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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크로치 Dec 06. 2022

텝스, 그 끝은 어디인가

'최신' 석사과정 졸업생의 기적에 가까운 공인 영어시험 탈출기 



아무리 발버둥 쳐도 되지 않으면, 불가능인가?



대학원 졸업요건이었던 텝스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아 여러 번 보기를 몇 달간 해왔을 때 아이패드에 적었던 글이다. 아마 지금으로부터 반년도 더 된 시점이었을까? 어쩌면 반년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이야 목표한 텝스 성적을 받아내어 무사히 졸업을 하지만, 그 당시에는 텝스 때문에 1년 가까이를 시달리면서 우울증 아닌 우울증도 겪었어야 했다. 


마음이 착잡했던 날이 있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도 흐르지 않고 눈가에 고이는 그런 날. 

말로 이루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나만이 온 세상에서 하나뿐인 바보가 되어버린 것 같은 그런 날.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던 날. 

나의 시간만 멈추어버린 듯했던 날. 


오늘이 그랬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퇴근 버스에서 마치 암흑 속의 터널을 끊임없이 걸어가고 있는 느낌이 들어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누군가가 이 무심하고도 답답한 감정을 깨 주면 좋으련만. 아니, 무언가가 나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었으면 좋겠건만, 찾으려 해도 찾아질 수 없다. 


이 여정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나에게 자신감이라는 것이 붙어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는 지금 이 순간이다. 머리로는 여정의 끝이 곧 다가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지금의 나는 너무나도 지쳐있나 보다. 텝스에 투자하는 시간과 텝스로 인해 마음이 늘어지고 무거웠던 순간들을 떠올리니 어서 끝났으면 하고 바라는데, 시험은 복불복이니 그에 따른 불안감도 적지 않은 것 같다. 희망차게, 긍정적이게, 힘차게 그리고 씩씩하게 이겨내 보려고 하지만, 불안이 나의 주요한 감정인 것을 차마 부인할 수가 없다. 지금은 피곤해서 그런 것이겠지. 


바라고 또 바라다보면, 간절히 기도하다 보면, 언젠가는 꾸준한 흐름에 균열이 가고 변화가 찾아오게 되겠지?

 

내가 무언가를 행하고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한, 분명 그럴 거야. 괜찮아. 

그러니 여기서 슬퍼하지도 좌절하지도 불안감에만 휩싸여있지도 마. 

인생이라는 것은, 꼭 그렇게 내가 생각한 대로, 나의 생각만으로 흘러가지는 않으니까. 

내 생각대로 흘러가면 내가 신이야? 신이면 왜 여기서 인간의 나약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앉아있겠어?

그러니 단정 짓는 사고는 그만하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인간이라는 존재로 살면서 무수한 변수를 마주하는 재미를 즐기자고. 


인간이니까 괜찮고, 나약하니까 괜찮고, 실수할 수 있으니까 괜찮아. 

두려움을 떨치고 업그레이드하자.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새로움을 장착하고 변화를 몸소 맞이하자.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이 있잖아. 

하고 싶은 거 하려는 건 틀린 게 아니야. 즐거움을 찾는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니까 말이지. 


두려움을 어떻게 이겨내면 좋을까? 

완벽주의에 안정추구형인 내가 말이지. 무엇을 통해 이겨낼 수 있을까?



인생의 맛처럼 쓴 아메리카노를 사서 기숙사 근처 공원에서 산책을 자주 했던 4월



1년 넘게 텝스를 준비하면서 '너무 어려운데 이게 될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운이 좋으면 원하는 성적은 달성할 것 같은데 운이 찾아오려나 모르겠고, 또 아무리 봐도 내 영어실력으로는 난이도 높은 텝스 어휘를 모두 커버할 수 없었다. 나 같은 완벽주의는 텝스에 출제될 모든 어휘를 다 공부하기 전까지는 자신감을 탑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감이 없었고, 없는 자신감은 일 년 반의 시간 동안 대략 10회가 넘는 텝스를 보며 다져진 익숙함과 내공으로 조금 메꾸었던 것 같다. 늘 불안과 부담에 눌린 주말을 보낸 지, 수 차례였다. 



