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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열 Aug 22. 2022

식량이 무기가 된 세상에서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 맥도날드 햄버거에서는 양상추가 사라졌습니다. 롯데리아와 버거킹에서는 감자튀김이 없어졌고 써브웨이는 샐러드 메뉴를 잠시 내렸습니다. 기후 변화로 생산량도 줄었고 코로나발 물류 대란이 겹친 탓입니다. 코로나가 끝나면서 좀 괜찮아지나 했더니 갑자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습니다.


밀 주요 생산지인 미국과 유럽 지역은 지난해부터 역대 최대의 가뭄이 이어지고 있고 밀 생산량 2위를 차지하는 중국은 거꾸로 홍수로 인해 흉작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밀 생산량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우크라이나는 다들 아시다시피 전쟁 중이고 콩 최대 생산지인 브라질도 거의 백년만에 오는 역대급 가뭄으로 개판인 상황입니다.


그러다 보니 먼 미래의 일로만 생각했던 식량 위기가 정말 우리 식탁까지 닥쳤습니다. 올해 1~4월 밀 수입 가격이 지난해에 비해 50% 가까운 수준으로 올랐습니다. 세계가 지구촌화되면서 각국이 장점을 살려 농업, 관광업, 중공업으로 분업화됐던 것이 각자도생해야 하는 현실에서는 거꾸로 인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는 지금 농업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식량의 무기화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생존이 걸린 것입니다. 잘 사는 나라들이야 먹을 거 웃돈 주고 사 오면 그만인데 못 사는 나라에서는 이게 또 큰 문제입니다. 노동력, 땅은 넘쳐나는데 기술이 부족하니까 생산량이 미치질 못하고, 부족한 식량을 사 오기엔 가격이 감당이 안되는 거죠.


중앙아시아의 내륙국 키르기스스탄도 이런 고민에 빠져있었습니다. 소련 해체 이후 독립하게 된 키르기스스탄은 연방에 의존해있던 산업들이 아주 개판인 수준이었습니다. 유목 생활이 익숙한 사람들인데 산업 기반도 없고 2000년대까지 내전이 이어지면서 경제 발전이라고는 택도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겁니다. 지금까지는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같이 이웃 국가에서 이래저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왔죠.


그래도 농업에 대한 관심은 높습니다. 키르기스스탄 노동력의 35%가 농축산업에 종사하고 있고 2021년 GDP에서 농축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13.4%에 달할 정도입니다. 문제는 전통적인 유목국가인데다가 생계형 작물 위주로 재배하다 보니 농업 기술력은 답보상태죠. 그래서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은 2022-2026년 국가개발계획에 농축산업을 포함시켜 적극적인 지원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키르기스스탄에 희소식이 하나 생겼습니다. 바로 대한민국 엔지니어링사 도화엔지니어링이 성균관대학교 자회사인 Inwater Solution Agro(IWS Agro)과 공동 투자로 스마트팜을 만든 겁니다. 그것도 ODA나 재정사업이 아닌 직접 투자로요. 가려운데만 싹 긁어주니까 스마트팜 준공식에는 자파로프 대통령과 경제상업부 장관, 농업부 장관까지 중요하다는 사람은 싹다 참석했습니다. 자파로프 대통령은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유목 생활이 익숙한 키르기스스탄은 주로 양고기와 말고기, 그리고 유제품을 주식으로 삼다보니 부족한 비타민을 생 오이와 토마토로 해결하곤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김치를 먹는 것처럼 오이와 토마토를 먹는 겁니다. 파프리카도 마찬가지구요. 근데 한겨울에는 얘네 가격이 평상시 2배가 넘게 뛰기도 합니다. 이걸 뻔히 아는데도 겨울에 생산하거나 겨울까지 저장할 기술이 없어서 비싼 돈을 주던 상황이었는데 도화가 스마트팜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한겁니다.


키르기스스탄 내에서 단일 최대 규모인 4㏊로 지어진 스마트팜에서는 오이를 비롯해 토마토, 파프리카부터 딸기, 장미까지 생산될 예정입니다. 오이의 경우 연간 1㏊당 210톤씩 생산할 수 있는 시설입니다. 기존에 노지에 재배할 때는 1㏊당 120~150톤씩 생산됐었는데 스마트팜으로 30~40% 정도 생산량이 증가한 셈입니다. 날씨와 날짜에도 상관없이 말입니다.


이렇게 기후나 토질에 구애받지 않고 생산할 수 있는 스마트팜은 전 세계의 관심을 받으면서 시장도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해외의 스마트팜 시장은 2017년 2,210억달러(284조) 규모에서 올해 4,080억달러(524조)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분석됩니다. 우리 정부도 스마트팜 관련 예산을 4년 새 8배 가까이 올리고 농림 ODA 관계기관 협의회를 개최하면서 성장세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해외 시장에 진출하고 외화벌이를 하는 것과 똑같이 국내 농업엔지니어링 분야에서도 스마트팜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세계 7대 곡물 수입국인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2020년 기준 20.2%입니다. 그나마 90%에 달하는 쌀을 제외한 나머지 곡물의 자급률은 처참한 수준인데, 콩류가 7.5%, 옥수수 0.7%, 밀은 고작 0.5%입니다.


지금까지는 국내산보다 더 싼 수입품이 있으니까 자급률이 낮아도 아무 상관 없었습니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죠. 하지만 이젠 우리가 직접 생산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도 있는 시대가 열린겁니다. 그렇다고 쌀 자급률만 믿고 버티기에는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이 너무 다양해졌습니다. 이제와서 쌀만 먹고 버티라고 하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난리가 나겠죠.


이걸 해결할 수 있는 게 바로 스마트팜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땅덩어리도 좁고 농업 노동력도 부족한 나라에 최선의 해결책입니다. 거기다 우리의 생존과도 직결된 먹거리를 우리 손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습니다. 가뭄이나 홍수, 전쟁 같은 외부의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우리 식탁에 꾸준히 우리의 먹거리가 올라올 수 있도록 보장된다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건, 우리나라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도 있습니다. 도화는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물 처리 기술을 바탕으로 수경재배 스마트팜을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태양광 에너지를 결합해 전기를 공급하고 축사에서 나오는 분뇨들을 자원화하는 기술도 적용했습니다. 스마트팜 전문 기업들은 이런 기술력에 힘입어 플러스 알파의 발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글로벌 엔지니어링 시장에서 우리나라는 후발주자다 보니 북미나 유럽 국가들에게 밀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기술력은 다 따라잡았는데 이미 시장은 선점당했고, 인지도와 신뢰도도 많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팜 시장은 우리에게 경쟁력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스마트팜 시장도 해외 선진엔지니어링 국가가 리드하고 있지만 출발선이 비슷한 만큼 이번에는 우리에게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전 세계에서는 기후 변화와 코로나, 전쟁으로 식량 위기를 겪으며 식량 안보가 최우선 과제가 됐습니다. 이전처럼 해외 농산물을 저렴하고 손쉽게 구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입니다. 불확실한 상황에 흔들리지 않게 신토불이, 우리 먹거리를 자급자족하고 거꾸로 외국에 수출도 할 수 있는 농업엔지니어링 선진국이 되는 것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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