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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A하는 아나운서 Apr 02. 2020

만삭으로 배운 '유연성'의 가치

코로나 속 만삭 일기 (3)

코로나 속 만삭 일기 (1)

"배가 도대체 어디까지 커질 수 있는 걸까?"


35주차를 넘기면서부터, 폭풍 같은 속도로 배가 눈에 띄게 커지고 . 풍선처럼 빵빵해지겠지,,,라고만 생각했던 예비맘의 상상을 넘어섰다. 수박만 한 크기가 된다더니, 진짜였네? 바늘로  찌르면 당장이라도 분수처럼 폭발해버리는  아닐까 싶을 정도로 뭔가가 단단하고 옹골차게 밀집되어 있는 느낌. 탱탱볼의 탄력이라기보다는 볼링공의 단단함에  가까운 촉감. 언제부터인가, 대학원 동기들이 " 컨디션 괜찮아?" 물을 때마다 으레껏 하는 단골 답변도  생겼다.


아니,  배가 무거워서 죽겠어.
아기가 너무 무겁거든
배가 정말 수박만큼 커질 줄이야!


30주차에 들어설 무렵까지만 해도 대충 헐렁한 옷을 걸쳐 입으면 '임산부의 태'가 나지 않을 정도로 다닐만했다. 태가 안 나서 종종 억울하고 아쉬웠을 정도니까. 함께 수업을 듣는 대학원 동기들조차 "너 너무 skinny 해서 걱정돼"라며 작은 배를 귀엽다는 듯 쳐다보곤 했는데! 출산을 일주일 가량 앞두고 있는 지금, 약 두 달 전과는 너무도 다른 상황을 매일 아침저녁 마주하고 있다. 배가 불쑥 나오다 못해 누워있다가 앉는 자세로 바꾸기도 힘들어서 끙끙 앓고 있는 모습이라니. 배에 가려 내 발등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배가 무거워진 탓일지, 하루 종일 집에만 얌전히 있는데도 등산 다녀온 것처럼 팔다리가 쑤신다. 행동은 더 느려졌고 안방에서 부엌까지 어기적어기적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오늘 운동 다했다 싶을 만큼 '게으름'의 최고점을 찍고 말았다.


 군데군데의 사이즈가 커졌다가 다시 줄어드는 , 인생에서 이미  차례 경험해   있다. 수십 번의 '다이어트'에서 이미 질리도록 체감했던 . 3  체력 보충을 핑계로 열심히 먹은 대가가 인생 최고치의 몸무게를 경험하게  주었을 , 만삭인 지금보다도 자그마치 10킬로그램이나  나갔던 시절이었다. 크나큰 체중변화로 인해 곳곳에 튼살도 많았더랬지.  12 , 아나운서 공채 준비를 하면서도 이런저런 공부들과 더불어 ' 빼기' 또한 크나큰 미션  하나였으니, 몸이 커졌다가 줄어드는 패턴에 대해서는 그러려니 적응할 만도 한데 이건  많이 다르다. 첫째,  의지와 상관없이 매일 부풀고 있다는 . 둘째, 정말로 '' 부위만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는 .


32주차 집에서 찍어본 셀프만삭 사진. 지금은 3배는 더 커진 것 같네?
이렇게 내게도 배가 납작했던 시절이 있었다지요.
배의 무한한 유연성에 그저 감탄할 뿐.


살을 찌워야겠다고, 혹은 반대로 빼야겠다고 결연하게 다짐하지 않았음에도 이토록 한껏 피부조직 팽팽하게 어날  있다는 사실이 매일 놀랍다.  살성이 이렇게 고무줄 같았던 거였나, 만져지는  하나 없이  떨어지는 A라인 스커트의 느낌을 좋아했는데, 최근엔 입을  있는 옷이 많이 없어서 그나마 집에 머물기만 하면 되는 코로나 시국의 #STAY HOME 라이프가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배가 작아서' 임산부 같지 않다는 소리를 계속 들어왔다는 나였으나, 속도가 달랐을 뿐이었던 거다. '임산부의 ' 커져야 하는 운명을 갖고 있는 . 때에 따라 적절히 부풀기 시작해, 볼록과 불룩의 단계를 거쳐 어마어마한 팽창과  압력을 견뎌내며 크기를 키워가고야 만다.


