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기 때문인 것일까
나는 왜 뒷담화에 대한 주제로 글을 쓰게 되었을까, 그리고 왜 글을 써야만 한다고 생각을 했을까. 우선 단적으로는 회사 생활이 지옥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행복하지도 않았던 시간들을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척을 진 사이도 아닌 회사 사람이 나를 멕였다.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 사이였고 최대한 업무에 필요한 내용과 스몰토크 정도를 해 온 사이였는데, 나한테 직접적으로가 아닌 제3자에게 나에 대해 말하는 과정에서 당해서 그 사람의 언행에 처음으로 당황을 하고 말았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앞선 글에도 언급했지만 나는 친근하다는 소리를 어릴 때부터 자주 들어왔을 정도로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면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고, 잘 들어주고 없던 관심도 이끌어내어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친근감을 유발하는 과정은 아무래도 웃음인데 상대방이 편한 느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나부터도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서 먼저 그리고 자주 웃는 편이다. 최근 두세 달간 회사 내 A 직원을 조심하게 되면서부터는 같은 팀 직원들과는 자주 웃는 편이 아니었는데, 오늘 어쩌다가 상사분들과 (A 직원과 친한) B 직원과 점심을 먹게 되었다.
점심을 먹는 도중 상사 분께서 특정 주제로 이야기를 꺼내셨고, 상사 분께서 웃기시려고 한 포인트에서 너무 웃겨서 크게 웃었다. 그랬더니 B 직원이 "00 씨가 웃음이 헤프죠?"라고 상사분께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간 나에게 적대적으로 대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래서 헤프다는 의미가 부정적인 뜻 말고 또 있을지 곱씹었다. 당연히 헤프다는 말이 긍정적으로 사용될 리가 없었다. 자리로 돌아와서 '헤프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국립국어원에서 제공하는 정의는 '말이나 행동 등이 신중하지 못하거나 아끼는 데가 없이 함부로 하는 듯하다'였다. 역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한 건 아니었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크게 웃어주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그때의 분위기를 더 경쾌하고 밝게 만들고 싶어서, 웃기려고 의도한 상대에게도 본인의 의도를 충분히 달성했다고 제대로 알려주고 싶어서. 그리고 정말로 나는 여러 사람들이 생각해 내는 드립과 유머들이 진심으로 하나하나 재미있고 웃겼다. 그럼 왜 B 직원은 그렇게 말해야만 했을까? 내가 웃는 게 그렇게도 헤퍼 보였나 과거를 되짚어봤다. 헤프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는 했다. 이 또한, 거진 10년 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박장대소하는 나를 보고 '가벼운 거 같다'라고 큰 소리로 대놓고 평가하던 무례한 두 명의 여성들이 있었기 때문에. (애초에 나랑 친해질 생각이 없었던 사람들이었고, 그런 사람들은 내가 아니었어도 누구든지 욕했을 것이다. 혼자였다면 하지 못했을 말들을 둘 이상이니까 내뱉기 더 쉬웠을 터.)
나는 나를 욕하는 사람들과는 잘 지낼 수 없다.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회사라는 곳에서는 자신을 욕하는 사람들과도 능구렁이마냥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곳이라는 걸 암시한다. 물론 능구렁이처럼 지내지 않는 사람들도 많기는 하다. 그냥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채로 지내는 것이다. 회사에는 1) 서로 욕해도 표면적으로 잘 지내거나 2) 서로 욕하고 껄끄럽게 지내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지내고 있는 것 같다. 두 부류를 제외하고서는, 3) 서로 욕할 대상을 공유하고 잘 지내거나 4)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개인플레이를 하는 부류도 존재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2), 3)의 부류에 속할지 몰라도 1)에는 속할 수 없다.
