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수고스러운, 사랑하는 일

by 하날빛




글을 쓴다는 건,
매일 반복되는 수고스러운 일을

이토록 사랑하게 되는 것





누구나 자신과 삶을 드러낼 수 있는 시대라고 한다.


사람들이 모이는 플랫폼이 다양해진 만큼 그 안의 삶, 그것을 이야기하는 방식도 각양각색 다채로워진 시대.




그러한 공간으로 기꺼이 뛰어든 이들을 창작자라 부르기로 한 이후,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니 나 역시 늘, 창작자의 삶을 갈구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떠한 형태로든 세상에 던지고자 했던 나의 이야기들이 있었다.



내 이야기에 콘텐츠라는 옷을 입혀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은, 마치 아이를 키우는 것만큼 정성을 쏟게 되는 일이다.


하나하나 그렇게 애정을 쏟아 나의 공간에 쌓는 이야기들은 돈으로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보석만큼이나 나 자신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가 된다.



그러니 창작자의 삶이란, 나의 손으로 빚어진 보석들을 나만의 보석함에 채워가는 여정이다. 못난 것이든, 서툰 것이든, 때가 묻은 것이든 어느 것 하나 빛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이다.






인생길을 굽이굽이 돌고 돌아, 글이 곧 나의 콘텐츠가 되는 '작가'라는 창작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운명처럼.


매일이 행복하면서도, 그럼에도 나의 글을 내 맘에 쏙 들만큼 아름다운 보석으로 다듬어 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창작하는 매일은 고군분투의 현장으로 묵묵히 들어가는 시간들이다.



'사유'라는, 두뇌의 적극적인 행동에서 출력되는 생각 파편들.


쏟아지는 그 조각들을 어떤 언어로 담아 엮아내야 할지의 고민은 고통이기까지 하다.



어떤 단어를 입혀야 더 맛스러운 표현이 될지, 어떤 문장을 이어야 절절히도 흐르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질지.


오래도록 고민하다 보면 문자라는 기호로, 문장이라는 맥락들로 꿰어가는 창작 행위는 답답할 정도로 느릿한 걸음이 되어버릴 때도 많다.





조금 더 쉬울 수는 없을까를 생각해 봄에도..

사실 나는 이 과정이 싫지만은 않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장식장에 놓인 장신구들을 걸쳐보며 무엇이 어울릴까 요리조리 골라보듯.


신중에 신중을 기울이며 언어를 탐색하고 생각 위에 걸쳐보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꽤나 쾌감을 주는 일로 다가온다.



그러니 앞으로도 느린 나의 걸음을 버리는 일은, 나에게 없을 것 같다.


고집스럽게 느린 글쓰기를 추구하며 하나의 글을 완성하기까지 [단어의 고름질]과 [문장의 엮음질]에 충분하고도 깊은 시간을 쏟아낼 것 같다.





주문을 넣고 엔터만 치면 멋들어진 문장을 쏟아내 주는 AI 시대, 어쩌면 가장 비효율적인 일로 생각될지 모른다. 누군가는 AI로 더 멋진 글을 생성해 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창작자로서 글을 쓴다는 것은, 이리도 비효율적인 행동을 매일마다 반복하는 삶을 스스로 택한 것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자존심이지 않을까, 우리의.




내일도 나는 또다시, 오늘 그러했든 이 느린 걸음을 걸어갈 것 같다.


진흙을 파내며 진주를 캐내 듯, 나의 생각에 빛깔을 입혀줄 언어들을 찾아가면서.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듯, 언어의 빛깔을 고르고 매만지며 꿰어가는.


이토록 비효율적인 창작자의 삶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는가 보다.



참으로 수고스럽도록 사랑하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나의 글, 쓰기.







* [하날빛의 글 정원]

글로 이끈 삶을, 글로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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