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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A하는 아나운서 May 08. 2020

엄마는 간식이 필요해

미국 출산, 그 후 (3)

"나 원래 이런 거 안 좋아하는데?"


임신과 출산이라는 새로운 경험치를 쌓아가면서 가장 자주 사용했던 화법들  하나. 한국에서도 자주 찾지 않던 한식당을 미국 보스턴에 와서까지 꾸준히 찾는  모습에 놀라 스스로 잠시 투정 부리듯 중얼거렸다. “내가 원래는  이랬는데...?” 짠맛을 워낙에 싫어해서 미국에 와서도 소금기 찐하게 깃든 피자, 햄버거 보기를 돌같이 해왔는데 입덧 심하던 시절에 하필 유독 당기던 음식이 피자, 햄버거 같은  미국스러운 먹을거리들뿐. 이런  모습에 또다시   "알지?  원래 이렇게 염분 많은 음식 1년에   먹을까 말까야" 신기해하며 덧붙이기.


나 원래 안 이랬는데
내가 원래 
이런   좋아하는데


어쩌다 보니 하루에도  말을 자그마치 꼬박꼬박  번씩은 썼던  같다. "원래 이런    먹는데,,,", “ 원래 이런 음식  좋아하는데, 알지?” 빈도가 너무 잦아지다 보니 도리어 되묻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도대체 그럼 '네가 원래 좋아했던 ' 뭔데?


나 원래 이 유명과자, 칼로리 높아서 절대 안먹었었는데?! 라고 외치고 야금야금 해치우기. 원래 엄청 좋아했던 것처럼.


즐겨 먹지 않던 것들에 자꾸만 손이 가기 시작했다.  40 동안, 입맛이 꽤나 많이 변했던 덕분에 정말이지  먹던 음식을  많이도 먹었다. 개인적으로 라면을 좋아하지 않다 보니 수년간 라면을 직접 사본 적도,  송송 계란  해서 끓여본 적도 없는데 어느  주는 내내 라면에 끌려서 새벽부터 꼬들꼬들한 면에 식욕 조용히 채우느라 바빴던 적이 있었다. 임신 27주쯤이었다. 한국에서 방송을 하던 시절, 체중관리를 한답시고 '치킨' 시켜먹기를  많이도 자제했는데, 한국 같은 신속 배달도  되는 이곳에서 남편이 왕복 1시간 넘겨 치킨집을 오가며 한국판 양념치킨을 자주 공수해오기도 했다. " 원래 이런  진짜  먹었는데..."라는 말을 꼬박꼬박 덧대어 가면서 얄밉게도  잘도 먹었다.


수십.년 전통의 조금 ‘진부한’ 한국 과자도 어쩜 이렇게 꿀맛인건가? 수유의자에 앉아서 야금야금 당충전.


나 당충전이 필요해


내 미니미, 내 쪼꼬미, 아기와 함께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 집에 돌아와 휴식을 취하던 산후조리 초기. 어른들 말씀대로 뜨끈한 미역국에 영양분 고루 담긴 반찬들 섞어 밥 한 끼 듬뿍 먹어야 된다는 것,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은 또 다른 식욕을 향해 열을 내고 있었으니, 바로 '군것질' 거리들을 향한 욕망. 자꾸만 달콤한 무언가가 당기기 시작했다. 아주 끈질기도록 먹고 싶었다. 입안 가득 말캉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격렬하게 그리워하고 있던 것.


가뜩이나 설탕 가득한  고칼로리 간식들이 어마 무시하게 많은 미국  아닌가. 마트 구경하다 보면 칼로리 수치에 기절할 지경인 초코 듬뿍  과자들이 선반마다 종류별로 가득가득 들어차 들어있는 이곳. 한창 다이어트 중이었다면 절대 쳐다보지도 않았을 그런 간식들이 하필 산욕기에 호기심으로 번져 오른다. 임신 출산 직후, 이때 아니면 체중 걱정  하고 언제   편히 먹어보겠어? 마트 간다는 남편에게 결국 s.o.s  보내고야 만다.


 뭔가 달콤한 간식이 먹고 싶어


34번 째 내 생일. 딴 것보다 새하얀 달콤이 홀케이크를 당당히 먹을 수 있는 명분이 생겨서 행복했던 날.


