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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크로치 Apr 11. 2023

박사과정이냐 취업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석사학위 소지자의 일상 딜레마



면접, 3시간 전



면접을 3시간 앞둔 나의 상태.


지금 근무하고 있는 B연구원에서 새로운 포지션으로 채용공고가 올라와서 지원했고, 감사하게도 서류합격이 되어 오늘 면접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앞으로 3시간 후인데, 오늘은 면접 전후의 상태를 기록해보고자 한다.


어제까지는 아무 생각이 없고 도무지 면접을 준비할 수가 없었다. 그냥, 면접이라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기 싫었던 이유가 컸던 것 같다. 그래서 자기 직전까지 면접 시에 제출할 서류들만 준비해 놓고서는 면접 예상질문을 뽑아본다는 등의 준비는 일절 하지 않았다. 면접 당일에도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준비 시간이 없다는 건 알았지만, 출근해도 급한 업무가 없다면 면접준비를 몰래 해도 될 것 같았다. 정말로 어젯밤에는 면접 때문에 밤의 평화를 깨뜨리고 싶지 않았었다.


그렇게 오늘 아침, 면접 당일이 되었다. 정장을 챙겨 입고서 평소와 조금 빠르게 출근길을 나섰다. 예상대로 당장 오늘 급하게 해결할 업무가 없었기 때문에 아침부터 부랴부랴 자기소개와 예상질문 몇 가지를 뽑아냈다. 그래봤자 1) 자기소개, 2) 장단점, 3) 마지막 포부 정도이지만. 이 이상으로는 준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슨 질문들이 나올지 예측할 수도 없었고, 기본적인 질문 외에는 더 예측하고 싶지도 않았었다. 반은 준비로, 반은 임기응변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미리 준비해서 암기를 한다고 한들 자연스럽게 밖으로 내어야 하는데 그 또한 시간도 부족하고 연기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 준비한 3개의 질문에 대한 답변도 최대한 길지 않게 준비했으나, 얼마나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미 점심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해서 답변을 자연스레 읽는 연습을 해보았지만, 길지 않은 시간 탓에 전부 다 외우지는 못했다. 근무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잠시 빈 사무실을 찾아서 연습을 더 해보아야 할 것 같다.


짧은 연습시간 동안 내가 말을 잘하면 좋겠다고 무작정 생각했다. 내향적인 성격 탓에 말을 많이 안 해보아서 그런 것인지, 교수님들처럼 아나운서처럼 말을 매끄럽게 길게 하지는 못한다. 생각해 보니 길게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에는 생각도 길게 하지 않은 탓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어서 3시간 후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쯤이면 나의 면접이 끝나있을 테니, 뭐가 되었든 간에 끝났다는 느낌은 참 마음이 홀가분할 테지.


그런데 끝나는 건 좋은데, 그래도 이왕이면 후회는 없게 면접을 끝내고 싶다. 이 포지션에는 붙거나 안 붙어도 상관이 없다.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 이 연구원에서 별로 좋지 않은 경험을 겪었으므로 지내는 데 딱히 편하지는 않기도 했고 차차 직장생활이 매너리즘에 빠져가던 터라 채용이 간절하지가 않다. 그렇지만, 현재 상황에서 대안이 없기 때문에 유일한 옵션이기도 하기 때문에 간절한 것도 맞는 모순적인 상황이다.



면접, 1시간 전



예정된 면접시간보다 한 시간 앞서서 특별휴가를 내두었다. 같은 건물이니까 30분 전에만 특별휴가를 쓰고 퇴근하면 되지만, 면접 준비를 당일에 하는 나로서는 아무래도 연습 시간을 조금 더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퇴근을 찍고 자리를 옮겨 빈 사무실을 찾아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헛헛한 공간에 불도 켜지 않고(불을 켜면 사람이 있는 줄 알고 다른 직원분들께서 기웃거리실까 봐 켜지 않았다) 한가운데에 놓인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뭐랄까, 어두운 공간이라 그랬을까? 알 수 없는 서글픔까지 몰려왔다. 게다가 오늘은 바람도 세게 불고 창문을 때릴 정도로 빗방울이 난리였던 우중충한 날이었으므로, 흐린 날에 불도 켜지 않은 방에 혼자 앉아 있으려니 이유 모를 감정들에 휩싸이는 건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감정들이 언제나처럼 긍정적이었으면 좋으련만, 오늘은 왜인지 모르게 그 감정들이 참으로 부정적이었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부정적인 감정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좌절의 바닥으로 치닫는 답이 없는 감정들이 아니었다. 그냥 '나는 왜 최저시급을 받기 위해 오늘의 면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사회과학계열의 연구직을 희망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지금의 연봉의 2배 이상은 받을 수 있는 전문직을 택했을 것 같은데'라는 편익과 기회비용을 넘나드는 사고들로 야기된 감정들이었다. 대개는 아쉬움과 후회의 감정이었고, 이름 모를 막막함과 불확실함도 아주 큰 파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불확실함의 이유에는 우선, 오늘의 면접에 대한 대비가 잘 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 크게 자리하고 있지 않았을까 한다. 면접에는 무슨 질문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완벽하게 준비하기란 불가능하지만, 불가능하다면 임기응변으로 메꾸어야 하는데 나는 생각 외로 임기응변에 강한 스타일은 아니다. 과하다면 과한 정직한 성격 탓에, 과장을 하거나 거짓말을 해야 하는 순간에 아주 짧은 찰나에 고민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면접에 대해 불안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아주 기초적인 예상질문만을 선별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정리하여 하루 반나절을 외우고 외웠다 


