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충분한, 글의 쓸모

마음을 휘젓는 일에 대해

by 하날빛


나의 글은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가장 사랑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부지런히 내 마음을

살피며 나온 것이

나의 글이기에


내 글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 마음을, 나를

사랑해 주는 것과 같은 일인 것.


그러니 누군가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여,

그 글이 쓸모없거나

버려질 것은 아닌 것이다.




초등학생 몇 학년쯤이었던가, 용해에 관한 실험이라고 설탕이고 소금이고 어떤 알맹이들을 물에 넣고 휘휘 저었던 것이 기억난다.


알코올과 약품이 뒤엉킨 냄새로 진동하는 과학실.

투명한 비커에 물을 반쯤 채워 넣고는 유리 막대로 휘휘 저으면, 그 작다고도 표현할 수도 없는 미세한 알갱이들이 물속으로 완전히 그 자취를 감추고는 했다.


하얀 알갱이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것으로 녹아들어 가고 녹아들어 가다가..

더 이상 물이 이 작은 것들을 받아들일 수는 없는 상태가 되면, 가여운 이 알맹이들은 그대로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철퍼덕, 철퍼덕 위로 쌓이는 다른 알맹이들과 물과 어울릴 수 없는 운명을 함께 해야 했다.


이때가 되면 우리의 휘젓기도 중단되면서 입자들은 비커 바닥을 희뿌옇게 차지한 채 물과 기름이 분리되는 것 마냥.


물속에 있어도 물이 아닌, 이방의 존재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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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중,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녹여보겠다며 오기를 부리는 나 같은 아이는 꼭 한 두 명이 있다. 남은 자가 되어버린 알갱이들을 참지 못하는, 나 같은 아이.


아래에서부터 다시 천천히 낟알들을 깨우듯 동그란 원을 그리며 살살살 젓기를 시작하면.

동시에, 무겁게 몸을 가라앉히고 있었던 그 하얀 알갱이들은 물을 딛고 위로, 위로 올라서려는 움직임을 시작한다.


침전해있던 것들이 휘저어지는 원을 따라, 빙글빙글 떠오르는 모습.

사방으로 흩어지면서도 일정한 원을 그리며 솟아오르는 이 모양이 예쁘게 느껴지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여 한참을 그렇게 빙빙. 막대를 돌려대고 있던 나였다.



이미 포화 상태가 되어버린 물속에서는, 그 온도를 올리지 않으면 더 이상 하얀 입자들이 용해되지 못한 채 빙빙 돌아야 했지만.

다 녹이겠다는 내 마음은 이내 곧 바뀌어서 뜨거운 물도 붓지 않고, 빙글빙글 비커 속에서 내려갔다 올라갔다 아름답기까지 한 알갱이들의 리듬을 한참 시간 즐기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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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바라보았던 모습.


깊숙이 침전해있던 것들이 휘저어지는 원을 따라 빙글빙글 떠오르는.

아주 깊숙한 밑바닥에 닿은 유리 막대가 하나의 알맹이도 남기지 않고 모든 것들을 훑으며 끄집어 올리는 모습.

아래 침잠되어 있었을 것들이 유리 막대로 인해 마침내 위로 떠오르게 되는 모습.

무언가에 의해 건드려짐으로써 오래 묻혀있던 희미한 것들이 마침내 떠오르는, 모습.



이것은, 무언가와 닮아있다. 내가 하고 있는 무언가와.


그래서 그런지 내가 그 무엇인가를 할 때마다 이 장면이 늘 따라다니듯 떠오른다.



글,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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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문자라는 새로운 형태로 옮겨지면서, 진짜 의미를 입고 비로소 눈앞에 나타난다.


글을 쓴다는 건 그런 작업이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크기의 머리 구석구석, 가라앉아 있는 어떤 기억들과 사유를 의식의 막대기로 건드리는 일.

그러고는 저에 맞는 언어를 끼우고 배열하여 눈앞에 보이는 형태로 선명하게 박제하는 일.


