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잃고, 나를 찾다

by 하날빛


잃은 것과
다시 찾은 것에 대한,
이야기




뉘엿거리던 해가 기어이 넘어가고 어둠이 완전히 지배한 시간.


집에서 멀지 않은, 넓게 조성된 공원을 캄캄함이 장악하려던 시간. 그것에 저항이라도 하듯, 빽빽이 들어선 가로등이 강한 백열의 빛을 바닥에 내리꽂는다.


낮 못지않게 밝아진 그곳에는 어린아이들과 그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 공원 주변을 걷거나 밤바람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을밤답게 북적이는 날.


여섯 살배기 꼬마 아가씨의 잡아끔에 못 이겨 이곳으로 나온 나는 벤치에 앉아있던 중이었다.

또래 혹은 차이가 나봤자, 위. 아래 한두 살 정도일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있는 딸아이를 바라보면서.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은 아찔한 공포가 순식간에 밀어닥쳤는데 잠깐 딴 생각을 한다며 다른 곳을 응시하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 눈앞에 아이가 보이지 않는 것.


암만 둘러봐도, 수많은 군중 속에서도 단 번에 알아볼 수 있을 그 익숙한 얼굴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분명 시퍼렇다 못해 허옇게 떠버렸을 거라 확신할 수 있는 그 질린 얼굴을 하고선, 사방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나를 둘러싼 배경은 흑백이 되어 완전히 멈춰버린 채.

아이 이름을 부르는 나와, 공원 구석구석 퍼지는 내 목소리만 남은 듯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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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저기에 가 있는 걸까 의아할 만큼 의외의 곳에서 울며 서 있는 아이를 발견했을 땐, 이게 그간의 두려움을 씻겨 내려주는 안도감인 건지, 다시 만난 기쁨인 건지, 반가움인 건지 뭐라 명명할 수 없는 감정이 뒤범벅되어 아이를 끌어안은 내 심장의 고동 소리는 저 멀리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몇 분도 채 되지 않았을 시간이었건만, 혼이 빠진 채 뛰어다니는 그때만큼은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져 족히 몇 시간은 지난 느낌이었음을.


심장이 멎을 듯한 공포.

타들어갈 듯한 가슴.

땅 밑까지 꺼져 내려갈 듯한 안도감.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것을 다시 찾아낼 때까지 한 날 한 시에 경험한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극과 극의 감정이 마음속을 온통 헤집고는 지나가 버렸다.


그것은 마치, 죽었다가 살아난 기분과 다르지 않았을 거라 감히 생각해 본다.


위태롭게 부들거리며 꺼져가던 불빛에, 다시 새롭게 타오를 생명을 공급받는 것과 같은 일.

모든 생명줄이 끊긴 듯한 찰나에 다시 그 생명을 이어줄 끈이 연결되는 것과 같은 일.


적어도 엄마인 나에게는 그러했던 일이었다.


생(生) 과 사(死)의 경계를 부지불식간에 넘나는 듯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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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을 생각하면 동시에 떠오르는 것이, 이러한 '상실'과 '회복'이 크고 작게 반복되며 흘러가는 '삶'이라는 것이다.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건, 생각하자면 심심찮게 떠올려볼 수 있을 만큼 우리 삶에서 낯선 경험은 아니니까.


아끼는 필기구를 잃어버렸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했던 기억부터.

소중한 인연과의 단절 후 극적으로 이루어진 회복의 기억. 삶과 죽음을 오고 가는 듯한 공포와 환희를 동시에 안겨줬던, 나의 미아 사건까지.


그 무게는 다르다 손쳐도, 다양한 표현을 입고 삶 속에서 거듭거듭 그 존재를 드러내는 것.


때로는 사소한 분실로

때로는 치명적인 상실로

때로는 단절로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것들을 잃고 다시, 되찾는다. 그리고 이 '잃음'과 마침내 이른 '찾음'의 문턱에서 받는 선물이 있으니 바로 '새로움'이다.


잃은 것을 되찾은 순간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나에게 다시 온 그 존재는 이전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


더 애틋하거나, 더 소중하거나, 둘 다이거나.


잃어버렸던 반지를 어디에선가 찾고 나면, 더 이상 그 이전의 반지처럼 다루지 않는 것처럼.

한없이 추락하던 몸이 회복되고 나면, 더 이상 하루하루를 이전의 날들과 같이 허투루 쓰지 않는 것처럼.