징크스 따위는 이미 오래전부터 키우지 않았는데



시험을 하루 앞둔 어느 날은 내가 생각했던 잠옷을 입지 못해(샤워 횟수에 따라 로테이션되는 잠옷이 다르기 때문에) 시험을 망치게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사소한 것에 시험의 당락을 가르는 의미를 부여하게 되다니. 이렇게 예민했나 싶었지만, 예민하지 않은 내가 아닌 것을 알기에. 


그러나 시험과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사소한 것들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그것이 얼마나 불필요한 것인지 알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알아채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사소한 그것들에 시험의 향방을 의지함으로써 혹시나 모를 나의 실패의 원인을 여기에 두고 싶은 것이겠지만.


나는 나를 알지만, 나를 안다고 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의지가 마구 샘솟는 것은 아니다. 

나 스스로가 미약함을 알기 때문에 미약한 나 자신은 변화로 나아가길 주저하는 것이다. 


방금 전에는 샤워를 마치고 생각했던 잠옷의 순서가 다가와서 웃음을 지으며 입었다. 모레 있을 시험이 좋은 일이 있으려나 싶어서. 다른 날에는 그냥 순간의 감정이 기쁘면 시험을 잘 볼 것만 같고, 기분이 별로면 시험을 못 볼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모의고사를 잘 보면 자신감이 생기는 동시에 모의고사를 보는 지금 이때에만 운이 좋았던 게 아니었을까 하고 다시 불안해진다. 그렇다고 모의고사를 못 보면 지금 이때에만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지 않고, 시험에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더 큰 불안감이 엄습한다. 


차마 이런 나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실체 하는 내가 그랬는걸. 도무지 나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그럴 시간에 영단어를 공부하는 것이 더 도움되지 않을까? 도대체 어떻게 행동으로 옮기는 습관을 들일 수가 있을까? 매 순간이 감사와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차려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 시험 불안을 없애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글쎄다. 내가 주로 문제를 틀리는 이유가 바로 1) 모르는 어휘가 지문의 핵심문장에 들어있다거나, 2) 지시문을 제대로 안 읽거나, 3) 선지를 제대로 안 읽는 것이기 때문에 모르는 어휘가 나온다면 최대한 유추를 해야 하고 지시문이나 선지를 제대로 끝까지 읽되 동시에 꼼꼼히 읽어야 한다. 거기에 주어진 시간 안에 들어오기도 해야 하고. 모든 단어를 알지 못함 + 신속히 읽어야 함 + 전체적으로 다 읽어야 함. 이 3가지가 조합을 이루니 복불복일 수밖에. 



벚꽃이 지려던 때에 텝스도 함께 져버렸다



이렇게 글을 쓴 이후, 나는 어느 날 원하는 점수를 얻었다. 

여러 번 자주 시험을 본 탓에 운이 좋은 때가 있었겠거니 하고 생각한다. 

물론 공부라는 것을 한 덕분에 1년 전에 비해 전반적인 성적은 조금씩 상승한 상태였지만, 목표한 점수를 얻을 정도로 수직 상승하지는 않았던지라 ‘운’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와닿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성적이 나오던 날, 성적이 적힌 문자가 핸드폰 화면에 떴다. 성적을 확인한 나는, 학교 행정실에서 근로장학생으로 근무하고 있던 나는, 바쁘디 바쁜 공간의 흐름을 깨치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성적에 감탄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복도로 나가서 나의 텝스 탈출을 응원한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고 카톡을 했다. 최근 몇 년간 이렇게 극적으로 감격스러운 순간이 있었을까? 성적을 받고 난 이후 몇 분 간은 나 혼자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마냥, 비현실적인 감정을 만끽했다. 


드디어 끝났다. 일 년 반이라는 세월이 길고도 짧았다면 그렇다. 


"텝스, 너에게 참 많은 시간을 할애했구나. 이제 다시는 널 보지 않았으면 해.
나는 너를 마주하기에는 참 부족한 사람이었더라.
단 한 번의 운이 작용하지 않았다면, 너를 다시 보지 않을 기회를 갖지 못했을 거야.
나에게는 벅찬 너, 이제는 너를 놓을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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