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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A하는 아나운서 Jun 08. 2020

기억해? 처음 손 잡은 날

좌충우돌, 미국맘 성장기

아기가 새벽에 잠을 잘 자지 않고 보챌 땐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첫째 기저귀가 젖었는지 확인한다. 둘째 배고픈 시간이 지난 건 아닐지 시곗바늘을 골똘히 쳐다보며 시간 계산을 바삐 해본다. 이도 저도 안될 때는 품에 꼬옥 안고 등을 쓰담 쓰담해주며 살짝살짝 몸을 춤추듯이 흔들어준다. 친정 찬스 시댁 찬스 없이 타국에서 아기를 돌보고 있는 우리에 부부, 운이 좋았던 걸까? 다행히 우리 아들은 순둥순둥 순한 편. 흔히들 50일쯤에 찾아온다는 등 센서도 없고 꺼이꺼이 울면서 이 세상 꺼질 것처럼 우는 일은 없더라. (아직까지는!)


아기가 버둥거리며 보챌 땐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어디가 불편할 걸까 몸 구석마다 조물조물해주며 엄마의 촉각을 곤두세우기.


하지만 타이밍이 잘 맞지 않는 몇몇 날들은 새벽에 돌연 깨어나서 엄마 아빠 잠 못 들게 징징징. 하늘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우는 건 아니었지만, 평소 좋아라 하던 모빌을 내내 틀어줘도 자꾸 발을 동동 구르며 불안해하는 것만 같은 모습이 그저 안타깝다. 특유의 애처로움 듬뿍 담은 눈빛으로 엄마, 아빠의 눈동자를 번갈아서 쳐다보며 끔뻑거리는데 이걸 어쩐담.


아기가 편안하게 낮은 소리로 코 골면서 잠드는 걸 확인해야 엄마인 나도 편안히 잠을 청할 수 있을 텐데 '이른 새벽부터 뭐가 불편한지, 어떤 게 속상한지,,,' 아기가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그냥 놔두고 침대 곁을 떠날 수가 없다. 아침까지 내내 깨어있기에는 너무도 이른 새벽, 오전 3시 15분. 그래도 뭐 어쩌겠나. 그냥 무작정 아기 곁에 있기로 작정하고 크립 옆에 바짝 의자를 붙여 앉았다.


아기 침대에 최대한 바짝 붙어 앉아서 한쪽 손으로는 대학원 과제를, 남는 한쪽 손으로 아기를 토닥토닥해주기. 멀티플레잉해서 미안해.


어디가 불편한 건가 살피려고 몸을 마사지하듯이 고루고루 만져주다가, 실수로 아기 손싸개 한쪽이 벗겨졌다. 손톱의 날카로운 면이 아기의 연한 살을 할퀼까 봐 내내 꽁꽁 싸매두기만 했던 아기의 작은 손. 그 순간 내 오른손과 아기의 왼손이 슬쩍 맞닿았다. 내손등 반절보다도 더 작은 크기의 아기 손, 관절 하나하나마다 있는 힘껏 힘을 주더니 내 살갗을 꼬집듯이 끌어당긴다. 손아귀에 내 손가락 하나가 잡히니 '이때다' 싶었는지 입을 배시시 씰룩거리며 돌연 내 손을 간질간질 매만지기 시작. 이거 실화야? 생후 두 달 차, 아들이 내 손을 잡았다.


“엄마 손 잡아주세요.”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아기 손을 제대로 들여다볼 새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늘 눈에 보이지 않게 천에 가려두기만 했던 거다. 목욕을 시키고 나서도 외부 공기에 시리지 않게 살갗을 얼른 감춰두기 바빴고 본인도 모르게 본인의 몸에 상처를 내고 아파하게 될까 봐 양말로, 또 손싸개로 연한 부위를 철저하게 방어하기만 했다. 아기 분유 라테 타임이 끝나면 꼬옥 안아주면서 체온을 따뜻하게 전달하곤 했지만 살과 살이 맞닿는 시간, 특히 두 손을 붙잡았던 적은 사실상 많지 않았던 거다. 아기는 내 손이 필요했다. 내 손에서 전달되는 보들보들한 촉감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아들이 먼저 손을 건넨 건 처음이다. 태어난 직후, 아기의 손과 발이 마냥 신기해서 내가 먼저 만지작만지작 거린 적만 있었지. 아직 말 한마디 떼지 못한, 신생아 시기를 갓 넘긴 아기가 나를 붙잡다니. 이렇게 신기하고 감동적일 수가. 엄마의 손을 붙든 느낌이 좋았던 걸지, 아기 역시 붙든 손을 쉽게 놓지 않는다. 얼마나 꼬옥 붙잡았던 건지, 살살 돌려 몰래 손을 놓고 달아나려고 해도 불가능할 수준의 접착력이다. 이렇게나 엄마 손이 좋다는 건데 굳이 나도 '잠 좀 자겠다'고 억지로 그 접촉의 순간을 놓아둬버리고 싶지가 않다. 아기의 오른손과 내 왼손이 맞닿은 순간을 더 있는 힘껏 붙들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내 손에 더 뜨겁게 힘을 주었다.  


