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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Sep 22. 2021

친정엄마 vs 시어머니, 결정적 온도차

부캐는 미국 엄마 (11화)


부캐는 미국 엄마지만 한국의 명절은 챙긴다. 결혼 후, 미국 살이 3년 차, 차례음식을 챙기고 부모님 댁에 방문할 수는 없겠으나 우리 집만의 리추얼은 바로 한국 명절 오전 시간 맞춰 부모님께 영상 통화드리기. 추석 날, 화면으로라도 예쁜 손자 재롱 보실 순간만을 손꼽아 기다리실 테니, 아들 예쁘게 꽃단장시키는 건 필수. 아들에게 고운 한복을 입혀 태블릿 pc 앞에 앉힌다. 차례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하지도 않고 하루 종일 손님맞이 해야 하는 피로감에 우울할 일도 없으니 우리 엄마 때 명절 연휴 일상과는 정말 딴 세상이다. 어릴 적 추석과 설날에 내내 서서 일하며 바빴던 엄마를 떠올리자면 되려 미안해질 정도.


그렇게 편안한 채로 흘려보내는 미국 살이 며느리의 명절 일상일진대, 나는 이상하게 일련의 의식들을 치르고 나면 마음이 참 피곤하다. 육체적 노동을 한 것도 아닌데 명절 연휴 잠깐잠깐 오고 가는 대화들에 어찌나 심신이 고단했던지, 미 동부 시간대 기준으로 추석 전야, 해야 할 미션을 간신히 마치고 스르륵 곯아떨어져 버렸다. 어디에 살든, 어느 시대에 살든 똑같다. 며느리들에겐 지역불문, 시대불문 참 싫은 명절.


미국살이 며느리의 명절 의식,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영상 통화 미션



계단에서 미끄러져 넘어졌어요.
3주쯤 지났는데도 여전히 아프네요.


(1) 친정엄마

어머 어떡해. 많이 다친 거 아니니?

지금은 어때? 병원은 잘 다녀왔니?

(2) 시어머니

아이고, (우리 아들이) 애를 둘을 키우네.


이번 명절 리추얼에서 가장 오싹, 멈칫, 뜨악했던 부분. ‘넘어져서 다친 사실’이 친정 엄마에게는 “딸이 아프겠다”는 사실로 입력되지만 시어머니에게는 “아들이 번거롭겠다”로 인식된다. 며느리가 다쳤으니 당분간은 몸 쓰기가 불편할 테고, 당연히 아프다고 징징대고 있는 풍경이 연상되실 것이다. 한 마디로 아들이 피곤해지는 상황이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자신의 분신이 고단해지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말이 참 서운하게 들렸다. “어머, 그 집에 애가 둘이네… 애를 둘을 키우네.”


아파서 다녀온 한의원, 침 맞고 싹 나으면 서운한 맘도 쏙 들어갈까.


(질문)
그래서 남편은 몇 시에 퇴근하니?
(대답)
강의하는 날은 10시, 늦으면 11시예요.



(1) 친정엄마

 그때까지 애를 혼자 보느라 네가 힘들겠구나.

(2) 시어머니

어휴, 우리 아들 바빠서 힘들겠구나.


남편이 고생하고 있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일도 해야 하고 바깥일을 잘하기 위한 준비를 미리 마쳐야 하고, 그러면서도 집안일과 육아를 돕는다. 내가 힘들 걸 배려해서 ‘미 타임 (me time)’ 가지라고 시간을 쪼개 내어준다. 자신의 미 타임은 정작 가지지 못하면서 말이다. 내내 그에게 툴툴거리면서도 고맙고 미안하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어머니들의 온도차는 분명했다. 간단히 말해 우리 엄마는 ‘내가 힘든 게 보이고’ 우리 어머니는 ‘당신의 아들이 힘든 게’ 보인다. 물론 두 분 모두 자녀의 배우자를 아끼고 사랑한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르다. “힘들겠구나”라는 동사와 안타까움을 담은 탄식은 동일했으나 두 분이 지칭하시는 대상은 확연히 달랐다. “그때까지 너 혼자 아기 케어하기가 힘들겠구나.” “우리 아들이 밤늦게까지 바빠서 힘들겠구나.” 당연한 포인트지만 이 세상 며느리라면 모두 끄덕거릴 것이다. 아, 친정엄마와 시어머니는 다르다는 것을. ‘딸 같은 며느리’ 없듯이, 우리 엄마 같은 시어머니는 꿈꿀 수 없다는 것을.


딸 같은 며느리 없듯, 우리 엄마 같은 시어머니는 꿈꿀 수 없다는 것을.


(질문)
육아 혼자 하려니 힘들지?
(대답)
아무래도 한국에서처럼
주변 도움을 받지 못하니 많이 힘드네요.


(1) 친정엄마

어쩌니, 파트타임이라도 데이케어를 알아보지 그래. 그래야 네가 살지.

(2) 시어머니

원래 여자들 (엄마들) 애 키우는 게 그렇게 힘들다. 남자들은 몰라.


