셨다고 한다. 그 기사를 읽고선 그저 울컥했다. 노벨문학상을 우리나라에서 받았기 때문에 생긴 감격이라기보다는, 내가 작가님의 책을 통해 읽은 그 역사 속 삶의 존엄성을 이 땅에 살지 않은 사람들과도 공유할 수 있는 거였다는 안도감 따위 때문이었을 거다. 이번의 상이 작가님이 이 세상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증빙자료 같은 것으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계의 사람들과도 나눠 가질 수 있는 역사적 증표로 느껴져서 물풍선 같은 양감의 눈물이 왈칵 나려고 했다. 이야기로도 이게 되는 거구나. 우리만의 이야기인 줄 알았던 걸 이렇게 온 세계와 나눌 수 있는 거였구나. 정체 모를 말을 중얼거리면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사실 어안이 벙벙하다.
그러고서 이제야 나는 대상 없는 최우수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한다. 진짜 살고 죽고 또 그곳에서 용케 살아남은 시선의 역사를 기록하는 이야기꾼의 자리를 비워두기 위함이었다는 걸. 그때의 내 것은 진짜 삶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의 글이었구나, 하고는. 그래도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는 알고 이야기꾼의 발자취를 얼추 따라 걸어온 스스로에게 칭찬을 보내주고 싶기도 하다. 이게 다 진짜 이야기를 써준 그 모든 영험한 책들 덕분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