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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Oct 17. 2021

육아맘은 ‘챌린지’가 필요해요

부캐는 미국 엄마 (10화)

늘 치열하게 달리는 삶에 익숙했다. 20대 때도 30대 초엽에도 ‘공백’은 100일을 넘기지 않는 수준이었다. 대학교 마지막 학기 재학 중 한 언론사 기자로 합격했고, 퇴사와 재취업 사이 석 달을 채 넘기지 않는 틈새시간이 각각 두 번씩 존재했다. 당연히 휴학은 내 사전에 없었고, 정규직으로 가장 오래 근무했던 직장 춘천M에서도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썼다. 나쁘게 말하면 ‘안달복달’ 하기 바빴고 좋게 보자면 안주하지 않으려 치열했던 거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7시 회사 앞 시립도서관 행, 한바탕 영어 공부하고 12시부터 9시까지 방송 근무, 뉴스데스크가 끝나자마자 풀메이크업 상태로 도서관 행. 도서관 문 열기 전에 가서 도서관 문 닫는다고 하실 때 꼴등으로 나오기 모드. 스타벅스 너무 좋아하지만 유독 부지런하고 치열했던 날에는 카페 문도 열기 전이라 드라이브 쓰루도 못하고 편의점 커피 Buy2 Get1 free에 기대야 했던 아쉬움


독하게 사는 게 익숙하고 편하다. 부모님을 포함한 혹자들은 “뭘 그렇게까지 하고 사니, 이제 좀 내려놓고 지내보렴.” 하시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건 ‘날 바삐 들볶는 삶의 패턴’이 더 좋기 때문이다. 이전 글에도 몇 번 언급한 표현인데, 좋은 덴 이유가 없고 싫은 덴 이유가 많다. 약 10년 간의 안정된 아나운서 라이프를 이어오면서 몇 번쯤은 나도 유유자적 게으름 피우다가 출근도 해보고 주말엔 원 없이 쉬며 놀고 뒹굴어 보기를 시도해봤지만 영 개운치 않았고 ‘힐링’이 되기는커녕 더 독이 쌓이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네. 난 날 재우치는 삶이 더 맘에 들어.’라고 다시 다잡았다.



지난해엔 미국 석사 유학 + 임신+출산+육아, 무려 1인 4가지 경기를 치르느라 쿼드러플 플레이를 했더랬다. 거기에다 팬데믹이 한 해를 검은 그림자처럼 덮치고 있었으니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은 과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주어진 게임을 치러내는 과정들은 ‘싫지 않았다’. 방송과 공부, 공부와 방송, 23살 때부터 33살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빡빡하게 살았으니 (1) 유학하며 입덧하고 (그것도 막달까지…), (2) 출산 6일 차에 줌으로 수업 듣고 (목요일 출산하고 그다음 주 화요일 수업에 출석했다), (3) 과제하며 육아하는 게 뭐 대수랴. (물론 출산 이후에는 남편이 ‘육아휴직’을 썼다.)


우리 엄마는 쿼드러플 플레이어. 유학하면서 4가지를 했대요.


다시 ‘적’을 둘 곳이 생겼으면 좋겠어
슬슬 학교 가고 싶어


꿈꾸던 석사 유학을 마친 건 참 감사할 일이나 그다음 과정 진입까지 공백이 ‘떡하니’ 생겨버렸다. 평생 다시 안 올, ‘아이와의 소중한 시간에 집중하면 되지. 뭐.’ 심플하게 생각하고 싶었지만 주 생활 반경이 ‘집’이다 보니 육아에도, 틈새시간 공부에도 능률이 안 올랐다. 기운이 땅 속까지 떨어져 버리는 느낌이었다. 난 고3 때도, 취준생 때도, 아나운서 시절에도 나가서 공부하는 유형의 사람. 집 밖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타입이라 답답했다. 이전 글에도 이런 제목이 있다. “아기 어린이집 등원시키고 스카 갑니다”