나만의 철칙이기도 한데, 나는 앞으로 친하게 지내고자 하는 사람들과는 이미 친해지기 전에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파악하려고 하고, 이후에 생기는 오해나 불통 등은 대화를 통해서 해결해나가고자 하는 편이다. 가장 중요하게, 이미 친해지기 전에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관계인지를 판단하고자 한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사람이라면, 내가 욕할 필요가 없을뿐더러 서로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은 당사자와 둘이서 드러내놓고 최대한 평화롭게 해결해 온 편이라는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성인이 되고 나서, 그리고 지금의 직장 이전에 다녔던 직장들에서도 마음이 맞아 회사 동료 이상으로 친해진 사람들과도 그렇게 지냈다. 현재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내가 그렇다고 해서, 상대도 그럴 것이라 전제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적어도 나는 내가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들과 생각이 맞지 않았을 때 무작정 그냥 욕하기보다는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나와 같은 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나는 A직원이 나에 대해 아니꼽게 생각한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느끼고 있던 차였다. A 직원의 특징이 하나 있다면, 예민한 만큼 뭐랄까, 인지능력이랄까 양심이랄까 아직은 뭐라 특정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양심 같은 것에 대한 민감도도 높아서 본인이 뒷담화를 했고, 그 뒷담화가 정도에 지나쳤다고 생각하면 뒷담화 상대를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본인이 내 눈을 회피하려고 한다든지, 갑자기 태도가 차가워진다든지, 뜬금없이 잘해주려고 한다든지 앞뒤가 맞지 않는 언행들을 보여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뒷담화 행위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는 명백했다.
내 앞에서 보여준 행동과 내가 직접 들은 말들로 인해 알게 모르게 뒷말이 오간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고, 내가 특별히 문제 될 행동을 하지 않아도 그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로 욕을 먹을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내가 A 직원과 잘 지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즉 사무적인 응대가 아니고서야 내가 나의 에너지를 써가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고, 웃어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어차피 A직원과 그녀와 친한 직원들은 내가 웃어주든 안 웃어주든, 그것에 대해 일일이 그들끼리 논할 테니. 나는 어쩌라고의 심정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나인데, 내 주변의 서로 욕하면서 겉으로는 웃으면서 지내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그럴 수 있는 것도 참 비위가 좋다 생각했다. 어쩌면 그들은 혜화동에서 연극도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 비판과는 구분되어야 하지만, 아무래도 비판의 범주 안에는 '뒷담화'로 보일만한 여지가 아주 충분히 있다. 역으로 뒷담화를 비판과 동일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비판의 대상이 도덕적으로, 상식적으로 어긋난 것이라면, 분명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나 별 쓸데없는 주제로 불만을 토로하거나 싸잡아내리는 것이라면 말이 다르다. 예를 들어, 다른 직원의 염색 여부, 액세서리, 말투, 식습관 등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의 개인의 사생활 영역에 대해 논하는 경우다. 또는 하지도 않은 말들에 살을 붙여 과장한다거나 본래 그 의도가 아닌 말을 다른 의도로 해석하여 말을 전한다거나 하는 경우도 별 쓸데없는 말들이다.
내가 느낀 뒷담화의 근원은 분명 개인이 가진 열등감이다. 뒷담화라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에 대한 정당화 과정을 거치고(그 정당화가 늘 합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중요함) 상대가 틀렸다는 것에 대해 우위를 부여하면 자신이 그 상대보다 높은 곳에 있다는 생각에 이를 테고, 이런 식의 반복적인 뒷담화를 통해 본인의 부족한 열등감을 채워 넣는 것이다. 살아온 세월 동안 비판이 아닌 별 쓸데없는 내용들로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로 깔아뭉개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봐왔다. 그들 모두가 타인을 이해하지 못할 지적능력을 가졌을까? 분명 아닐 것이다.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악순환의 길로 빠져드는 것이다.
뒷담화를 하면 발전이 없다는 글을 어딘가에서 읽었다. 이 문장 또한 열등감과 같은 맥락에서 파생되었다. 남이 명품을 쓰고, 돈을 잘 벌고, 자식들이 잘난 게 그렇게 배가 아픈가? 질투와 열등감은 정말이지 쓸데없는 감정을 만들고, 별 쓸모없는 행동으로도 이어지게 한다. 최근에 본 맘카페 글에서는 명품을 쓰는 어떤 엄마가 짝퉁을 쓰는지 확실한 것도 아닌데 그것을 본 다른 엄마들이 짝퉁을 쓴다고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그 엄마를 따돌림시켰다고 한다. 이유도 참 웃겼는데, 이 엄마가 평소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니 에르0스를 쓸 급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보기에. 아니, 사람 계급 나누어서 명품을 파는 것도 아니고, 어쩌라고. 남이 쓰든 말든, 쓸만하니까 쓰고 짝퉁이면 짝퉁을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이겠지. 그게 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인지, 비싼 액세서리 하나 쓰는 것이 뒤통수 때린 것과 동일하게 이해되는 그들의 우물 속이 참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더욱 애달픈 현실은, 뒷담화가 일상인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다는 것이다. 뒤에서 타인에 대해 논하는 것은 둘째의 문제이고, 첫째의 문제는 그 속에 악의가 담겼느냐 아니냐이다. 그리고 뒷담화를 하는 사람들 중에서 악의를 가지지 않는 사람을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와도 같았다.