죽음 가까이에 갔다 다시 생으로 되돌아오고 나면, 더 이상 그 이전의 나로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그리고, 공원 한복판에서 사라져 버렸던 아이와 다시 만나고 나면,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마음가짐으로 그를 대하게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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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늘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다시 온 그 존재를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써 소홀히도, 경홀히 여김도 하지 않게 된다.


이전에는 몰랐던 의미를 새기는 전환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혹 그 과정이 두려움과 혼란으로 아득한 시간이었다 하더라도.



잃어버린 나,
다시 찾은 나



어쩌면 나는 이것을 말하기 위해 이 모든 이야기를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나를 '잃어'버리고, 나를 다시 '찾은'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두려움과 혼란으로 아득했던 시간을 지나 환희와 기쁨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던.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을, '진짜 나'를 대면하고는 그로 살게 된 그 이야기.


그리고 그것은, '글'로부터 시작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로 살지 않는 나'의 두려움과 공포로부터 나 스스로를 구해내는 일이었다.

아이를 잃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그 숨 막히는 두려움이, 내 삶 밑바닥 언저리에 연기처럼 깔려있었으니까.


나를 잃은 채 산다는 것은 곧 죽음과 다르지 않은 공포였다. 내가 아닌 것으로 살아가는 삶.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삶.


글을 만나지 않았다면.

내가 글을 쓰기로 마음먹지 않았다면.

'글을 써봐' 남편의 그 한 마디가 없었다면.


어쩌면 나는 여전히 나를 잃은 채, '나'를 찾아 외치며 오늘도 헤매었으리라.


내가 아닌 내 모습으로,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는 공원 곳곳 딸아이를 찾아 헤매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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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운명처럼, 나는 글을 찾았고 글은 나를 발견했으며 그렇게 우리는 만나게 되었다.


글을 쓰는 순간 나는 '나'를 만난 기쁨을 넘어, 다시 살아나는 소생의 기쁨을 맛보게 된 것이다.

다시 부여받은 것과 같은 내 삶은, 이전과 같지 않았으며 애틋함과 소중함 모두를 품은 것이 되었다.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삶으로.


글이라는 것은, 내 삶을 새롭게 할 의지를 줄 뿐 아니라 실제 새로운 삶을 선사해 주는 것이었다.


나의 자리를 찾게 해줌으로써.

그 자리에서 내 묵은 눈을 열어줌으로써.

그렇게 나는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나는 왜 살아가야 하는지를 찾게 해줌으로써.

나 자신뿐 아니라, 나를 둘러싼 모든 세계를 새롭게 발견하게 함으로써.


그리고, 마침내 그곳으로 걸어 나아가게 함으로써.


글을 쓰는 매일의 나는, 매일이 다르다.

매일의 숨이 다르고, 매일의 감각이 다르고, 매일의 언어가 다르며 매일의 세계가 다르고.


그러나 이마저도, 만약 나를 잃어버린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순간마다 글로 인해 새로움을 부여받는 이 소생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을까. 아니, 인식하는 것조차 가능했을까 나는 확신할 수 없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자리에서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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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은 늘 우리를 더 깊은 두려움으로 몰아넣지만, 되찾은 순간은 반드시 새로운 삶에 서게 한다는 것을 믿는다.


더욱이 잃어버린 것이 나 자신이라면.

나를 찾은 뒤의 삶은,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감각하는 경이로운 순간들이 될 것이다.


혹 그 과정이 두려움과 혼란으로 아득한 시간이었다 하더라도.



매일 문장 속에서 나는 잃었던 나 자신을 다시 꿰어간다. 언어 속에서 흩어진 나의 조각을 다시 모으며 다시 나로서 사는 기쁨을 누려본다.


글을 쓸 때마다 위태롭게 부들거리며 꺼져가던 불빛에, 다시 새롭게 타오를 생명을 공급받는 것과 같이.

모든 생명줄이 끊긴 듯한 찰나에 다시 그 생명을 이어줄 끈이 연결되는 것과 같이.


글은 나에게, '살아 숨 쉬는 삶'을 살게 해주는 힘임을 확신하면서.


글을 쓴다는 건, 나를 '나'로서 선명히 드러내어 주는 일이다.

매일의 자리에서 '나다운 나'를 찾게 해주는.


잃어버린 나.
다시 찾은 나.

그리고 다시, 사는 기쁨.


나를 잃고 방황하는, 모든 이들에게.

'나 자신'은 반드시,
만나야 할 곳에서 만나게 될 것임을.

마침내 찾은 '나'는
다시 사는 기쁨을,
매 순간 누리게 될 것임을.

그러니
나를 잃고 방황한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길.



* [하날빛의 글 정원]

글로 이끈 삶을, 글로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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