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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Sep 26. 2021

“딸이 있었으면 좋겠어”

부캐는 미국 엄마 (13화)

부캐는 미국 엄마.   정확히 카테고리를 설정하자면 미국 엄마들 중에서도 '아들' 엄마에 속한다. 아들이든 딸이든 낳아보면 " 예뻐"라는 선배맘들의 조언은 실로 진실이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아들' 예쁘다. 하지만 외동딸로 자라난 나는 자연스레 나와 같은 외동딸을 키워보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사항을 내내 지니고 있었더랬다. 결혼을 하면 당연히 '' 낳아 키울  같았고 '딸맘'  장면들을 오래도록 상상했다. 우리 엄마가 수십 년을 딸맘으로 살아왔듯이 나도 자연히 딸맘이   같다고 근거 없이 믿었다. 하지만 상상은 상상이었을 ,  보란 듯이 아들맘이 되었다.



“나도 엄마처럼 딸맘이 될 줄 알았어.”



'아들이야, 딸이야'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때로부터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2년 후의 가을날, 미국에서 매일매일 아들맘의 라이프를 '잘' 살아내고 있다. 말해 뭐해. 너무 예쁜 내 아들! 종종 복식호흡을 넣어 아들의 이름을 호명해야 하고 벌써 내 힘으로 안기 버거울 정도로 근육 탄탄한 아기 소년으로 자라나고 있는 울애기. 때론 내 통제를 벗어나는 기운(?)에 버둥버둥거리고 있으나 성별 확인에 왜 간절했었나 물음표를 띄울 정도로 역시나 '아들도 예쁘다'. (12주 성별 확인 키워드 찍고 들어오신 분들, 그러니 모두 안심하시길! 어떤 성별이든 결국엔 다 예뻐 죽겠는 현상이 나타나버리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예쁜 아들을 곁에 두고서 난 가끔 '아주 살짝' 한눈을 판다. "아들 너 너무 예뻐. 근데 있지... 딸이 있었으면 좋겠어. 아니 그러니까 '딸도' 있었으면 좋겠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지! 내 인생 최고 베프, 엄마와 단둘이 즐기는 소소한 커피데이트. 엄마는 딸이 있어서 참 좋겠다.



딸이 있었으면 좋겠어
딸도 있었으면 좋겠어



어떤 조사를 붙이느냐에 따라 미래 아들의 서운함 더해질지도 모를 일. 하지만 아들바보로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딸'에 대한 희망사항이 고개를 빼꼼히 들기 시작한 데는 그분의 역할도 컸다. 바로 시어머니. 아들만 둘을 두신 그 분과 마주 앉아 단둘이 대화를 나눴던 어떤 날, 갑자기 묘한 울컥 거림이 밀려들었더랬다. '아, 어머님은 이렇게 밀레니얼 세대 여자 사람이랑 대화를 나누는 게 1년에 손에 꼽으실 횟수겠구나.’


평소 "난 시댁이랑 진짜 코드 안 맞아" 말을 달고 사는 나였지만 그날만큼은 정성을 다해 그분의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싶었다. 아무리 아들 둘 중 한 명이 싹싹한 딸 노릇을 자처한다 해도, 아버님이 정 많은 분이라 해도 '딸'과의 소통과는 다른 영역이다. 그날 이후 그 생각이 자주 맴맴 돌았다. "참 외로우시겠다. 참 쓸쓸하시겠다. 이런 수다 메이트가 없으시다니 (with MZ세대)."


맛있는 음식 앞에서도 솔메이트 엄마와의 수다를 잃을 순 없지.


아휴, 얘는 왜 점심을 먹고 왔니.


'네? 분명히 어머님께서 밥 먹고 2시 넘어 아기 데리고 오라고 하셨는데요?' 매번 말대답을 날카롭게 할 수는 없는 며느리지만, 시어머니와 소통이 소소하게 뒤틀리고 어긋날 때가 있다. "어머 너 육아하면서 공부도 하니?" 아,,, 네. 어머니, 저 미국에 석사 유학 와 있잖아요. (애만 키우는 게 아니라고요)" 본인이 하신 말씀을 기억 못 하시고 완전히 다른 방향의 이야기를 하시거나 내가 드린 말씀을 기억하고 계시지 못하실 때마다 난 '건망증' 이상의 다른 해석을 덧붙이게 됐다. "딸이 없으셔서 그러신가 봐".


