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
<구운몽>이라는 고전을 기억하는가. 수업시간 딴짓하기 좋아했던 그 누구일지라도 '구운몽'에 대해 학창 시절 한 번쯤은 공부했던 기억은 가물가물 기억 저 편 남아있을 법하다. 서포 김만중의 소설, 아홉 구름의 꿈이라는 뜻을 품은 이 작품, 인생사 부귀영화 덧없음이라는 시험용 주제요약도 미리 힌트 드리겠다. 성진이라는 주인공이 꿈속에서 팔선녀를 거느린 양소유가 되어 요즘으로 치면 유명 인플루언서 못지않게 부와 권력을 누리며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가는 이야기, 근데 눈 떠 보니 그게 다 꿈이었다는 허탈한 일장춘몽 스토리. 구운의 '아홉 구름'은 양소유와 팔선녀 아홉 사람의 구름, 즉 헛된 꿈을 상징한다고들 한다. 왜 갑자기 '국어국문학도' 시절로 돌아가 소설 이야기냐고? 만 4세 내 아들 별명, 다름 아닌 '구운몽'이기 때문이다.
별명이 구. 운. 몽. 신경 다양성 세계에서 고군분투하는 내 아들이 소설 속 주인공처럼 '허황된 꿈을 꾸고 있다' 이야기를 하려는 건 당연하게도 아니다. 독특한 아이라는 편견을 딛고 아홉 친구와 하하 호호 살아갈 것이라는 꿈? 오! 지금 급조해 낸 상상력치곤 그럴듯해서 이 해석도 좀 담아둘 필요는 있겠는 걸? 뭐, <구운몽> 소설 액자 속, 양소유만큼이나 훈훈하고 잘생긴 건 솔직히 인정.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니까 내 아들 비주얼 아름답다고 하고 지나가는 건 봐주시길!) 실은 아홉 개의 구름을 넘어야 우리 아들이 꿈꾸는 순간을 편안히 마주할 수 있다는 나만의 내 멋대로 해석을 덧댔다. 소설 <구운몽>에서는 아홉 구름이 아홉 사람의 꿈이었지만, 내 아들의 구운은 아홉 개의 챌린지다. 도장 깨기, 아홉 스테이지를 해야 비로소 꿈처럼 아이 스스로 원하는 경지에 이르고 만다는 이야기.
불안이 높은 아이는 마음이 '꽁꽁' 닫힌 경우가 많다. 새로운 장소에 가거나 생전 처음 하는 새로운 시도에 대해 마음이 잘 안 열리는 거다. 낯선 장소일지라도 곁에서 엄마 아빠, 혹은 선생님이 함께하면 기꺼이 '진입' 할 수도 있을 텐데, 일단 다 '안 하고' 본다. 그래서 원래 자기가 익숙했던 루틴만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고들 한다. 그리하여 '자폐스펙트럼 장애 (ASD)' 영역에 선 느린 친구들을 이야기할 때, 동일성에 대한 집착, 같은 패턴에 대한 고집 등을 이야기하곤 한다.
지하 3층 주차장에 늘 주차를 하다가, 지상주차장을 차를 세웠을 때 난리가 나는가 하면, 늘 우회전을 하던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면 그 또한 폭발의 근원이 될 때가 있다. (물론 아이들에 따라 정도와 빈도 차는 있다. 아예 이러한 행동 매너리즘이 없을 수도 있고.) 우리 아이도 '새로운 시도'에 다가설 때, 늘 쉽지 않았던 순간들이 있었다. 새로운 동선에 가거나, 익숙지 않은 음악과 조명이 있는 환경으로 들어가면 아이는 긴장한다. 일단 뒷걸음질부터 치고보는 순간들이었다. 이 불안이 어떻게 꺾일 수 있을까, 얘는 또 얼마나 견디기 힘들면 이럴까, 참 막막했던 시절이었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
아홉 번쯤
시도해 본다는 마음으로
아이가 돌이 조금 지나고 처음 방문했던 키즈 미용실. 그 현장, 그 풍경은 아마 10년, 20년이 지나도 생생할 것이다. 빽빽 울었고, 울다 못해 발버둥 치는 애를 붙잡아 헤어컷 끝까지 하느라 서로가 탈진 지경이었던 날이었다. 그 당시에도 자극에 대한 예민함은 범상치 않았을 텐데,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의 초예민 기질에 ‘둔감’ 했던 엄마였으니, 말 다했지 뭐.(그땐 행동분석가의 세계를 빼꼼히 들여다보기도 전이었다.) '처음이니까' 놀란 정도라고 생각했지, 아이의 감각을 앞서 배려하지 못했다. 한 마디로 머리카락 좀 다듬자고 미용실에 학을 뗀 날이었다. 전동트리머 소리는 최악으로 무섭고, 은색 짜랑짜랑한 미용가위도 세찬 공포를 쥐어줬겠지. 손하나 까딱 (할 수 있지만) 마치 못하게 만드는 것처럼 꽁꽁 묶이는 느낌의 미용가운은 또 어떠한가. 제 아무리 자동차 의자에 앉아도 모든 게 아이에겐 낯섦의 범벅 그 자체다. 그 이후로 미용실은 다신 못 가는 줄 알았으니, '키즈미용실' 텐트럼 대회 했으면 우리가 단연 일등 각이었을 거다.
