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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Oct 19. 2021

롱디 그 후,

그 남자 그 여자의 간헐적 연애 (11화)

Happily Ever After. 그들은 평생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진짜? 진짜 그랬을까. 동화 속에 클리셰로 등장하는 이 말은 영화 제목으로도 인기가수들의 노래 제목으로도 자주 차용된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고 싶다고 노래하기도 하고, 애초에 그런 건 불가능하다고 배배 꼬인 시선으로 상상의 날개를 부러뜨리기도 한다. 간헐적 연애에 잘 적응해서 결국 그 특수한 사랑 패턴을 성공 지점으로 이끌어낸 경우라면 어떨까. Happily Ever After?


같이 커피 한 잔 마시는 게 소원이었는데, 매일 붙어 커피 마시는 날들


롱디 커플, 장거리 연애자들이 부부가 되었다. 그냥 평범한 부부가 아니라 코로나 집콕 부부가. 마치 약 2년 반의 시간을 이어온 장거리 연애의 아련함을 보상이라도 받는 것일까. 100퍼센트 타의로 지겹도록 붙어있어야 하는 날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그 타의를 발휘한 주체는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 미국에서 COVID 19에 대한 화두에 심각성을 느끼기 시작한 게 2020년 3월 초엽이었다. 보스턴 심포니와 피아니스트 조성진 협연을 감상했던 게 코로나 집콕 전 부부의 마지막 외출이 될 줄이야.


그때 난 만삭이었고 유학 중이기도 했다. 3월의 첫 주 토요일에 공연을 보고 왔는데 바로 다음 주에 학교에서 이메일이 왔다. 이번 학기 모든 수업을 리모트로 전환한다고… 마침 봄방학 주간이었는데 방학이 끝나고 캠퍼스로 오지 말고 ZOOM으로 원격수업을 들으란 얘기였다. 출산을 딱 한 달가량 남겨둔 시점이었기에 집에서 수업들을 수 있게 해 준다는 이야기는 내심 반갑기도 했다. 출산 전 미리 모든 과제를 당겨 제출하고 발표를 서둘러 마쳐두긴 했었지만 무거운 몸으로 눈치 보며 마스크 쓰고 다니는 일이 여간 버거운 게 아니었기 때문.



남편 역시, 일하고 있는 학교에서 같은 날 메일이 왔다. 학생들 가르치러 학교 나오지 말라는 공지. 집에서 화상 카메라 켜고 원격수업을 제공하라는 학교 측 지시였다. (코로나에 대한 심각성은 일단 차치하고) 혹시라도 출산이 임박했는데 남편이 하필 늦게 퇴근하면 이 타국에서 어떡하나 내내 조마조마했던 내겐 내심 또 반가운 소식 2였다. 서툰 영어로 911을 부를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으니까.


자 배경 설명은 여기까지. 1년에 많아야 두 번 만났던 분기 연애자들이 코로나 집콕 부부가 되었을 때 생기는 일은?  연애할 때 박사과정 중이었던 남편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나 틈이 났고, 내가 방송사 휴가를 내고 미국에 한번 놀러 가면 남편은 겨울에 크리스마스 시즌 맞춰 놀러 가는 식이었다. 주말부부도 아닌 ‘계절 연인’이었다. 상반기 한번, 하반기 한번. 그렇게나 뜸하게 대면관계를 이어온 자들이 각자의 등교와 출근 없이 한 공간에 붙어 지낸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 않은가. 누가 봐도 부딪칠 일이 너무 많을 상황이었다.


분기 연애자들이
코로나 집콕할 때 생기는 일은



싸움이라도 나면 상상 이상 피곤한 전투태세가 이어졌다. 붙어있어야 하는데, 어느 누구도 전시 상황을 방불케 하는 이 시국에 집 밖에 나가서는 안되는데, 한 바탕 화를 분출한 남편을 보는 일이나 언제 풀릴지 모를 삐침 대마왕 아내를 보는 일은 정말이지 도움이 안 된다. 냉전은 서로가 안 볼 틈이 있어야 각자의 입장 정리가 되고 세태 전환을 꾀할 수 있다. 화해의 길을 각자의 침착 모드에서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 그러나 24시간   집에서  나가는  디폴트 값이니 화해가  더딜 수밖에. 풀릴 틈이 없는 거다. 원하지 않는 순간에도 빈틈없이 마주해야만 하니 화가 식을 시간이 없다.


