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기원에 관하여

by 하날빛
나의 글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눈물로 차 있는 삶을 사는 이는, 필연적으로 글을 만나게 된다.

쏟아내지 않으면 삶의 끝까지 차오른 눈물이란, 더 이상 걸음을 진전시킬 수 없을 것만 같은 짙은 밀도의 무거움이다.


누군가에게는, 글을 쓴다는 것이 산다는 것과 직결된 일인 것이다.


아마도 나도, 그와 같은 이유로.

떠다니는 기억과 사유의 끄트머리를 잡아 글자로 입히는 작업을 시작했으리라.


나의 글은 그래서인지, 그 기원이 잘 생각나지는 않는다.


언제,

어디에서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삼아보자 생각했었는지 어렴풋함으로조차 남아 있지 않다.


그저 아주 오래전이었다는 것 밖에는.


그리고 그 꿈은 대부분의 꿈처럼 마음속에 설레임으로 부풀어 오르는 것이라기보다, 때가 되면 자연스레 그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예정된 길에 대한 인정이었다는 것 밖에는.





꿈이 생각만으로 그쳤던 것은, 그저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했고, 돈을 벌었고 사업을 시도했고.

많은 것들을 이루고, 때로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과정 속에서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그곳에 대해 잊어본 적은 없다.


다만 언제 돌아가야 하는 건지, 돌아갈 수는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을 뿐.



마흔 하고도 몇 해가 조금 더 지난, 여물듯 여물 듯한 나이에 닿은 올해.


친정아버지의 몸에 갑자기 들이닥친 뇌졸중이라는 병은, 어린 시절에서부터 얽히고설킨 나의 모든 기억들을 쥐고 흔들며. 온통 울음으로 차 있는 내 삶을 건드는 것이었다.


이토록 무거워진 삶은 도대체 어떻게 비워내야 하는 것인가.


쏟아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어떤 덩어리들이 소용돌이치듯 마음을 휘젓는 가운데 선명히 떠오르는 것이 있으니.


글,

역시나 글이었다.



글을, 쓰자.

어떤 모양이든. 어떤 것이든.


꼬깃꼬깃 접어 놓았던, 나에게는 어쩌면 정말 예정된 운명이었을 그 꿈을 꺼내어 보는 것이다.


통째로 사라져 버린, 그러나 나를 이루고 있을 어떤 기억들에 닿기 위해.


그렇게 풀어지지 않는 삶의 수수께끼를 풀어 내보기 위해.

그리고 삶에서 어김없이, 어둠을 뚫고 나왔던 빛을 이야기하기 위해.

그래서 나의, 우리의 삶은 결코 초라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살만한 가치가 충만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 기원을 알 수 없는 나의 글쓰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여전히 품은 채로.





8월 초, 신인문학상 공모전이 있었다.


나의 글이 읽힐 수 있는 글인지 알고 싶었고, 스스로에게도 확신이 필요했던 찰나.


응모한 글은 수필, 총 2편이었다.


하나는, 나의 기억의 가장 밑뿌리를 이루고 있을 아빠에 대해.

또 하나는, 내 삶 그 자체가 된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충실하고도 진실하게 써 내려간 담담한 나의 언어들.


8월, 내 글은 그렇게 신인문학상에 당선이 되었다.


작가.

수필가.

당당히 나의 이름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작가라니.

작가, 하날빛이라니.


보다 더, 나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고.

보다 더, 글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이 길을 가라고.

내 온 마음과 시간, 삶을 아끼지 말고 글을 빚어가는 데에 쏟아내어도 된다고. 괜찮다고.


누군가에게 다독임과 용기를 건네받은 것과 같은 일이다.



작가로의 첫 발걸음을 떼었다.


글로 이끈 삶을 쓰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 나는, 어떤 글을 쓰게 될지 여전히 모르겠다.


여느 작가의 말처럼, 글을 쓰는 것이란 나에게도 지도 없이 떠나는 여행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삶이 이끄는 대로 써 내려갈 뿐.


다만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이 있다면.

나는 평생을 글 짓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 이것을 꿈꾸게 되었는지, 그 기원을 알 수는 없지만.

어쩌면 내가 울음을 터뜨리며 세상에 처음, 고개를 내민 그날부터 이미 예정되어 있는 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글로 이끌 삶을, 쓰는 사람이니까.


결국 나는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온 것이고.


나는,

작가다.


글로 이끈 삶을 쓰는,

그 이름도 마음에 드는, 하날빛이라는 작가.


매일을,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리라는 것을 이미도 알고 있었던.


글을, 쓰는 사람.




* [하날빛의 글 정원]

글로 이끈 삶을, 글로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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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