커피 한 잔을 마셔도 내 루틴 지켜서 마시기


‘루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고정적으로 출근하는 내 자리가 없는 사람 균일하게 돌아가던 패턴이 절실했던 거다. 12시가 되면 정오의 희망곡 스튜디오에서 마이크를 잡고, 8시가 되면 뉴스데스크 앵커가 되어 앉았듯이 방송 편성표처럼 치밀한 내 시간표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초등학교 때처럼 엉성한 원형 계획표를 그냥저냥 색칠하고 말 게 아니었으므로 ‘챌린지’ 미션도 필요했다. 내 습관을 바로 잡아줄 착한 도전과제들 말이다.


출산 40일 차가 됐을 때부터 100일 남짓 꼬박 실천했던 간헐적 단식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조리원 도움도 없이, 양가 부모님 도움 1도 없이 부부 둘이 모든 걸 감당했던 타국 육아였던지라 (그것도 코로나 초절정기 미국에서 집안에 갇힌 채) 모든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고칼로리 먹부림에 기대 풀었다 (이미 힘듦이 극에 달해 모유수유도 진즉에 못하고 있던 상황). 친구들은 조리원에서 산전 산후 마사지받고 부종 다 빼고 나온다던데… 조리원에서 나오면 집에 ‘이모님’이 오신다는데 애초에 이런저런 찬스가 없었던 나는 출산 한 달이 넘어도 퉁퉁 불어있는 모습을 거울로 볼 때마다 화가 났다.


다들 조리원 머물다 집에 오면 막막하면 울고, 이모님 안 오시는 날 눈물이 '핑' 돈다는데… 난 아기 낳은 날 간호사가 집에 가겠냐고 물어봤다. 이틀 버티고 퇴원하긴 했지만 바닥이 냉골인 집에 아기바구니를 끌어안고 도착했을 때 심정이란!


결단했다. 착한 습관을 만들자고. 내가 나를 컨트롤하자고. 출산 후, 첫 챌린지였다. 배도 안고픈데 그냥 육아가 안 익숙하고 힘드니까 밤이고 새벽 무턱대고 먹어대는 건 분명 문제가 있었다. ‘아니 출산한 지 40일 된 산모가 무슨 식이요법을 하냐’고 눈총 받을 만도 했으나 남편 말고 아무도 없었던 내가 무력감을 되찾는 길은 그것뿐이었다. 간헐적 단식 루틴에 맞춰 16시간 공복을 유지하고 아침 10시에 행복한 아침 먹기. 고작 ‘저녁 6시 이후 안 먹는다’는 약속만 지킨 건데도 아침을 맞을 때마다 상쾌하고 뿌듯했다. 첫 챌린지 미션을 성공한 날 내 다이어리에도 또렷이 적혀있다. “아, 이거였구나. 오랜만이다. 다시 찾은 이 느낌.”


남편 말고
아무도 없었던 내가

무력감을 되찾는 길은 그것뿐이었다



한 가지 일을 매일매일의 루틴 중 하나로 잡아두고 66일 반복하면 습관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최근엔 습관과 루틴 관련 책도 많이 나왔지만 처음 접했던 건 10여 년 전쯤 TV에서였던 것 같다. 한 입시전문가가 얘기했던 건데 중간에 하루라도 흐트러질 겨를을 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해서 더 독하게 매달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출산 40일 때부터 159일 차까지 꼬박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 부계정에 올려뒀으니 120일간 챌린지가 이어졌던 셈. 66일은 금방 채웠고 아쉬우니 100일까지 가볼까 하다가 그마저도 넘겨버린 것이었다.


66일 습관 만들기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랑 한 약속을 매일 실천한다는 건 그렇게나 쏠쏠한 맛이 있었다. 핵심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억지로 하면 장담컨대 절대 일주일도 못 간다. 작심삼일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하루는 다들 한다니까 해보고 이틀째는 어제 했으니 마지못해 해 보고 셋째 날엔 핑계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래도 영혼 없이 버텨보다가 결국 무너지는 원리다.


