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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주 Oct 16. 2020

단편소설  : 만족하는 삶 (9) 완결

잃어버린 꿈에 대하여

“...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오늘도 악몽을 꾸었다. 나는 눈을 뜨자마자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출근을 위해 서두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 그림을 꼭 봐야 했다. 지금 당장 그 곳으로 가야 했다.      

 나는 집 문밖에서부터 쉬지 않고 뛰었다. 세찬 숨이 목구멍까지 올라 와 입 안 가득 비린 냄새가 맴돌았다. 종아리가 벌써부터 저려왔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빨리 도착하지 않으면, 빨리 보지 않으면 나는 앞으로 영영 그 누구에게서도 벗어날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지하철 계단 입구에 이르자마자 숨 한 번 고를 새 없이 미친 듯이 뛰어 내려갔다. 마지막 계단만 밟고 내려가면 될 터였다. 그래 저 마지막 계단. 저 계단만 내려가면.     


“아…….”


 마지막 계단을 밟고 내려간 다음에 펼쳐진 풍경은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었다. 어제와 다를 바 없이 그리고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역 안은 텅 비어있었다. 당연한 것이었다. 어제도 보았으니 이럴 것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또 다시 나타나 주길 바랐다. 그 때처럼 아무 예고도 없이 그렇게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지듯 나타나 있기를. 그러나 그것은 앞으로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몇 번이고 텅 비어있는 역 안을 두리번거렸다. 한참을 두리번거리고 나 서야 역 안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함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나또한 저들처럼 가야 할 곳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지금 나의 행동은 그저 무의미한 것이었다. 더 이상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나는 서둘러 지하철 개찰구로 뛰어가 카드를 찍고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철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나는 빈 의자를 찾아서 그리로 가 앉았다. 지하철이 오기 전까지의 시간을 죽이기 위함이었다.  갈 곳 잃은 시선을 두리번거리다 내 옆 자리에 누군가가 일다 두고 간 신문이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신문은 사회면에 펼쳐져 있었다. 신문 속에는 어떤 기사의 헤드라인이 굵직하게 쓰여져 있었다.


‘의사로 보낸 12년보다 공무원 생활 4년이 더 좋더라. -대한민국에 ’편한 직업‘ 더 이상 없다.’     


맞다. 이만큼 편한 직업도 없다. 의사도 이런 말을 하는 판국에 나는 내 삶에 불평 따윈 내뱉어서는 안 되었다. 나는 지금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참으로 쓸데없이. 


 지하철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잠시 후 지하철이 도착한다는 안내 음이 흘러 나왔다. 나는 신문 속 헤드라인에서 눈을 돌려 텅 빈 지하철 선로를 빤히 쳐다보았다. 빨리 지하철이 도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도착한다는 안내 음과는 달리 지하철은 빨리 오지 않는 듯했다. 제발. 제발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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