23주차 때만 해도 그닥 배가 커지지 않았던 탓에, 괜히 뾰루퉁


누구도 강제하지 않았지만, 때에 맞춰 적절히 면적을 늘릴 줄 아는 신체의 능력이 새삼 경이롭다. 늘 '유연한 사람인 척' 하고 싶었으나 언제나 '뻣뻣하기 그지없는 사람' 쪽에 가까웠기에. 회사에 다니던 시절, 조직이 무언가 변화를 시도하고자 하면 최대한 '하던 대로 하기를' 바라며 내 원래 패턴을 유지하는 것을 선호했다. 내가 유지해나가는 생활리듬에 조금이라도 균열이 생기는 걸 싫어했고, 내 프레임 안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선만을 그어두고 그 안에 나의 모든 하루를 끼워 넣는 것을 즐겼다. 그러하니 이런저런 방해 변수들이 싫을 수밖에. 찾아오는 변수들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융통성 있게 살아간다는 것,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유연성'을 갖추지 않아도 될 만큼 뻣뻣하고 딱딱한 내 안의 틀을 만드는 데 집중했던 삶.


사람 배가 
이렇게나 커질 수가 있는 거구나


그렇게 살아온 사람의 배가 틀을 깨고 마구 뻗쳐 나오고 있다. 정해둔 경계를 훨씬 뛰어넘어 이고 지고 다니기 힘들어질 만큼 무게감도 상당하다. 이미 3킬로그램을 넘겼을 테니. 아기의 성장도 나 몰라라, 그저 정해진 틀만을 고스란히 유지하려 했다면 그 뻣뻣함으로는 더 큰 탈이 났을 거다. 제 때의 속도를 알며 최대한 유연하게 조금씩 살의 조직을 늘리고 유지하고, 그 자리를 단단히 채워가고를 반복해 이렇게나 큰 모양새를 지어냈으니 그 끈기에 반할 만하다. 그렇게 살아낸다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단단하게 고정돼 있던 무언가의 패턴을 깨고 '유연함'의 성질로 조직을 부들부들하게 늘리고 줄인다는 것. 얼마나 고되고 지치는 일일지 상상 가능하기 때문에.

 

35주차, 보스턴심포니홀. 미국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지기 직전,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보스턴심포니오케스트라의 공연보러 총총.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는 막달 임산부의 배 크기. 나도 내 몸이 신기한데, 옆에서 고스란히 지켜보는 남편도 '진심' 얼마나 신기할까. 35주차 때 아기의 몸무게 추정치가 이미 2.5킬로그램이었으니, 실제 태어날 아기의 몸무게는 아마도 약 3킬로그램을 훌쩍 넘기지 않을까 상상 중. 놀랍게 커진 배 때문인지, 자꾸만 팔다리가 쑤셔서 신음소리가 터져나간다. 변수에 대한 대응능력에 '유연함'이라는 가치는커녕, 나죽겠다고 곡성만 내고 있으니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나라는 임산부는 너무나 '뻣뻣하다'. 몸은 알아서 제때제때 유연하게 움직여주는데 정작 주인은 여전히 이 모든 틀밖의 변수들이 어색하고 낯설 뿐. 그나저나 지금까지 보여준 몸의 유연성, 출산 후에도 똑똑하게 그 힘을 발휘해주면 좋겠다. 이렇게나 커진 내 배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쏙 들어갈 수 있게.   


출산한 다음에도 ‘유연하게’ 원래의 내 배로 돌아와주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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