결국엔 '조금씩, 천천히, 여러 번, 친절하게' 시도해 보는 거다. 해보니 아홉 번쯤 하면 아이는 그게 무엇인든 극뽁해내는 것 같았다. 첫 미용실의 '공포'를 떨치기 위해 아이 헤어컷으로 유명하다는 웬만한 곳은 다 찾아다녔고, 결국 가장 공포가 '덜'한 곳으로 여겨지는 공간, 그곳만 부지런히 연습무대로 삼았다. 특정자극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심할 때 '체계적 둔감화' (Desensitization)를 적용하곤 하는데, 쉽게 풀자면, 최종 목표로 삼는 그 자극에 나아가기까지 미세한 단계단계로 나눠 조금씩 밟아가는 것. 고양이가 무섭다면 정말 작은 고양이의 이미지를 상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그 다음엔 엄마가 그리는 걸 바라 보기만 하고, 그러고 나선 직접 그려보기도 하고, 그림책에 있는 고양이 캐릭터를 만나는 것으로 조금씩 나아간다. 실제 고양이를 만난다면 충분한 거리를 두고 만나기 시작할 수 있고, 만약 나아가다가 공포가 올라오면 다시 뒷단계로 돌아간다.
한 놈만 패기로 했으니, 그 미용실 공간에 집중하되, 아주 조금씩 나아간다. 처음엔 미용실 밖을 지나다가 친구들 머리카락 다듬는 것 구경만 하는 데 만족. 그 다음번엔 미용실 입구에 발은 딛지만, 안쪽 놀이공간에서 좋아하는 장난감만 실컷 누리다 나온다. 그다음은 키즈 미용실 전용의자, 자동차에 탑승해 보고, 그 다음번 방문에서야 머리 자르기를 딱 5분만 도전해 본다. 이마저도 애가 불안해하면 굳이 무리하지 않고 체험한 것에 만족하기.
이쯤하면 이렇게들 물으실 것 같다? 이렇게 해서 결국 머리카락 자르기는 자를 수는 있는 거냐고. '느림의 미학'과 노리플라이 밴드의 ‘조금씩, 천천히, 너에게’라는 애정곡을 접합시켜 아이의 공포 둔감화에 적용하다 보면, 놀랍게도 성공에 가까워진다는 최고 반전스토리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극단의 점진적인 스텝을 밟다 보면 놀랍게도 무난하게 '헤어컷 성공'이다. 정말이지, 아홉 번의 힘은 늘 통했다. 구운몽 전략에 나도 놀랐다.
애초에 아홉 번은 해야 한다고
마음을 내려두니
결국 해내고 마는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구운몽. 세글자 또박또박 되짚어서 상징하는 바를 되뇌어 보자면, 한번에, 두 번에 안 되는 도전을 그냥 돌아서서 놔버리는 게 답이 아니라는 것. '영영'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이걸 진짜 한다고?" 싶은 것들이 하나둘 생기면서부터 얻은 확신이었다. 15개월쯤엔 전동 놀이기구 타보자고 동전을 넣기만 해도 털썩 주저앉아 소리를 질러댔던 애가 아무렇지 않게 그 스릴을 즐기면서 스스로 결제를 자청하기까지, 혹은 가위질 소리가 100미터 앞에서 들려도 표정이 얼얼하게 얼어버려서는 고개를 좌우러 흔들어댔던 두 돌 시절의 아이가 '딱히 좋진 않아도 여유 있게 견딜 수 있는' 몸짓으로 바뀌기까지! 내가 묵묵히 해 준 건 하나. "야, 하지 마하지 마 나도 힘들어" 못하겠노라고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같은 목표를 향해 곁에서 같이 걸어준 것.
생각보다 아홉 번쯤의 시도는 금방 지나갔고, 그러는 사이 아이는 '견딜 수 있는 근육'이 생겨났다. 그 근육은 불안과 긴장을 털어내는 마음근육이기도 하고, 굳어버린 몸 구석구석에 흐르는 유연한 완충지대를 의미하기도 했다. 모든 불안요소를 완벽하게 극복한 100점짜리 성장은 아니어도, 하루하루 1점씩 보태가는 레벨업이 재미있었다. 다음 도장깨기 미션 주시죠!
생각할수록 마음에 드는 별명. 내가 봐도 참 잘 지었다 싶다. 구운몽은 신경다양성 아이가 나아가야 할 세상에 대응하는 전략 언어이자, 곧 이 아이와 함께 걷는 부모를 위한 미션명이다. 마냥 털썩 주저앉아 아이와 함께 울음 터뜨리기보다는 묵묵히 단조로이, 아이를 위한 한 가지 시도라도 더 해보라는 명령어. 오늘 나가면 또 난리도 아니겠지, 그냥 집콕하는 게 심신 안정에 도움 된다며 바깥세상 탐험을 주저하기보다는 1센티미터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려는 소소한 도전을 응원해 보는 것.
그렇게 아홉 번 정도가 켜켜이 쌓이면 두루뭉술 막연하게 부풀어버린 꿈이 곧 진짜로 가까워진다. 소설 구운몽은 아홉 사람의 헛된 꿈을 의미했지만, 신경다양성 세계에서는 아홉 번의 치열한 노력이 층층이 쌓여 아홉 배나 더 예쁜 구름을 몽실몽실 틔워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