물 한 모금도 같이 마시던 코로나 집콕의 날들


붙어있어야 하는데
어느 누구도 
집 밖에 나가서는 안되는데



불행 중 다행의 요소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신생아 육아. 코로나 때문에 위험해서 어디로 나가지도 상황은 곧 내 출산과 육아를 도와줄 누군가를 부르지 못한다는 얘기기도 했다. 산후도우미도 산후 마사지사도 집에 모시기 껄끄러웠고, 비행 직항 편이 중단돼 양가 부모님도 못 모시는 심각 모드가 줄줄이 이어졌다. 만삭 막바지엔 산부인과에 남편 출입도 금해졌으니 그 당시 미국이 얼마나 초긴장 상태였는지 알 만하다. 그 와중에 집콕해주는, 아니 ‘할 수밖에 없는’ 남편은 이 세상 유일무이하게 기댈 수 있는 조력자였다. 덕분에 만삭의 무게와 출산의 생생함, 신생아 예민 육아의 순간을 1도 놓치지 않고 함께 했다. 코로나 때문에, 코로나 때문에.


코로나 집콕의 백미는 임신 출산 육아 온갖 요소를 함께 공유했다는 것



아기가 우리 둘을 살린 셈이다. 간헐적 연애자들이 코로나 집콕할 때 연출될 무한한 위기상황들은 임신 출산 육아를 단둘이 함께하며 흐릿해지고 때론 지워졌다. 만삭의 몸을 감당하느라 어지러워서, 신생아 육아를 전부 둘이서만 하느라 버거워서, 그나마 냉전이 찾아올 틈이 덜했고 우린 둘 다 서로가 너무 필요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나만 그랬을 수도.)


늘 저 멀리 13시간 혹은 14시간 시차 두고 있던 사람과 매 시간 1분 1초 같은 공간에서 숨 쉬게 되었다는 것. 애틋함과 아련함이라는 감정은 헬륨가스 잔뜩 넣은 풍선처럼 훠이훠이 날아가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훅, 터져버리고 만다. ‘지금 이 순간 너는 뭐 하고 있을까’가 로맨틱하게 적어 내려가던 단골 메시지였는데 어느 순간 ‘지금 이 순간 격렬하게 혼자 있고 싶어’가 머릿속에 둥둥 떠올라 버린다. 소위 ‘간헐적 연애자’ (내가 만들어낸 우리 연애에 대한 지칭어지만), 롱디 잘했던 애들이라 그렇다. 장거리 연애 종결자들에겐 24시간 매일 같은 공간에 자리하는 게 그저 어색할 수 있다. 어색함과 안 익숙함은 결국 화를 부를 수도 있고.



지금 이 순간 
너는 뭐 하고 있을까?
지금 이 순간 
격렬하게 혼자 있고 싶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부터 2년 반 롱디 세월을 견뎌낸 우리는 코로나 집콕마저 또 한 번 견뎌냈다. 떨어져 있어야 하는 수개월의 시간을 가슴앓이하며 버틴 것처럼, 같이 있어야만 하는 강제 집콕의 시간들도 같은 끈기(?)로 견딘 거다. 방향성과 품고 있는 성질은 다르지만 양쪽 각각 ‘잘 버텨내야 하는’ 연애, 삶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가끔은 격렬히 혼자 있고 싶은 날들도.


종종 상상한다. 유리구두 한쪽의 주인을 찾겠다고 온 동네 뒤지던 왕자가 신데렐라와 하루 종일 코로나 집콕했다면? 성 안에 갇힌 라푼젤이 자신을 구해줄 왕자를 꿈꾸며 기다리는 시간을 보낸 뒤, 그 왕자와 코로나 집콕했다면? 각각은 서로에게 ‘원수’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 혼자만의 자가격리 라이프에 이미 익숙한 라푼젤은 더더 힘들어했을 게 분명하다. ‘도대체 언제까지 같이 붙어 집콕해야 하는 거야!’ 하고 말이다.


다행히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작년만큼 심각한 집콕 기지를 발휘해야 할 일은 사라졌다. 미국은 차례차례 부스터 샷 접종도 시작되고 있다. 작년에 한바탕 코로나 집콕 의식을 치러냈던 남편은 주 3회 꼬박꼬박 출근하며 일터로 나가고 있고, 남편이 출근하지 않는 하루는 나 역시 공식적인 자유부인의 날로 정해두고 외출한다. 참 다행인 일임에 틀림없다.

코로나 집콕 시절, 비상식량처럼 쟁여두고 먹던 우리의 커피, 우리의 당충전 초콜릿. 이 모든 게 결국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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