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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계열死] 40대 희망퇴직이 미치는 사내영향

단 7%에도 허락되지 않는 직장인의 권리

by 간우재


종노릇도 대감집에서 하라는 말이 있다.

정말 그럴까? 나는 대기업 계열사에서 수많은 40대 희망퇴직자를 마주하며 결론 내렸다. 대감집에서도 종놈은 종놈이다.

현대인들이 대감집같은 커다란 한국 전통 가옥에서 일하는 모습, 흑백, 팝아트 스타일.png


대감집에서 종노릇을 하자는 이야기는 어차피 노비처럼 일만 할 것이라면, 이왕에 좋은 옷 따뜻한 방바닥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되어야한다는 이야기다. 언뜻 자조적이고 단순해보이는 이 말에 숨겨져 있는 의미는 크다고 생각한다. 직장의 본질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의 의지대로 굴러가지 않을지언정 하루를 살아내기 위한 필수적인 것들을 제공해주는 곳. 대감집이 숙식을 제공했다면 단지 지금의 회사는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돈을 제공할 뿐이다.


다른 나라도 그런지 모르겠다만, 한국에선 유난히 이 '취업'마저 경쟁으로 느껴진다. '스파르타 부트캠프' '취업멘토' 등 각종 허울좋은 이름으로 학원화 된 취업 사관학교의 최종목적은 무엇일까? 바로 대기업. 은행. 속해있는 대감집의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욱 뼈저리게 느껴진다.


요즘 현정이, 뭐해?

걔 삼성 취업했잖아!


대감집 이름만으로 증빙되는 안부와 삶의 질. 앞서 좋은 회사에 취업하려는 시도들이 우습다며 빙빙 돌려 조롱했지만, 나 또한 그 중요성에 동감했다. 또는 뭔가 다르리라 생각했다. 탄탄한 복지, 어느정도 보장된 연봉, 그에 걸맞는 동료들, 체계 잡힌 업무, 보장된 정년. 흔히들 기대하는 것 그대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감집에서 해도 종은 종이다'. 나는 앞으로 천천히 후술할, 조직의 사람들이 왜그렇게 배타적이고 무례했는지를 고민하다가 이 회사 자체가 성장의 '분홍빛' 보다는 '회색빛'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당신은 특별관리 TF입니다


입사를 해 조직도를 천천히 살펴보니 유난히도 눈에 띄는 조직이 있었다. '특별이익 TF' 무언가 필요성도 존재 의의도 그 조직명의 뜻도 모든것이 모호했던 조직. 회사마다 기능과 조직을 구별하는 방법은 다르니 무슨 의미가 있겠거니, 싶었지만 입사 후 3개월까지도 단 한번도 마주할 기회가 없었다. 회사는 겨우 2층 정도를 사용하는 크기였기에 도통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의아했다.


식사시간 넌지시 물었다.


특별이익 TF는 어떤 조직이에요?

아...좀 복잡한데, 뵐 일 없을거에요.

두루뭉술한 대답까지도.



A company employee crying at a dinner party, with colleagues comforting him, in a simple and powerful pop art style, black and white..png

그리고는 어느 날. 옆팀의 과장이 회사 공공비품 사용 관련으로 징계를 받아 그 특별이익 TF에 들어갔다는 공지가 떴을 때, 많은 사람들이 탄식을 내뱉었다. 점심시간이면 비밀이 없어지는 이 조직에서 혀를 차는 소리와 안되었지 참, 이라는 말은 더더욱이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는 그 과장은 회식자리에서 엉엉 울었다는 소식까지 듣고 나니.


알고보니 그 조직은 회사에 오랜시간 근속했지만, 특장점을 갖고 있지 않거나 오랜시간 저성과자로 취급되어 지속적으로 팀을 옮기는 '만년 대리' '만년 과장'들이 속해있는 팀이라고 했다. 그제야 이해가 갔다. 말도 안되는 매출 목표가 잡혀있었던 것도, 그 목표 대비 한참 저조한 이익이 매달 집계가 되던것도, 옆팀의 징계 받은 과장이 한참을 울었던 것도. 퇴직을 위한 일종의 '순서'로 해당 팀이 존재했고 매년 해당 팀에서 일부는 계약직으로 전환되거나 희망퇴직을 받았다.


회사라는 이익집단에서 저성과자를 안고가는 것은 분명한 리스크다. 사람으로 치자면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습관을 끌고가는 것과 비슷하려나? 또는 친숙한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생각하자면, 도저히 손님도 오지 않는 오지 산골에 위치한 점포가 이익은 나지도 않는데 운영비만 소모하는 것에 가깝겠다.


