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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아이가 행복해야 엄마도 행복한 삶



너의 행복을 품은, 나 :)






"엄마 일 해야되니까 

아빠랑 구경하고 와서 놀자" 




지금으로부터 3년전 아이가 여섯살, 

다시 오지 않을 귀여움이 

온 일상을 가득 채울 나이. 



붉긋한 단풍이 한창이던 

오늘과 같은 가을 즈음이었다.



세 가족이 함께 간 여행에서

어김없이 신랑의 손에 아이를 맡기고는



숙소 안에서 컴퓨터 작업만 하고 있었던 

나의 모습이 불현듯 떠오른다.  



아이를 낳고 맞이하는 아홉 번의 가을 중 

거의 대부분의 기억에 나는

 '일에 빠져 사는 엄마'로 남아있다. 




'우리 엄마는 밤에 맨날 일해요'



지금도 가끔 들여다보는 반짝이의 그림에 

선명히 적힌 글자다.



컴퓨터 앞의 엄마를 그린 그림이

7살이었던 반짝이의 삐뚤 빼뚤한 글씨만큼이나

선명하게 그 삶을 보여주었다.







나로 살고 [싶은] 나.

엄마로 [살아야 하는] 나.



끊임없이 이 둘을 분리하려고 했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메세지를

단 한번의 여과도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다. 




행복이 뭔지.

엄마가 뭔지에 대해

스스로 깊게 들어가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꽤 오랜 시간, 나로 살고 싶은 '나'를 고수했다.



'멋진 커리어우먼 엄마, 

돈 많이 버는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어주면 돼'  



곱게 포장된 말로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이 삶이 결코 나에겐 행복하지 않았지만.


(아마 아이에게도. 아마 가족 모두에게도)




이렇게 열심히. 바쁘게. 살다보면 

행복한 날이 올거라고 믿으면서.



새벽 6시 반에 출근길에 나섰고 

하루 시간 사이 사이를 빼곡히 내 일로 채웠다. 



그러다 잠깐 틈을 내서 아이를 데리러 가고 

잠깐 틈을 나면 아이와 대화를 하고 

잠깐 틈을 쪼개 아이 책을 읽어 주고.



아이에게 주는 시간은

조각을 나누듯 내 것을 쪼개어 나눈 것 뿐이지,

엄마로서의 온전한 100을 아이에게 준 적이

사실 없었다. 




어쩌면 바쁜 삶이 

미덕이고 능력인 요즘 시대에 

발맞추며 살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던 것이리라. 







내 일에 집착할수록.

더 '멋진 엄마'가 되려할수록.


내 마음의 중심에 

아이가 빠져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어느 한 순간의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마음 기저에서 묵직하게 울리고 있던

본능의 소리가 아니었을까 한다. 




계속 계속. 

내 마음을 두드리며 나를 일깨워준 본능의 소리. 




'정말 내가 무엇이어야하는지'

'어떤 삶이어야 하는지' 






어느 순간 내 안의 목소리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삶의 템포를 늦춰보기 시작했다.


일을 점차적으로 줄여 나갔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준비했고.


'엄마'란 무엇일까에 대한 정의를 

스스로 내리기 시작했고.



경제적인 부분의 손실을 감안해야했지만

지금 당장의 손실이 중요지 않게 느껴졌던 것이

지금 돌아보니 참 감사한 일이다. 



엄마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내 스스로 정의를 세우고 싶었던 과정들의 기록






 "우리 엄마는 

나를 지킬 땐 강하고

나를 돌볼 땐 온화하지"




그리고 올해 가을, 

그러니까 몇 주전.

반짝이가 나에게 해준 말이다. 




나 혼자 달리려던 삶의 속도를 늦추고 

'엄마'란 무엇일까에 대한 정의를 

스스로 내린 이후부터.




나의 발걸음에 

아이의 삶을 끼워 맞추기보다



아이의 발걸음에 

나를 맞춰가려는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채는 사람은

신기하게도 엄마인 내 자신이 아닌 아이였다.




'무엇을 하는 엄마'에서

'엄마 그 자체'가 된 삶에,

아이가 고맙게도 가장 먼저 반응해주었다. 






나를 강인하게 지키고 
온화하게 돌보는 엄마 


아이의 입에서,

내 마음 가장 기저에서 울리고 있었던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답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늘 시간과 마음을 쪼개어 하려 했던 

엄마의 '역할'에서.

그저 삶 자체가, 내 자체가 

'엄마'라는 하나의 '존재' 자체로 바뀌고 나니



역할도, 희생도, 책임이라는 단어도

모두 나에게서 지워지고 있었다. 






나를 잃게 할 것만 같았던 '엄마'의 삶이 

사실은 '나'로서 온전하게 살아가게 하는 힘임을

반짝이와 함께 하는 요즘, 

특히 더 많이 깨닫고 경험하게 된다. 




엄마의 행복은 

결코 아이와 분리된 것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 




엄마라는 존재는 

이미 아이를 그 안에 품은 존재이기에.



아이 안의 행복은 

고스란히, 엄마의 행복이 된다는 것을

오늘도 끊임없이 떠올려려한다. 




아이와의 순간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기억에, 추억에 꾹꾹 담아보려 한다. 





엄마로 살아가는 삶 속에,

아이의 행복을 눈으로 귀로 피부로 느끼는 것에,

삶의 의미와 행복이 들어있다. 



그렇다.

엄마는 엄마일 때 가장 행복하다. 



엄마이기에. 




아이는 매일, 엄마를 사랑한다





@말랑맘의 감성 육아 아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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