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인연이 오는 것

일생을 만나는 일

by 하날빛

글을 쓰는 건,

외로운 일인데


기꺼이 외로움에

나를 던지고 나면,


그 여느 때보다

외롭지 않은 나를 보게 된다.


글 쓰는 이들을

이렇게나 가까이에서

마주하게 된다는 점에서.



'글을 쓰기 잘했다'

생각이 들 때 중 하나는.

글이 남겨진 공간에서,

예상치 못하게 만나는 인연들이다.


서로의 모든 껍데기를

벗어던진 곳에서 만나게 되는,

우연인 듯 만난 인연.


그리고 때때로,

소중한 보석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인연도 있다.


더욱 빛나도록,

가꿔보고 싶은.




글을 쓰다 보니 필연적으로 나 자신과 독대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어떤 순간에는 내 평생 처음 맞닥뜨려보는 거라 할 수 있는, '외로움'이라는 것이 불쑥 고개를 내밀고는 한다.

태생이 '혼자'를 좋아하는 사람인 나에게는 어쩐지 낯선 감정.


그러나 생각해 보면, 글 쓸 때의 외로움은 타인의 부재로 인한 그것과는 같지 않다.


적어도 나에게 외로움이란, 홀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데서 오는 것이라기보다, 나 자신의 뿌리와 밑바닥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오는 때가 많다.


굳이 들추어내지 않아도 될 깊은 내면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그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는 것일 뿐 아니라 쓰고 텁텁한, 때로는 구역질이 날 정도의 역한 물을 삼키는 것과 같은, 전혀 내키지 않는 일일 때도 있기 때문이다.


심연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나의 본성을 마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주하게 됨직한, 내 그림자를 보게 되는 것은 달갑지 않은 일이며. 그때마다 나는 평생을 몰라도 되었을 '외로움'이라는 걸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므로.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동굴 속에서, 누구도 대신 밝혀주지 못하는 어둠을 홀로 밝혀야만 하는 사람이 된 것처럼.



글쓰기는 나의 껍데기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진지하고도 가치 있는 심오의 행위이면서.

어쩌면, 껍데기 층 안으로 한 꺼풀씩 들어갈 때마다 점점 더 외로운 존재가 되어가는 것을 감당해야 하는 고투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 속에서도, 글 쓰는 이들이 계속해서 몸부림을 치며 외로움에 기꺼이 나를 내던질 수 있게 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으니.


그중,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력한 힘은 바로 '인연'이다.

글의 여정에서 만나는, 길고 짧은 다양한 인연들.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낼 수밖에 없는, 운명과 같이 글 앞에 선 이들을 만나게 된다.

자연스러운 일이면서 한 편으로는, 신비하고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는.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의 일생이 함께 오는 것이기에,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라 고백했던 여느 시인의 시에서처럼 글 쓰는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그의 글뿐 아니라 글에 담긴 뿌리 깊은 그의 사유, 긴 시간 끌고 온 그의 일생 모두를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래 알고 지낸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받아주는 친절한 벗을 만난 것처럼.


글로 만난 인연이란, 그렇게 아무런 거리낌도, 이리저리 재고 따지고 하게 되는 얄팍한 셈도 없게 된다.

득과 실을 따지는 이해타산도, 어떻게 하면 더 잘 보일까 하는 꾸밈이나 가식도 없게 된다.


외로움과 외로움이 만난 곳에서는, 그런 것이 없는 것이다.

서로의 모든 껍데기를 벗어던진 곳에서 만나게 되는, 우연인 듯 만난 인연에게는.



그러니 또 한 번 찾아올 인연에 대한 기대가 멈추지 않는 한, 어찌 글쓰기에 꾀를 낼 수 있을까.


외로움이라는 바다 한가운데 빠져 허우적거리는 때가 있을지언정, 어찌 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있으랴.



그 바다에는, 더듬거리며 물결을 헤집어 나아가는 서로의 손이 맞닿는 일이 있을 것이며.

버거운 파도 속에서 함께 숨을 고르는 순간이 있을 것이며.

휘청이는 몸을 서로의 단단한 어깨로 지탱해 주는 일도 있을 것이며.

홀로는 닿을 수 없는 깊음 속에 들어가 보는 일이 일어날 것이며.

서로의 차가운 외로움을 밀어내 주는 온기에 기대 보는 일도 있을 것이기에.


기꺼이, 그 외로움의 바다에 나를 던져볼 수 있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건, 외로운 일인데 기꺼이 외로움에 나를 던지고 나면, 그 여느 때보다 외롭지 않은 나를 보게 된다.


글 쓰는 이들을 이렇게나 가까이에서 마주하게 된다는 점에서.

가장 깊은 외로움이 무엇인지를 아는 이들과, 같은 길에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나의 꿈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가장 밝은 등대빛이 되어주고 있으리라.


외로움의 바다에서도 꿈으로 가는 길을 잃지 않도록 깊은 곳을 밝혀주는,


글로 다가 인연.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그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방문객>






* [하날빛의 글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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