그러나 마음에 걸렸던 점은 그들 모두가 60대 정년퇴직은 커녕 40대에서 50대 사이의 인원들이었다는 점이자 단순한 '리스크'가 아닌 '사람' 이었다는 점이다. 회사가 특정 사업에 진출하려는데 해당 분야에서 철수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사람, 이전 공장의 관리자였지만 이제는 관리가 필요한 인원이 없어 직무가 뜬 사람, 정치질에 밀려 더이상 진급을 원하지 않는 사람...그들이 정말 '저성과자'라는 명칭 하나로 정리대상이 될 수 있을까? 무리한 사업 범위의 확장과 축소로 인해 발디딜 팀이 없어진 것도, 사내 문화가 썩어 개인이 외면하고자 마음먹은 것도 모두 대감집의 '종놈'이 책임져야하는 일일까.


A 40-year-old man resigning from his job with his head down, while others are looking away, in black and white pop art style with clear objects..png


회사가 저성과자를 분류해 차근차근 퇴직의 수순을 밟으려하는 업무 방식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특별이익 TF를 마주하는 이 대기업 계열사의 사람들은 외면과 안타까움, 그럼에도 무력감을 느껴했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들어온 이 곳에서도 고용의 안정성은 단 40대에 박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다. 하지만 본인들이 나서 할 수 있는 것은 없기에 외면한다. 그들이 특별히 모자란 이들이 아닌, 나와 다를 바 없는 평범성의 범주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안타깝다. 피하고 싶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느낀다. 성과를 내고 인정받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후술할 문제이지만, 이토록 오래 지속된 거대한 조직에서는 정치마저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은 애써서 인정받고 발버둥치기보단 '아직은 저성과자가 아닌, 희망퇴직의 대상이 아닌' 지금의 상태에서 머무르고 튀지 않기를 택하더라. 말도 안되는 억 단위의 매출목표에 몇십만원도 채우기 어려워 버둥이는 그들을 보며 느끼는 무력감을 본인들도 겪고 싶지 않다는 마음때문이겠다. '동료보다는 나의 삶을' '눈에 보이는, 속한 조직의 불안정한 고용 안정성을 외면하며' '워라밸이라는 장점에 기대어 위안삼고' '부정적인 감정을 멀리하고자 회사에서의 나를 인간적인 나와 분리한다'.


그들이 자신을 지키는 방식은 회사가 저성과자를 처리하는 방식과는 마찬가지로, 정당성과는 별개로 차근차근 부정적인 사내 분위기를 만들었다. 깊어진 개인주의. 업무의 유기성보다는 개인의 업무 종료를 목표로 하기에 점점 비효율화되는 업무 프로세스. 사업부서와 조직간의 갈등. 이 모든 것이 악순환처럼 굴렀다.




언뜻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비쳤을 때 속한 팀의 팀장은 대답했다.


"우재씨 월급보다 두배는 받을걸? 그런데 일은 훨씬 안하니, 그건 부당하다고 생각되지 않아?"


처음 비정하게 들렸던 그 말은 곱씹을수록 슬퍼졌다. 종놈이란 모름지기 일을 못하면 존재가치가 없어지는 것이라 들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속해있는 이 곳은 사회고 나와 당신은 사람이다. 조직도 사회요, 회사도 나라도 사회다. 세금을 내고 생산활동을 해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모든 종놈들의 행동은 어찌보면 종놈이 '사람의 삶'을 살기에 보장받고자 하는 행동이다. 그럼에도 이제는 사회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과 다시 생산활동에 투입될 재활마저 사치라고 생각하니 앞으로 20년은 더 지속할 종놈의 삶이 막막해졌다.


이름만 말하면 알법한 이정도 대감집인 '대기업 계열사'에서도 한번 저성과자로 낙인당한 사람에 대한 안전망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나의 직업이 미래엔 존재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퇴색될 나의 젊음을 대체한 인력이 쏟아진다면? 회사가 급작스럽게 사업을 축소하거나 인원을 대폭 줄인다면. 조직에 속하고자 노력한 개인의 노력은, 결국 그럼에도 노동자라는 이유 하나로 무시되도 괜찮은걸까.


철저히 노동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일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허나 기업의 관점을 고려해도 썩 좋지는 않아보였다. 저성과자를 대놓고 낙인찍고 희망퇴직자를 받는다며 공지를 올리는 행동은 장기적인 구성원의 성장이나 사내 분위기에도 악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생생한 동력이나 함께 할 수 있다는 믿음보다는 '나'를 가장 중요시했기에.


한국의 직장인 비율은 2024년 통계청에 따르면 약 68.7%라고 한다. 100명중 70명은 직장인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중 단 10%인 7명만이 대기업에 종사한다고 한다. 100명 중 7명, 단 7%도 종이 아닌 사람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현시대. 어쩌면 내가 회색빛이라고 생각했던 건 비단 속해있는 대기업 계열사 뿐이 아닌 내가 속한 이 사회라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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