나 또한, 뒷담화를 통해 우위에 서고 싶은 욕구를 셀 수 없이 느꼈다. 그리고 행동으로 옮긴 적도 있다. 앞선 글 또한 나의 토로이지만, 당사자인 그들의 입장에는 뒷담화에 불과할 것이다. 엄연히 말하자면, '1차적 뒷담화'에서 파생된 '2차적 뒷담화'라고 할 수 있겠다.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더 어릴수록 이성이 작동하지 않았고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부족했으므로 생각한 그대로 내뱉고 행동으로 이어지기 쉬웠다. 지금도 내 삶에서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런 면이 없잖아 있기는 하다. 부자인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내 집마련을 했다는 사람을 보면, '부모님 손 빌렸으면 자수성가는 아니겠네, 쉽게 얻는 건 쉽게 잃어버리기도 쉽지 않겠어?'라는 식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나 스스로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것에 비해 달성하고자 하는 경제적인 목표가 높기 때문에 그 사이의 간극에 대한 불만족을 저런 식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결핍을 자주 성찰하고 인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조심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정말로 궁금하다. 뒷담화를 하면 뭐가 나아지는지. 뒷담화 하는 그 순간 본인이 우위에 있다고 느끼면 앞으로 뭐가 달라지세요? 그 상대보다 자신이 더 나을 것이라 스스로 믿는다면, 정말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애초에 일말의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뒷담화가 옳지 못한 행동이라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양심에 찔리는데도 불구하고 1) 뒷담화를 하지 않으면 자기만 도태되니까 2) 뒷담화를 한 후에는 후련하니까 등의 이유로 지속적으로 이 행동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그리고 양심에도 찔리지 않아서 뒷담화를 물 흐르듯 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뒷담화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열성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뭐가 되었든 간에, 뒷담화를 하면 자기에게로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다. 딱히 종교적인 해석은 없다. 그저 자기가 바라보고 생각하고 행하는 대로의 세상에서 자신이 살아가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같은 팀 직원들이 여러 명의 상사들에 대해 돌아가면서 깐다. 상사분들은 이를 알까? 어떤 상사는 본인이 직원들과 정말로 친한 줄 알고, 자신은 그 타깃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시는지 직원들과 모이면 다른 상사분을 욕하는 데에 열심히 동조하시는데 언젠가는 진실이 드러날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 인간이 나약하다는 사실에 기반한다면 뒷담화를 왜 하는지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본능적으로 자존감에 스크래치 나는 일은 방지하고 싶은 것이지 않을까. 다만, 뒷담화가 당연시되는 사회문화로는 흘러가면 안 될 것이다. 뒷담화가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뒷담화'라는 검색어로 책을 검색해 보니 '아직도 뒷담화 하시나요'라는 제목의 책이 나와있더라. 종교 불문하고 이 책을 읽어볼 생각이다. 이 책의 앞선 시리즈는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이다. 그만큼 성인이 되기 어려운 걸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주변에 정말 뒷담화를 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란 어렵다. 뒷담화를 아예 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대로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 속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으며, 그룹 내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도태되는 것은 이미 정해진 앞날이 되어 버린다. 혼자가 될 위험을 감당하고서라도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뒷담화를 하지 않는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고,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타인을 부정적인 시선에 두지 않기 위해서, 나 스스로 '비난'과 '비판'을 정밀하게 구분해야 할 것이고, 감정적으로 올라오는 분노를 다스려야 할 것이고, 나만큼이나 상대방도 주관적인 관점들 속에서 진실을 분별해 내야 할 것이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정확히 말하자면, 좋은 사람보다는 누구에게도 해가 되고 싶지 않고, 해가 되고 싶지 않다는 수준을 넘어서 선한 영향력을 내뿜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간혹 삶의 순간들이 내 목표로 나아가고자 하는 과정들에 개입하여 저지할지라도, 이를 흘려보내고 더 큰 뜻을 도모하는 이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얼마나 더 무엇을,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