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둥 떠다니는 생각들을 붙잡겠다고
필기 도구를 꺼내면 안됩니다
둥둥 떠다니는 것들은
그렇게 떠다니도록 놓아둡니다
좋은 생각들은
언젠가, 내려 앉게 됩니다
- 작가의 루틴 <김종혁 작가>
글을 쓰다보면 고민되는 것이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가 어떤 글을 써야할까에 대한 글감이요. 두 번째는 그 안에서 나의 사색, 사유, 상상 등을 어떻게 맛깔난 문장으로 입히느냐. 마지막은 그럼 이것들을 다 어떻게 배치해서 마음에 파고드는 작품으로 만들 것이냐 이다.
요즘 들어 최대 관심사이자 고민이 되는 부분들인데 이런 것들은 책상 앞에 앉아 머리를 쥐어 짜낼 듯 고민해서는, 도저히 나오지 않는다.
사실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의 재료들, 언어들, 구조 배치의 영감이 쏟아져나오는 장소는 따로 있다.
어디냐 하면, 바로 화장실이다.
나도 믿고 싶지 않은 의외의 장소라 몇 번 우연이겠지 싶었는데 들어갈 때마다 겪는 일이다보니 이제는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화장실에서 영감을 얻는 사람이라니.. 너무나 우아하지가 않아서 입 밖에 꺼내고 싶지는 않았지만은 내 머리에도 생각 꼭지가 있는 모양이다. 샤워기 물이 머리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는 순간, 머리 안에 고여있던 생각들도 줄줄이 흘러 나온다.
이건 꽤 당황스러운 일이다. 샤워 물이 쏟아지듯 나와 아래로 다 빠져나가 듯, 이렇게 터져 나오는 생각들도 잡아 놓지 않으면 이내 곧 달아나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저렇게 기억해 놨다가 머리 말리고 앉아서 써놔야지' 몇 차례 시도를 해보았는데..
드라이기를 켜고 들어올리는 순간, 물에 젖은 머리카락과 함께 촉촉히 살아있던 생각들도 공기 속으로 날아가 버렸었다.
도파민을 뿜어내며 가슴을 탁 치던 생각이!
아스라이 증발했을 때의 허무함을 수 차례 경험하다보니.. 나는 나의 기억력이라는 것을 도무지 믿지 못하게 되었다.
화장실 앞에 메모장을 갖다 놓게 된 것은 그 때부터다.
글의 재료가 되는 생각과 영감들이라면 하나라도 놓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참 악착 같기도 하지.
그렇게 수집하는 나의 생각들이 모두 글이 되느냐를 생각해봤을 땐 또 그건 아니었다. 돌아보면 아둥 바둥 잡았던 생각의 조각들이 버려진 적도 많았다.
그리고 모두 날아가 버렸다 믿었던 어떤 생각들은 더 좋은 표현을 입고 뜻하지 않은 글의 한 문장으로 자리를 잡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글에도 인연이 있고, 때가 있는가보다. 내 것이 될 생각은 어떻게든 내 것이 되고 아닌 것은 아닌 거였다.
그러니 내 머리 속을 둥둥 떠다니는 생각들에 대해 조금은 유연함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나는 샤워기를 멈추고 뛰쳐 나와 글 재료를 수집하려는 나의 악착같음도 꽤 마음에 드니, 화장실 앞에서 글씨를 휘갈기며 남기는 메모를 멈출 생각은 없지만 혹여, 그 와중에도 내 손에서 빠져나가 버리는 생각들에 대해서는 미련을 갖지 않기로. 깨끗하게 털어버리기로.
그 생각이 나와 정말 인연이라면, 언젠가 내 글 속의 색 고운 문장들로 내려 앉아 있을테니.
모든 것들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내 가슴 속에 둥둥 떠다니는 모든 꿈들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패기있는 자신감이 넘치던 때.
모두를 다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스치는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하고, 내 앞에 놓여진 모든 길을 걸어야 한다고 믿었던 때.
하지만 억지로 붙잡은 것들은 내 것이 아닐 때가 많았고, 놓쳤다 생각했던 것들이 더 좋은 것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때로는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내 품에 안기는 일들이 있었고, 아무리 노력해도 손가락 사이로 모두 빠져나가버리는 일들도 있었다.
내 것이 아닌 건 아닌 거라는 걸, 몇 번의 크고 아픈 넘어짐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내 자리가 있다는 걸.
삶은 그랬다.
그러니 지금은 모든 걸 다 잡으려 하지도, 마음을 두는 것 조차도 하지 않는다.
안간힘 쓰며 물살을 거스르며까지 모든 것을 안으려 했던 때를 지나 지금은, 그저 물결의 흐름에 올라탄다.
삶이 흐르는대로. 내가 흘러가야하는 곳으로, 가고 싶다.
그렇게 내가 가야할 곳으로 흘러서, 흘러서 가다 보면.
언젠가 삶 속에, 나의 꿈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려 앉아 있겠지.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말자.
그러고보면, 글과 삶은 닮아있다.
쓰는 일과 사는 일은 닮아있다.
* [하날빛의 글 정원]
글로 이끈 삶을, 글로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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