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나에게 마법의 주문을 걸어본다면...
육아, 참으로 많이 어렵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했는가?
그런데 아이들은 농작물이 아니었다.
똑같은 부모가 키우는데도 애들마다 딴판이다.
부모가 ‘사랑’이랍시고 아이들에게 다가가도
아이들의 반응은 다 다르다.
그래, 우리 아이의 천성을 고려하자,
아무리 마음먹더라도 그 한계는 명확하다.
주 양육자도 그대 나름의 성향이 있고,
타고난 에너지 레벨이 다르며
그날마다 컨디션도 다 달라지기에
‘최대한’ 고려할 뿐 ‘완전’할 수는 없다.
그래서 육아는 자족하기 참 어려운 것 같다.
왜 하필 부모란 존재들은
‘최대한’ 노력하는 자신보다
‘완전’하지 않은 자신을 더 보게 될까?
부모가 완벽주의자여서?
F여서?
자존감이 낮아서?
경험상 그건 아닌 것 같다.
난 자존감이 꽤나 높은 대문자 T인데
별반 다르지 않다.
평상시 아이들의 눈빛과 행동을 보면
충분히 사랑을 주고 있음을 느끼지만,
나에게 혼난 뒤 폭싹 주눅 들은 표정을 보면
자책과 후회가 자동으로 뒤따른다.
좀 더 부드럽게 말할걸...
한 번만 더 참아볼걸...
그럼에도 최대한 자족해야 한다.
사실 그 어떤 직업도 마찬가지겠지만
일하는 사람이 스스로 만족해할 때
정신건강이 좋아지고
성과나 실적도 좋아진다.
심리학 전공자이자
정신건강 영역에서 일을 하는 1인으로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며
자족하려 최선을 다해보았다.
그리고 끝내 발견한 방법이 바로
“이만하면 괜찮은”이다.
21세기 한국에 오은영 박사님이 계시다면
20세기 영국에는 도널드 위니컷이란 분이 계셨다.
영국의 소아과 의사였던 그는
매일 같이 어린아이와 엄마들을 만나며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비교 분석하였다.
결론은,
건강한 아이는
완벽한(perfect) 부모가 아니라
이만하면 괜찮은(good enough)
부모에게서 나오더라는 거다.
부모는 아이의 필요나 욕구를
완벽히(100%) 말고
적절히(70-80%) 채워줘야 하며,
그래야만이 아이는
결핍의 경험(20-30%)을 통해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현실감을 가지며
오히려 건강하게 자란다는 거다.
(최적의 좌절, optimal frustration)
대학교 시절,
대상관계이론이라는 수업에서
저 대목을 재미있게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교수님께서는 학생들에게
이런 당부를 하셨더랬다.
“여러분들도 나중에 부모가 되면
너무 완벽해지려 하지 마요.
사실 그 누구도 완벽할 순 없죠.
10개 다 잘해주려 하지 말고
2-3개는 못해줘도 돼요.”
그리고 이 말을 덧붙이시며 웃으셨다.
“물론 그것도 쉬운 건 아니에요.”
10년이 지난 지금,
자족하는 육아빠가 되어보려 한다.
목표를 100%가 아니라 70-80%로 낮추어본다.
그것조차도 쉽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낀 채
나의 부족함을 인정해 본다.
완벽해지고자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아 본다.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이 무엇인지 고민해 본다.
비록 화려한 최신식의 육아는 아닐지라도
자연을 벗 삼고 사람을 존중하는 삶,
저 멀리 해외여행은 못 가더라도
일상을 여행처럼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살아내는 삶,
그 삶의 표본이 되어주는 것이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이겠다.
또한,
관계의 소중함 속에서
자기 존재의 다채로움을
발견해 나갈 수 있도록
곁이 되어주어야지.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대.
'이만하면 괜찮은' 사람이 되자.
-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