면접시간에 다다르는 동안, 준비한 자기소개와 장단점, 포부를 전부 외워갔다. 각 질문 당 2-3 문장의 짧은 답변을 준비했으므로 암기에 그렇게 큰 시간이 요구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가 외운 답변이 너무 어색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한 티만 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읽힐 수 있도록 여러 번 반복하여 말했을 뿐이다. 


이제 시간이 다 되었으므로 남은 시간 동안 면접을 준비하고 잘 외워서 우선 다녀오도록 하겠다. 







면접 



오래간만에 몰입했던 20분이었고, 오전부터 오후까지 계속 면접 내용을 읽으며 연습한 탓이었는지 결국 면접 중에 목소리가 쉬어버렸다. 면접이 끝날 때쯤에는 목에서 쇳소리가 났다. 목으로 소리를 내지 말고 배로 내라는데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발표할 일 등이 있을 때 발성법을 다시 배워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KFC 징거더블다운맥스를 픽업해서 가장 편한 내 침대 위에 걸터앉아 유튜브를 보며 먹었다.


사실 햄버거를 사러 가는 버스 안에서의 나는 상태가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젯밤에는 면접 때문에 신경을 쓰기 싫어서 스트레스를 받기 싫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가, 출근해서야 부랴부랴 면접을 준비하고 오전부터 점심시간, 오후까지 거의 7시간 가까이를 면접 하나만 생각하면서 소리 내어 읽고 외우고, 잠시 다른 생각에 빠지고, 빠졌던 생각들에서 돌아오는 데에 썼다. 7시간을 내리 한 가지에만 집중해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실전이었던 약 20분간의 시간 동안 실수하지 않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데에 초집중했더니 두통이 왔고, 눈알이 빠질 것만 같았다. (물론 눈알이 빠질 것 같은 두통은 햄버거를 구입하는 순간 다 사라져 버렸다.) 요 근래에 업무를 제외하고서 이렇게 몰입해 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면접은 전반적으로는 무탈했지만, 내가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한 질문이 하나 있어서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생각하기로 결정했다. 그 질문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범위에 있었다. 공고가 올라온 프로젝트와는 큰 연관성이 없는 내용의 질문이었기에 정말 예상할 수가 없었고, 면접관께서도 내 자기소개서를 보고 연계하여 주신 질문이라고 했기에 면접관 개개인이 어느 정도의 범위까지 연계하여 질문을 내어 주시는지는 알 수 없다. 쿨하게 잊어버리는 것이 답이었다. 이미 되돌릴 수도 없는 과거이기 때문에 더더욱 바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 질문 내용에 대해 평소 알아봐 두지 않은 나의 무지는 후회되었지만 말이다.


저 질문 하나로 인해 불안해하는 나의 심리적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 포지션을 내가 원하고 있다는 것. 나의 불안은 나의 간절함을 반증했다. 면접 전에는 그렇게 절실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면접장에 가고, 면접을 보고 나니까 '절실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나의 절실함'이 사실은 '그토록 절실하고 절실했던 내 속의 진심'이었다. 앞서 말했듯 이 자리가 아니고서야 아직까지는 괜찮은 대안이 없기 때문에 이 자리라도 되어야 계속 생활비를 벌어 살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설사 대안이 있었더라도 그 대안에 내가 100% 취업이 될 보장이 없고서야 나는 불안해하지 않았을까 한다.


여하튼 이미 돌릴 수 없는 현실은 그대로 놔두고, 이제부터는 홀가분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그것이 내 정신건강에도 옳은 처사이다. 면접에 붙든 간에 떨어지든 간에 회사 사람들의 생각도 의식할 필요도 없다. 나보다 더 적합한 지원자가 합격을 한다면 더 뛰어났기 때문에 그런 것일 테니 아쉬워할 이유가 없다.


분명 나에게는 다른 길이 기다리고 있다.



박사과정

취업 사이의

딜레마



박사과정을 고려하고 있던 나는 당장 박사과정을 시작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결론을 냈다.


가장 큰 이유는 박사과정에서 무엇을 공부할 것인지, 즉 전공과 연구주제를 택하지 못했다.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블루오션에 해당하는 내 전공은 국내에서 제대로 발전이 되어있지 않은 탓에 결국은 해외대학을 노려보아야 하는데 해외로 박사과정을 가기에는 여러모로 부담이 컸다. 그래서 국내대학으로 알아보고는 있으나 딱히 내 관심사와 부합하는 전공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지금 내 전공과 융합연구가 가능한 학과를 몇 개 선정하여 각 학과에서 기초적으로 읽히는 책들을 읽어보는 단계를 거치고 있다.