투명한 유리병의 물속에 녹아들지 못한 채 가라앉아있던 알맹이들을, 휘휘 젓는 막대기의 끝에 걸려들게 함으로써 떠오르게 하는 것처럼.



[기억] 또는 [감정], 또는 [생각]이라는 것으로 또렷하게 녹아들지 못한 채,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은 알맹이들이 있다.


의식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버린 것들.

그저 마음의 밑바닥 어딘가에 희뿌옇게 가라앉아서 내 안에 있으면서도 내 것이 아닌, 이방의 존재가 되어버린 생각, 감정, 또는 기억 같은 것들.


글쓰기는, 그것들을 건드린다.


아주 깊은 곳의 낟알들부터 하나씩 건드리면서, 내 머릿속을, 내 마음속을 휘휘 휘저어간다.


어떤 기억은 오랜 세월에 묻혀 침잠되어 있다가.

어떤 감정은 억눌림 당한 채 외면되어 숨어있다가.

어떤 생각은 알아차려지지 못해 형태를 잃고 침몰되어 있다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의식을 타고는, 흩뿌려지듯 하면서도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떠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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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깊숙한 밑바닥에 닿은 의식의 막대기가, 가라앉아있던 모든 기억과 감정, 생각의 알맹이들을 훑으며 끄집어 올린다.


영영히 그 아래 침잠되어 있었을 것들이, 글을 쓰겠다는 의도로 인해 마침내 위로 떠오르게 된다.


의도와 의식으로 의해 건드려짐으로써 오래 묻혀있던 희미한 것들은 그렇게, 마침내 떠오르게 된다.


탁하고 희미하게 떠오른 것들.

낚아채어 닦고 선명히 하는 것은 이제 나의 몫이자, 차례이다.


내 속에 녹아들지 못하고 침잠되어 있던 것들을 살뜰히 살펴주고 매만져주는 것.

그러면 그 온기로 인해 마침내 나로 녹아들기 시작하는데, 글을 쓴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해내는 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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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글은, 독자의 것이면서 동시에 순전히 나 홀로의 것인 게 아닐까를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에 닿기 위한 것이면서, 나 자신에게 온전히 닿기 위한 것인.

누군가 읽는 순간 그 이의 것이 되면서, 그전에 이미 온전히 나의 것인 것.


내 깊은 구석구석에 닿기 위해 부지런히도 휘저으며 떠올린 것이기에.

영영히 올라오지 못했을 것들이 하나씩 건드려지며 마침내 부유하게 되는 과정. 그 자체가 이미 나를 위한 것이기에.


그래서 글이라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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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건 나 자신을 만난 것이며,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비로소 나를 나로서 녹여내었다는 의미이다.

부지런히 마음을 휘저으며, 묻혀진 알갱이들을 꺼내어 올리기를 시도함으로써.


주목을 받은 글도, 그렇지 못하여 버림받은 것과 같은 글도.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글은 그런 것이다.


그러니 나의 글은,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가장 사랑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부지런히 내 마음을 살피며 나온 것이 나의 글이기에, 내 글을 사랑한다는 건 내 마음을, 나를 사랑해 주는 것과 같은 일.


누군가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여, 그 글이 쓸모없거나 버려질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빙글빙글 내 속에서 내려갔다 올라갔다, 사유의 알갱이들이 만드는 아름답기까지 한 리듬을 한참 시간 즐긴 것만으로도.


내 글쓰기의 쓸모는 충분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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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그리고 내일도 나는.


나의 글을, 나 자신을 가장 먼저, 그리고 끝까지 사랑하는 일을 부지런히 하며 멈추지 않을 것이다. 쉬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의 밑바닥을 천천히 휘저으면서.


이방의 존재였던 것들이 떠올라 올 때마다, 저에 맞는 언어를 끼우고 배열하여 눈앞에 보이는 형태로 선명히 박제하는 일을 쉼 없이 해내면서.


나의 글을, 쓰면서.



* [하날빛의 글 정원]

글로 이끈 삶을, 글로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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