“남자들은 몰라”라는 말로 여자들만의 동지애를 강화시키는 말 같지만, 실은 육아의 기본이 ‘네 몫’이라는 이야기의 간접적 강화 표현. 나 역시 아들바보 ‘엄마’이기에 당연히 육아에 대한 힘듦을 감수해야 함을 알고 있지만 두 어머니의 핵심은 각각 다르게 응집된다. 위에서 쭉 살핀 바와 같이 당연한 이야기일 거다. 친정엄마는 ‘나’를 생각하고 시어머니는 ‘남편’을 생각한다는 것. 이건 시대불문, 세대불문, 만고불변의 법칙.


두 분 각각 포인트가 다름을 알면서도 너무 힘드니까 자꾸만 투정을 부리고 볼멘소리를 한다. 실제로 시어머니께선 내가 한국에서 친정 찬스를 쓰고 있던 시절을 내심 더 다행이라 반겨하셨더랬다. 남편에게 “혼자 지내니 참 잘됐다, 다행이야”라고 이야기하시는 걸 우연히 들은 적이 있으므로. 물론 아들의 결혼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싫어서 하신 말씀이 아니란 걸 안다. 육아 환경에서 잠시 떨어져 있어야 당신의 아들이 미국에서 그나마 편히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걸 고려해하신 말씀일 테니까. 다시 말해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내 아들’, ‘내 딸’이 먼저 보인다. 아마 나도 그럴 것이다.


네가 예민해서 그래.
네 몸이 약해서 그래.


‘힘들다’는 이야기가 내 입에서 흐를 때면 늘 한결같이 접했던 리액션. 결혼해서 시댁으로부터 가장 자주 들은 말은 이렇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임신과 육아, 타지 생활이 힘든 건 정말 내가 남들보다 너무 초초초 예민해서 일 수도 있겠고, 남들보다 너무너무 빼빼 말라서인 탓도 있을지 모른다. 어느 상황에서든 ‘체력을 길러야 한다’는 말에도 격하게 공감한다. 하지만 힘든 상황의 결정적 원인이 ‘내가 체력을 기르지 못한 탓’으로 늘 귀결되는 것엔 늘 화가 났다. 결국엔 내가 약한 탓, 내가 성격이 더 푸근하지 못한 탓이라는 거니까.


그럴 때마다 ‘네가 예민하다’고 말하는 대신 우체국 택배 상자에 내가 좋아하는 간식거리 꽉꽉 채워 보내주는 친정엄마가 있었다. 20만 원 넘는 택배비가 아까워서 택배 못 보내겠다고 망설이실 만도 한데 ‘속상할 때 네 마음이라도 달래라’는 엄마의 쿨함을 존경한다. “네 몸이 약하니 건강 잘 챙기라”는 메시지는 동일하지만 세밀히 다가오는 맛은 달랐다. 그렇게 온도차는 상시 존재했다. 타지 생활을 하다 보면 매일을 ‘버티듯’ 살아내서 일지, 별거 아닌 것 같아도 그런 온도차가 더 크게 다가온다.




결혼 직전, 청첩장을 나누는 모임에서 누군가가 그랬다. 시댁 식구들과는 사이가 나쁠 필요도 없지만 절대 ‘친해질 필요’도 없다고. “우리 형님은 글쎄 어머님이랑 하루에 3번씩 통화하잖아. 완전 베프가 따로 없어.” 처음엔 내가 친구의 ‘그 형님’을 닮은 사람이 될 줄 알았다. 늘 어른들께 싹싹했고 예의 바른 모범생 모드로 30년을 넘게 살아왔었으니까 당연히 그 모습을 닮아가지 않을까 어렴풋이 상상.


그런데 친정과 시댁의 묘한 기류 차이가 과거의 내 의지와 성정을 때때로 반전시켜버리고 만다. 누군가를 비난하려는 것도 결코 아니며 억울하다고 호소하려는 것도 아니다. ‘참 다르다’는 것을 얘기하려는 것이다. 수십 년의 세월을 다른 세상,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왔으니 새로운 가족으로 함께 어우러진다는 것은 이토록 낯설고 어려운 일일수밖에. 누군가 장난 삼아 시금치의 ‘시’ 자만 들어도 싫다는 얘기를 언급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누군가가 ‘싫어서’가 아니라 ‘다름에서 오는’ 피곤함을 농담 삼아 비꼬아 과장한 것이리라 생각한다.


어쨌든 반가운 건, 명절이 끝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편하게 잘 사는 것 같은데 뭘 그렇게 불만이 많니? …라고 말하고 싶으시다면 이번 한 번만 참아주시길 부탁한다. 이 글을 읽고 불편하신 분들이 있다면 철없는 며느리의 초초초 예민함에서 오는 투정이려니 너그러이 눈감아 주시기를. 모른 척해주시기를.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싶었던 전래동화 속 주인공처럼, 나도 이렇게 숨통 트이게 외치고 싶은 말들이 있지 않겠나. 이렇게라도 풀고 살아가는 어쩔 수 없는 ‘한국 며느리’인 것을. 부캐는 미국 엄마지만 여전히 한국 며느리, 한국 엄마라는 본캐를 지니고 오늘을 버텨낸다. 그렇게 미국 현지에서의 추석 연휴가 지나가고 있다. 어쨌든 반가운 건, 이번 명절이 끝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각각의 어머니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그러리라는 것을 안다
온도차에도 피식 웃고 넘길 줄 아는 현명한 여우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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