딱히 교재를 구입하여 보고 있지는 않고, 전자책으로 볼 수 있는 책들은 전자책으로 구매하거나 빌려서 읽으려고 하고 있고, 모교의 도서관을 졸업생도 이용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 다녀보려고 한다. 아마 전공서이니 전자책보다는 학교 도서관에서 더욱 관련 서적들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렇게 생각을 한지 채 몇 주가 되지 않았기에 이번주에 졸업생 신분으로 처음 학교 도서관을 가보려고 한다. 퇴근 후에 가기에는 도서관 폐관 시간에 겹쳐서 시간이 애매하기도 해서 아마 주말쯤 처음 가볼 것 같다. 학교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루트를 뚫어놓은 이상, 아마 주말마다 도서관에 가지 않을까? 아니, 가야만 하지 않을까?


국내대학을 목표로 뭐라도 공부하고 준비하려고 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도 해외대학에 대한 미련은 버릴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한다고 해도 과정 중간에 학교에서 제공하는 여러 제도를 이용하여 수개월~수년에 이르는 해외대학 파견 등을 다녀올까 하고 있다. 내가 원한다고 무조건 되는 것은 아니겠으나, 기회가 있다면 그리고 상황이 된다면 지원해보고자 한다. 한 치 앞도 모르는 내 미래이기 때문에 재밌기도 한데, 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뭐 그렇다.


게다가 내 박사과정은 나 혼자만 결정해서는 안 되는 문제이다. 추천서를 써주시는 석사과정의 지도교수님께도 상담을 요청드려야 한다. 지도교수님께서 납득을 하셔야만 나도 마음이 편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사실 작년 졸업 이후로 지도교수님을 뵙지 않은지 오랜 시간이 흘러서 잘 모르겠다. 어차피 박사과정 지원 전에는 연락을 한 번 드려야 하니 그전에 교수님과 상담을 나눌 시간이 있지 않을까.


다음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돈이다. 박사과정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여러 장학제도를 통해 학비를 적정 수준에서 면제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대학으로, 어느 전공으로 갈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경제적 타결책은 가시적이지 않았다. 생돈을 날리기에는 소소한 월급으로 모은 적금이 그리 많지 않다. 돈만 생각하면, "나는 왜 도대체 사회과학 계열의 전공을 택해서, 심지어 연구직을 오려고 결정했는가?"란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하고 싶은 연구이지만, 돈 때문에 그 과정이 온전히 즐겁지 않달까. 이미 최저시급으로 버텨내고 있는 시간들이 길었기에 크나큰 경제적 위협인 박사과정을 감수할 용기가 나질 않는다. 박사과정을 시작하는 대로 당장 조교와 연구 및 장학제도를 고민의 여지없이 지원해야 하는 판이니까.


마지막으로 내가 생각하는 박사과정생의 모습에 내가 도달하지 못한 듯하다. 내가 생각하는 박사과정생은 말 그대로 '박사'와 거의 동일하다. 전공과 관련하여 모르는 개념이 없고, 설명도 술술 하고, 학부와 석사과정생들의 부족한 점들을 보완해 줄 수 있는 멋진 선배 같은 모습이랄까? 나는 그 모습에 아직 다다르지 못했다.


석사과정생이 2-3년간의 시간을 거쳐 학부생과는 다른 수준의 공부를 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석사과정생이 정말 많다. 석사과정생 모두가 박사과정을 고려하지도 않고, 다니고 있는 회사의 승진이나 이직을 위한 스펙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석사학위를 따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박사과정을 고려하고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학기에 2-4개 내지의 수업들을 듣고 습득하는 정보량이 상대적으로 너무 적었다고 느껴왔다. 부족한 만큼 개인적으로 시간을 더 투자하여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만, 나는 한 학기에 4개씩의 수업을 들었던 초반 3학기를 제외하고 이후에는 사실상 주 40시간 이상 풀타임으로 근무하며 생활비를 버는 쪽을 택했기 때문에 학문적인 성장이 더디었다.


부족한 지식을 지금도 틈틈이 채워나가야 하는 것이 맞으나, 퇴근하고 운동 1시간만 하면 쓰러져버리는 피로감에 내가 원하는 수준까지 시간을 활용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적어두고 보니, 나는 박사과정에 가지 말아야 할 이유를 수도 없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취업의 길을 택하고, 오늘 면접을 본 것이겠지. 지금 가진 스펙과 경력으로 최저시급이나마 받으며 소소하게 돈을 모으며 적은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조금씩 공부를 해나가야만 박사과정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도 나는 박사과정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취업으로 기울었다.

언제쯤이 되면 나는 박사과정을 꿈꾸어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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