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연재날이었다.
연재를 시작한 지난 주에 이어 오늘은 2화를 발행하는 날.
매일 꼬박 몰아치듯 내 기억을 거슬러 올라갈 자신이 없어 한 주간의 간격을 두고 발행 일자를 잡아 놓았다.
고작 2화를 쓰는 것인데 아침부터 부담감이 무겁게 마음을 누른다.
오늘 반드시 글 연재를 해야하는 편편찮은 마음이 하나,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파고 들어 나의 언어로 다시 들추어 내야 한다는 까끄름한 감정이 또 하나.
오래도록 나의 주특기였던 미적거리기가 또 발동하기 시작한다.
나는 나를 짓누르고 괴롭히는 것들을 곧잘 회피해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존심이라는 것이 함께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것을 나는 철이 들었다고 표현한다.
철이라는 게 든 이후로는 이상하게 자존심은 책임감이라는 것과 연결이 되었다.
책임을 져야한다. 내가 뱉은 말에, 내가 지키자고 던진 것에 대해 사람은 책임을 져야하는거다. 도망가는 것은 자존심을 해치는 일이다.
그렇게 자존심이라는 것이 스물거리며 올라와 나를 책상 앞에 엉덩이를 붙이도록 끌어다 놓았다.
나의 연재글 [기억의 색깔]을 쓴다는 것은, 먼지처럼 희미해져 있으나 그 무엇보다 지금의 내 삶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기억을 찾아 들어가야하는 일이다.
머리에서는 애써 지웠을 그 조각들을 촘촘히 엮어 낸다는 건, 죽도록 싫어하는 사람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단둘이 독대해야하는 것 만큼이나 괴로운 일일런지도 모른다.
그래서인가, 왜그리도 내 손에는 검은 빛의 기억 밖에는 잡히질 않는걸까. 무겁기까지 하고.
나의 글은 왜이리도 무거우리만큼 진지한걸까.
그런 단어를 일부러 고르는 것은 아닌데.. 마음이 이끌리어 적어내려가는 언어들은 하나같이 내 마음을 축축 늘어뜨리는 것이었다.
그 단어들은 심연 깊은 곳의 무거운 기억에 입혀진 것들이다.
커다란 돌을 단단히 묶어 바닷속으로 던져버리듯, 아픔이라는 커다란 돌덩이와 함께 던졌던 기억들.
사라지지는 않지만 침잠되어 있는 기억들.
완벽한 삶은 없지만, '누군가에는 조금 더 버거운 삶'도 있다.
불공평이 곧 삶이라는 걸 알고 나서부터 나는 그 버거움이라는 것을 느끼고 싶지 않아, 나를 혼곤하게 하는 모든 것들은 기억의 저변으로 보내기를 선택했었다.
희끄무레하게 묵은 기억들을 다시 꺼내려 애면글면하다보니 의도치 않아도 단어들이 묵직해질 수 밖에 없던 건 아니었을까.
몇 번씩이나 멈춰지는 글을 끝 마치기까지 쉽지는 않았던 이유였으리라.
연재글을 발행했다.
미뤄질 뻔한 글.
또 다시 미뤄둘 뻔한 기억을, 써내었다.
몇 번의 숨을 고르며 써내려간 글이었지만, 결론은 써내었다는 것이다.
무겁게 쓰여진 글인데 모두 쓰고 난 이후에 나의 삶이 조금은 이해되기 시작하는 것은 신비로운 일이다.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듯 하다.
다만 그 한 가운데 있을 때에는 보지 못할 뿐인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조금은.
나는 여전히 어지럽고 혼돈스러운 삶의 한 가운데에 있으나..
시간이 지나 이 기억을 쓰고 있을 그 순간에는, 삶의 이 자리에 놓여졌던 이유를 또 다시 이해하고 있으리라.
기억을 애써 파헤친다는 것은, 살을 에는 것 같은 아픔을 마주하면서도.
나에게 주어졌던 삶을 이해하게 되는 가장 소중한 선물같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기억, 가장 선물같은 일.
정말,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