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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Sep 23. 2021

시어머니 ‘쿨함’ 주의보

부캐는 미국 엄마 (12화)

쿨하다는 말은 긍정의 뜻을 품은 시원스러운 감탄사다. “오, 그거 멋진데?” 미국에서도 하루에 수차례씩 마주하는 말. 누군가의 성격이 쿨해서 좋다고들 하고 그 사람의 스타일이 그럴듯해서 쿨하다고도 느낌표를 찍는다. 아무렴 ‘쿨하지 못해 미안해’라는 노래까지 생겨났을까. 즉, 누구나 ‘쿨함’을 지향하고 ‘쿨한 사람이고 되고 싶다’는 마음을 내심 품는다. 쿨한 것은 누구나의 마음에 하나쯤 있는 버킷리스트 성격과도 같다.


하지만 때때로 누군가의 쿨함은 불편하다. 그 ‘누군가’는 내 주변 누구라도 될 수 있다. 나의 가족이 될 수도 있고, 나의 직장 상사, 혹은 선후배나 친구가 될 수도 있다. 당사자는 본인을 ‘쿨하다’고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그 쿨함이 상대방의 가치관을 존중하지 않고 결을 달리한다면 그 ‘쿨’은 유쾌가 아니라 바로 불쾌의 영역에 지체 없이 들러붙어버린다. 특히나 나의 소중한 영역에 소위 ‘쿨한 자’의 영향력이 예고 없이 들이닥치면 일상은 마비가 된다. 돌이킬 수 없이 균열을 일으켜버리고 만다. 결국엔 그 ‘쿨함’이 ‘미운 사람’을 만든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쿨한 사람은 본인이 가지는 균열 가능성에 대해서까지 쿨하다는 것이다. 쿨함을 감당해야 하는 주변이 피곤해지는 케이스다.



애 음식,
너무 가리지 마라.
이런 거 다 먹고 커도 잘 자란다.



누군가의 쿨함이 나의 육아 방식과 패턴에 영향을 주는 경우, 그 균열은 가장 깊어질 수 있다. 흔히 뭘 하든 ‘문제없다, 괜찮다’고 반응하는 사람들이 그 쿨한 그룹에 속한다. 아직 간이 된 음식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당시) 9개월 갓 지난 아기에게 성인이 먹어도 짠 잣죽을 굳이 왜 주시려 했던 걸까. “에이, 먹어도 괜찮아.” 그렇지, 아기가 한번 짠 음식을 먹었다고 해서 앞으로의 성장발달에 엄청난 장애를 겪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왜 그래야만 할까. “이런 거 먹어도 큰일 안 난다. 괜찮다”는 쿨한 태도는 오히려 엄마인 내가 너무나 많은 걸 규제하고 있다는 듯 질책하는 가시가 된다. 다행히 아기는 낯선 음식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입을 벌리지 않았다. 때론 입꾹닫 (입 꾹 닫고 안 먹겠다고 버티는) 아기의 성향에 감사할 때도 있구나.


누군가의 쿨함에 누군가는 한숨, 그리고 먼 산.


나무 바닥에 넘어져도 괜찮다.
시멘트 바닥만 아니면
크게 다칠 일 없다.


한국에서 다니던 소아과 의사 선생님은 재차 강조하셨다. 되도록 보호매트가 깔린 곳에서 놀게 하고 특히 카펫이나 범퍼가 없는 곳에서는 머리 다칠 수 있으니 늘 함께 지켜보라고. 어린이집에도 빈틈없이 보호매트와 모서리 범퍼들이 가득 자리 잡고 있다. 자칫 한눈팔면 바로 옆에 있는 아기도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알고 있다. 어른들이 “아이들은 다치면서 그렇게 크는 거라고” 하시는 말씀들 익히 들어왔으니까. 그렇다. 아이들을 자주 다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꽈당, 쿵 부딪치며 논다. 하지만 다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게 사전 대비를 잘하는 게 우선 아닐까. “시멘트 바닥만 아니면 꽈당해도 괜찮다”가 아니라, “혹시 모르니 보호매트 일단 깔고 자유롭게 놀게 하렴”이 조금 더 적절한 권고 아닐지. 엄마들은 다 공감할 거라고 생각한다. 



얘, 지금 어디니
집 앞으로 가려고 하는데


모든 만남이 약속을 전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즉흥적으로 ‘번개’처럼 만나자고 제안할 수도 있고, 서프라이즈 선물 같은 만남도 때때로 기쁨이니까. 하지만 ‘쿨한 번개’가 반갑지 않은 경우도 있지 않던가. 내 생일날, 친정엄마와 아기와 처음으로 셋이 쇼핑을 즐기고 외식 파티를 겸하려고 몇 주 전부터 들떠있었는데 불쑥 파고든 ‘쿨함’에 모든 계획이 틀어졌던 날, 그 속상함과 억울함은 몇 달이 지나도 풀리지가 않았다.


살다 보면 누군가는 쿨하게 즉흥 만남을 권하지만 그 화살을 받은 사람까지 ‘쿨한 제안’에 행복했으리라 상상하는 것은 때론 무례할 수 있다. 타산지석. “아, 나의 쿨한 태도가 다른 이에게는 ‘선 넘기’로 다가갈 수도 있겠구나” 깨달았던 배움의 기회. “우리끼리 뭐 굳이 약속 잡고 만나니”의 쿨함이 아니라 다른 일정이 잡힌 것은 아닐지 물음표를 조심스레 품는 태도가 내겐 더 센스 있고 멋지게 다가왔을 텐데. 아쉽다. 그런 쿨함.


차가운 커피에 때때로 체할 때도 있는 법. 너무 쿨해서 미안해 주세요.


“쿨하지 못해 미안해”라는 노래, 난 때론 “쿨하지 못해서 고마울” 사람들을 꿈꾼다. 쿨해도 너무 쿨해서 주변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보다는 ‘덜 쿨한’ 사람들이 더 반갑고 고맙다. 혹은 내가 워낙 쿨하지 못한 예민한 인생을 살아와서일 수도. 그래도 난 여전히 덜 쿨한, 못 쿨한 사람들과의 소통이 반가운 걸 어쩌겠나. 자칭 쿨한 사람들의 선 넘기에 적잖이 지친 모양인가 보다 이해해주시길. 부디 제 곁에선 “너무 쿨해서 미안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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