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었더라면 너는 나를 / 오진주
나에게는 직업도 돈도 그 무엇도 없었고
아는 남자라고는 당신 밖에 없었을 때였어요.
학원에서 보조강사로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죠.
아이들은 내 손목에 찍힌 자국을 보고는
신기한 듯 쳐다보기도
무섭다는 식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었어요.
있으나 없으나 나는 나인데.
2018년 2월의 어느 겨울이었어요.
아프나요? 혹시 마취크림은 바르나요?
그런거 없어요.
그는 무표정하게 내 얼굴을 슬쩍보더니
다시 내 팔목으로 시선을 돌렸어요.
따끔할 수는 있어요.
그제서야 조급했던 내 목소리가
조금은 안정을 찾았던 것 같아요.
그 날 이후로 노르스름하면서도
핏줄이 비치는
아무것도 없었던 내 팔목에
검은 날개가 내려앉았어요.
왜 타투 한 거에요?
나는 더 이상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요.
이 말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내 얼굴 위에 있는 흉터를 보고는
아무 말 하지 않던 사람들이
내 손목을 볼 때는 서슴지않고 물어봤어요.
당신은 내 검은 날개를 보고 후회하지 않느냐고
몇 번이나 물어봤었지요.
있으나 없으나 나는 나인데.
후회를 해도 안해도 나는 나인데.
새카만 날개가 어느새 푸르스름해졌고
그동안 내 팔목을 파고든 고통보다
더 아픈 날들이 지나갔어요.
내 옆에 있던 당신은 없어져 버렸고
나는 영원히 구하지 못할 것 같았던 직장을 구했고
직장만 구하면 바랄게 없었던 마음이 점점
바뀌어져 가네요.
결재를 받으러 서류 뭉치를 대표님 앞에 내밀 때
보이는 나의 손목 속 날개를 보고도
대표님은 못본척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어요.
당신은 회사생활 할 때, 상견례 자리가 있을 때
이런 모습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봤었고
그럴 때마다 내 날개가 초라해져 갔던 것 같은데
만약 없었더라도 당신은 나에게 그런 식의
얘기를 하지 않았을까요?
문득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