출산 이후, 온갖  내쏟은 산모는 그럴 자격이 있다고.  10개월간 몸과 마음고생한 나를 위해  정도 '당충전'   감고 괜찮은 거라고 괜스레 찔려서 '토닥토닥' 마음을 달래 본다. 괜찮아 괜찮아 (?) 그야말로 길티 플레저 (Guilty Pleasure) 따로 없네. 이런 고칼로리 초코초코한 간식들 자꾸 먹으면 몸에 당연히 좋을  없다는  알면서도 먹다 보니  맛있게 느껴지는  어찌한담. 약간의 죄책감 위에 '기분 좋게 사르르 녹아드는' 마법 같은 당분들. 이래도 되나 싶은 죄책감은 쓱싹쓱싹 지워지고 또다시 손이 가네 손이 . 한입씩  넣는  벌써 무섭게도 습관 되어버렸다. 잊을만하다가도 살짝 두통이 찾아오는  같다? 싶을 때면 또다시 봉지를 뜯고 마는 얄미운  .


민트크림이 듬뿍 든 바삭바삭한 초콜릿 과자를 쏙쏙 넣으면 아기보기가 훨씬 수월해지는 것도 같고... 여기에 우유 한 잔 곁들이면 초보 육아맘의 바스락바스락 갈라지던 마음결이 촉촉해지는 것 같은 느낌. 새하얀 코코넛 가루가 살포시 얹힌 아몬드 초콜릿을 오도독 오도독 입안에 넣고 굴리다 보면 어깨와 목이 욱신욱신 결리던 불편한 진통도 잠시는 무통 천국 맛보듯이 잊게 되는 듯. 어떡하지 당분간은 포기할 수가 없겠다. 이 중독성 강한 미운 군것질 거리들.


우리 아들도 이렇게 달콤이 간식만 좋아하면 어떡하지?


오늘은 마카롱이다. 그저 대형마트 냉동 코너에서 집어 든 마카롱 한 상자였을 뿐인데 이마저도 알알이 녹아드는 맛. 아기의 허기짐을 보듬어주고자 새벽마다 깨서 일어나야만 하는 격한 스케줄 속에서 색깔별로 예쁘게 자리 잡고 있는 마카롱의 자태를 마주하는 기분이란? "너무 영롱하잖아!" 먹기 아깝다는 생각을 10초 정도 예의 차려 해준 다음, 이내 입안으로 쏙 넣어보기.


오물거릴 때마다 쫄깃거리는 식감 속에서 '' 에너지가 정체할 것도 없이 후루룩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듯한 착각. "인생 별거 없어. 지금 달콤하면 그만이야!" 졸음을 견디다 못해 스르르 잠에 빠져든 아기를 곁에 두고  한입, 남편 한입, 색깔별로 나눠먹는 재미. 아낌없이 정신까지 달콤해질  있는  간식타임에 중독되고야 만다. 이런 맛을 입안에 들일 때면 요즘의 흔한 걱정들도 잠깐은 잊는 힘이 생긴다. 코로나 그게 뭔데? 육아 스트레스 그게 뭔데?


인생 별거 없어
지금 달콤하면 그만이야


마카롱 전문점에서 산 것도 아닌데, 왜이렇게 맛있던지! 살찌는 소리.


초코초코한 맛에 카페인이 들어있대도, 고칼로리임을 확인하고 흠칫 놀랄 지라도, 때로는 이런 맛 필요하다. 특히 시시각각 '꼬물꼬물' 귀여운 몸짓을 바지런히 놀리는 너와 함께라면 더욱이 절실하지! 신생아의 몸짓에도 때로는 30년 훌쩍 넘긴 내 기운보다 더 센 듯한 에너지가 실릴 때가 있어서 '힘'이 때때로 필요하거든. 이상하게 밤마다 잠 안채고 보챌 때면 내 졸음을 강력히 쫓아내 보고자 뭔가 '센' 보충제가 절실하거든.


그러려면 엄마는 간식이 필요해. 산후 다이어트가  때문에 조금  늦춰질 수밖에 없다고 해도, 흐릿한 죄책감 속에  뭔가를 냠냠 녹여내고 있을 것만 같은 오늘 오후 어느 지점.  순간만큼은  달콤함에  없이 빠져서 마치  하루도 쓴맛이나 매운맛 없이 무사히 꿀맛처럼 흘러가  거라고 다소 뻔한 최면을 걸면서 말이지.


, 오늘은  어떤 달콤한 맛이  달래고 보듬어줄까. 남편 초콜릿 과자  사다 줄래?  보던 '신상' 맛이면  좋겠고.



일본 친구가 보내준 초코 간식. 허기지던 날 어떤오후, 넌 감동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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