손을 잡는다는 것. 가장 초보단계의 스킨십 같지만 가장 은은하게 오래가는 힘을 지닌다. 초등학교 땐 같은 반 친구와 꼭 손을 잡고 화장실에 가야 했고, 유치원에서 소풍이라도 가는 날엔 그날 선생님이 정해 준 짝꿍과 함께 하루 종일 손을 붙들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만 비로소 안심이 되었던 것. 자의로든 타의로든 내 곁에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장 실감 나게 느낄 수 있는 방법.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이 힘든 날엔 엄마의 손을 잡고 보드라운 결을 느껴야만 안정을 찾곤 했다. 가장 초보적이면서도 확실한 전략이라서 끊을 수 없는 마력이 있었다. 매만지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몸에는 따스함이 마음에는 차분함이 번진다. 내 아들도 그랬던 거겠지.


예쁜 손싸개로 곱디 고운 손을 가려두기만 했던 날들. 촉감으로 소통할 수 없어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남편과 처음 손을 잡았던 날도 그렇지 않았을까. 장거리 연애의 특성상 눈과 귀가 멀어진 채 간간이 소통하다가 서너 달의 긴 장벽을 넘어서서 드디어 만났을 때 서로 처음으로 온기를 나눴던 순간. 각자 각자 동떨어진 존재들이 서로가 서로 곁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잔잔한 희열을 나눌 수 있다. 카페에 가서도 손을 편안히 잡고 싶으면 마주 앉기보다는 나란히 앉는다. 서로의 얼굴 측면만 바라볼 수 있는 영화관이라 할 지라도 손이 맞닿기 좋은 자세인 셈이니 불안함이 일렁거릴 새가 없다. 누군가의 한쪽 손과 다른 이의 한쪽 손이 맞닿는다는 것은 그런 것. 서로의 결을 만지작 거리면서 마음의 결을 확인하고 그 결이 닮아있음을 눈치챘을 때 마음이 환해지는 것. 그러면서 그날 오후의 공기도 밝은 빛으로 산뜻해지는 것.


더 자주 아들 손을 매만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작고 여리디 여린 손이라서 내가 격하게 쓰다듬다가 혹여 찧이거나 작은 상처라도 날까 봐 매번 겁나지만, 더 조심조심 그 고운 살결을 보듬는 시간을 들여야겠다고 다짐해둔다. 아니다, 내가 강하게 마음을 다잡고 다짐해둘 필요는 없겠다. 답답한 손싸개를 잠시 벗겨두고 살짝 내 손 끝을 마주대기만 해도 아들이 먼저 알아채고 내 손을 있는 힘껏 부여잡으려 기운을 발산할 테니.


남편과 장거리 연애 초기 처음으로 손잡았던 날. 엄마의 품에서 힘든 날의 지친 감정을 위로받고 싶어 바들바들 떨며 손잡았던 날. 그런 날들만큼이나 이 순간이 촉촉하게 에너지를 얹어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굉장히 편안한데 거기에 덧대어 '설렘'을 느낄 수 있는 미묘한 스킨십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아들과 손을 맞대어 잡는다는 것은 내내 그런 힘을 얹어줄 거다. 내 남편과 꽉 잡은 손으로부터 앞으로의 흘러들 우리들의 스토리에 설렜고, 엄마의 위로 속에 또 다른 내일이 찾아들 것이라고 확신하며 설렜듯이, 다시 한번 두근거릴 것이다. 아들과 만들어갈 하루하루의 순간들을 머리 위로 그리며 아들 손의 보들보들한 살결에 바짝 더 다가가려 애쓸 것이다.

작은 손에 쏙 맞는 맞춤 온기를 전해줄게.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내내 중얼거리는 노랫말이 있듯이, 잡고 있어도 또다시 한번 잡고 싶은 아들의 손. 네가 내 손을 처음 잡았던 6월의 어느 새벽을 영영 잊지 못할 거야. 눅눅하고 시원하게 스미는 초여름의 공기 속에서 잔잔하게 찾아든 보드라움. 그 살결로 2020년의 여름날을 기억할 테지.


너도 마음으로 기억할 수 있을까. 엄마와 첫 손을 잡았던 이때 이 순간의 감동을. 잠깐이라도 반짝 설렜던 그 첫 순간의 희열을. 뚜벅뚜벅 걸어가다가 언젠가 넘어져버릴 것 같은 날이 오면 이 순간을 기억할 수 있게 해 줄게. 너와 내가 처음으로 손을 잡았던 날. 네가 징징거림을 비로소 멈추고 차분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던 것처럼 그렇게 널 매만지고 토닥토닥해줄게.


내 손을 꽉 잡고 놓지 않으려
바짝 힘을 준
너의 가녀린 의지를 기억하며


내가 네 편이 되어줄게
“엄마 가지마. 내손 놓으면 울어버릴거야.”
생후60일. 너와 손을 맞잡을 또다른 내일의 날들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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