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잿빛이거나 어느 한쪽이 거뭇거뭇 탁한 색으로 변해가고 있는 세계가 아니라, 푸르름이 너무나도 싱그러워서 미세먼지가 날려도, 뿌연 안개가 휘감아도 결국에는 '아름다워질 거'라고 짐작 가능한 세계. '장애'를 품고 견디는 일련의 우울감은 마냥 푸르르기를 희망하는 마음에 시뻘건 경고등과도 다름없다. 자폐스펙트럼 장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불안장애, 조현병 등등 신경다양성 영역에 붙은 수많은 '장애' 꼬리표 앞에서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 그리고 그 시선 앞에서 영영 고립되고야 말까 봐 '불안한 사람들'. 불안과 불편, 두 가지 '불' (= 투뿔이라고 해두자)이 '신경다양성'의 특별함으로 뻗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이미지로 담아본다. 결국엔 신경다양성 세계에 다가서는, 진입하는, 들이대는 방식이다.
다른 곳을 보고 있어도
우리는 등을 맞대고 온기를 주고받지
프롤로그에서 밝혔던 바, 아쿠아리움에 간 남매의 시선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한다. 한 아이는 물고기를 바라보고, 한 아이는 어두컴컴한 수조를 다이내믹하게 비추는 천장 핀 조명과 잔물결의 일렁거림에 주목한다. 다른 한 아이는 그야말로 이 세상 신기한 물고리를 집어내고, 가리키고, 공유하고, 신나한다. 같은 공간을 즐기는 방식은 남매 각각이지만, 결국에 이 둘은 등을 맞대고 온기를 주고받는다. 서로 다른 곳을 향할지라도 같은 지점에서 존재를 인지하고 곁에 머문다는 건 이토록 중요하다. '체온'을 느낄 수 있고, 그 따뜻하고 뭉근한 기분으로 엄마는 며칠을 더 씩씩하게 버텨낼 수 있으니까. 서로를 빤히 바라보지 않더라도 괜찮다. 조용히 등을 맞대어줄 수 있는 또래와 어른들을 최대한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고 기다리는 마음.
누가 이끌면 좀 어때
같은 방향을 향해 가면 되는 거야
위로 오빠 아래로 여동생이라면, 나는 늘 어린 시절 좋아했던 만화영화 <카드캡터 체리>의 남매를 떠올린다. 시크하지만 동생 뒤에서 든든히 지켜주는 오빠, 세상을 지키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일상에서는 천방지축 실수투성이 여동생. 하지만 누가 리드하면 어떠하리. "내 오빠는 내가 지킨다" 벌써 리드본능 앞서는 여동생이 여기 있다. 신경다양성 아이가 대대적으로 나서 리드하지 못해도 좋다. 누군가의 듬직한 이끎에 어설피 동참하고 따라가고 소위 말해 '젓가락만 얹는 꼴이어도' 그렇게 다정한 보살핌 속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 있지. 때론 '어찌어찌 따라만 가는 인생'도 경쾌하고 귀염뽀짝한 리더의 손에 이끌려 조금씩 성장해 간다.
서로 돕는 마음
결국 서로를 아끼는 마음
하원길, 한참을 같은 자리에 머물면서 오빠의 까르르 웃음을, 동생의 배시시 미소를 만끽하는 남매. 혼자서 머물렀다면 초록빛깔 큼직한 풀꽃들 앞에 서서 '멍 때리는 것에' 불과했을 것을, 동생은 끊임없이 오빠의 곁에 다가가 '신경다양성' 세계를 두드린다. “나뭇잎 예쁘다"고 쓰다듬어 주고, 덜컥 손을 잡으며 너도 해보란다. '너무 들이대는 거 아냐?' 우스갯소리도 잠시, 그렇게 세계를 두드려주는 시도가 참 곱고 예쁘다. 앞으로 부단히도 겪을 외면과 회피들에 대한 피로감을 이 둘의 그림자로 미리 치유해본다.
신경다양성 세계의 문도
똑똑 열 수 있고야 말고
오후의 햇살만큼이나 너그럽고 느슨한 관계. 기대고 싶을 때 기댈 수 있고, 도와달라고 뭉개듯이 누워버려도 화내지 않고 한번 더 기다려주는 사이.
서로를 향한 너희 둘의 노크가 결국
세상의 판을 바꾸는 소소한 시도가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