알고 있다. 과학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못한 내 맘대로 상상형, 추측형 해석이라는 것을. 하지만 때때로 짐짓 생각해본다. '아마 딸이 있으셨더라면' 밀레니얼 여자 사람과의 소통이 이토록 꼬이진 않으셨을 거야. 딸과의 미묘하고 섬세한 감정선 교류 덕분에 며느리의 얘기 좀 더 잘 들어주셨을 거야. 여러 가지 요소가 복잡다단하게 작용하는 게 사람과의 '합'이라지만 밀레니얼 며느리의 시선에선 일단 그렇다. 많은 불편한 에피소드들의 원인을 때때로 '딸 부재'에서 찾게 된다. 시어머니만큼 어려울 수도 있는 시누이의 존재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에게 딸이 있으셨더라면 꼬인 실타래는 좀 '덜' 꼬이거나 변색됨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 감히 상상한다.


그러니까 울 엄마는
딸이 있어서 참 좋겠다.


바꿔 말하면 우리 엄마는 딸이 있어서 참 좋겠다. 나 같은 딸. 모든 딸과 엄마가 베스트 프렌드 같지 않다고들 하지만 수십 년 나와 단짝인 울 엄마는 앞으로의 수십 년도 나랑 더없이 끈끈하게 데이트할 텐데... 이거 (나도) 너무 부럽잖아. 카페에 마주 보고 앉아 2시간이 모자란다 싶을 만큼 수다를 나눌 거고, 예쁜 곳에 가서 까륵까륵하며 셀피를 찍고 빛나는 날씨를 즐길 테지. 그런 우리 엄마는 엄마 세대의 그 누구들보다 트렌드 읽기에 빠르고 요즘 세대 마음을 잘 읽어주는 데 능수능란하기로 실제 유명하다. “자긴 딸이 있어서 그래.” 주변으로부터 자주 들으신다는 말씀. 혹시 나는 '딸이 없어서' 미래 젊은 여자 사람과의 소통이 삐그덕 거리면 어떡하지. 미리 할 필요 없는 걱정이지만 충분히 가능한 고민이다. 어쩔 수 없이 다시금 이 생각을 떠올리게 만든다. "딸이 있었으면 좋겠어"


“딸이 있었으면 좋겠어.” 세대를 넘어 가장 최근의 여자 세대 사람과 더 유연하고 부드럽게 소통하고 싶자는 의지


딸이 있으시다면 참 좋으셨을 거예요
나도 딸이 있었으면 좋겠어


 “너희 엄마는 아들이 없어봐서 잘 모르실 거야. 그게 딸 가진 죄야.”라는 말들. 종종 시어머니는 요즘 세상에 믿어지지 않는 구절을 아무렇지 않게 흘려하신 적이 있다. 난 그럴 때마다 속으로만 연거푸 생각한다. '딸이 있으셨다면 참 좋으셨을 거예요. 딸이 있으셨다면 그런 말씀을 이렇게 툭툭 던지진 않으셨을 텐데요. 좀 더 사근사근 섬세하게 이야기하는 소통의 기술도 통달하셨을지 몰라요.'


MZ세대 며느리의 까칠함이 도드라진 소심한 반항인 걸까. 어떻게 생각하든 좋다. 어쨌든 난 시어머니와 친정엄마를 번갈아 바라보며 오늘도 생각한다. 미래의 나도 "딸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 말은 곧 젊은 여자 세대의 사람과 더 유연하고 부드럽게 소통하고 싶다는 의지. 최근의 트렌드와 소통방식에 뒤쳐지고 싶지 않다는 바람. (하하, 물론 아직은 둘째 자녀계획 없음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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