루틴 만들기 챌린지는 나를 가지런히 다잡아가는 과정



요즘 많은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서 하는 ‘영어 낭독 챌린지’도 그래서 반갑다. 영어 인플루언서들이 나서서 동기부여 자극점을 찾아주고 도와주고 믿어주니 전업 육아맘도, 취준생도, 타국 살이 이민 맘도 자기만의 고정 루틴 만들기에 제격인 것이다. 그 아무리 평생 과제인 영어라 할지라도. 원서 읽기 챌린지도 꽤나 오랜 시간 인기다. 챌린지 없이도 읽는 건 가능하지만 루틴 만들기는 장담할 수 없으니 흐지부지되기 쉽다. 매일 고정 루틴은 그래서 중요한 거다. 불편하고 화가 나도 회사 가듯이, 오늘 하루 컨디션 꽝이고 상태 메롱이어도 그냥 일단 하고 보는 거다. 신기하게 그 루틴 따라가면 때때로 신박한 영감을 선물 받기도 한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매일 고정 루틴은
그래서 중요한 거다
일단 하고 보는 거다


얼마 전 아기 생후 555일 차, 간헐적 단식 2차 챌린지를 시작했다. 아기 40일 차 때부터 159일 차까지 하루도 안 빼놓고 진행한 미션이었는데 어떻게 흐지부지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분명한 건 요즘 습관 만들기에 ‘추가’ 버튼이 필요했다는 것. 영어뉴스 듣기든, 영어기사 읽기든, 공부에 관련한 습관들은 잘도 부풀려나가면서 운동과 체력 다지기에 관한 습관엔 유독 약하다. 저탄고지도 66일까지도 자신 없다. (미국에서 빵 안 먹고 나 홀로 육아 버틸 수는 없다고요.) 하는 수 없이 이미 성공했고, 나름대로 자신이 있는 간헐적 단식을 다시 찔러보기로 한다.


챌린지는 기록이 필수. 너 혼자 하지 뭐 이런 계정까지 만들어서 하냐고 물으신다면, “아, 네. 저도 누구보라고 올리는 거 아니거든요.”


지난 금요일은 새해가 되기까지 78일 남은 날이었다. 66일 습관 잡고 아쉬우니 덤으로 열흘 정도 더해 주면 챌린지 완성. 물론 습관이 완전히 굳어졌다면 이제 또 다른 습관 추가로 이어질 수 있게 방향만 살짝 틀어주면 되는 거다. 여기에 동네 두 바퀴 뛰기든, 간헐적 단식 공복 지키고 필라테스 40분이든. 혹은 16시간 공복 후 기쁨과 환희의 영어뉴스 낭독 챌린지든.



난 할머니가 되어도
습관 만들기 하고 있을 거야
끝나지 않는 챌린지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난 할머니가 되어도 습관 만들기 챌린지 하고 있을 거”라고, 아마 고정적으로 출근할 자리가 있지 않은 나이가 되면 더더 그렇지 않을까. 하루 30분 독일어 회화 낭독 챌린지, 하루 1시간 영어시집 읽고 필사하기 챌린지. 난 그런 할머니로 늙어가길 꿈꾼다.


육아맘에게도 챌린지가 필요하다. 워킹맘이 아니라면, 혹은 나처럼 아직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기 전 (퇴사와 이직 사이, 석사와 박사 사이) 들떠버린 시간들에 나태해지는 것 같다면 강력한 루틴 챙기기를 강추한다. 아주 사소한 챌린지도 해냈다는 뿌듯함을 부를 테니까. 그것이 영어 낭독이든, 식이요법이든, 바디 프로필 촬영을 위한 운동이 되었든, 정복하고 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으니까. 밑져야 본전, 딱 66일만 속는 셈 치고 견뎌보시라니까요.


66일 습관 만들기의 위력. 그 챌린지가 무엇이 되었든 효과 팍팍.
보스턴 라이프 1000일 찍는 날엔 어떤 챌린지를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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