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희 칼럼] <아주경제>
2023년은 예상했던 것처럼 미디어 산업 입장에서 어려웠던 한 해였다. 미디어 산업 분야만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코로나 기간 동안 상대적으로 선방했던 영역이었기 때문에 미디어 산업이 겪었던 성장의 한계는 보다 크게 느껴졌다. 코로나를 전후로 크게 성장하면서 미디어 산업 전체의 도약을 견인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OTT는 예상보다 빨리 성장 정체 국면에 접어들었으며, 미디어 제국을 건설한 것으로 평가받았던 디즈니는 디즈니플러스에 단행했던 콘텐츠 투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콘텐츠 투자를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코로나 전후로 ‘스트리밍 전쟁’이라는 용어를 등장시키며 기대를 모았던 OTT 시장의 성장 정체는 단순히 OTT라는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체 미디어 분야의 성장 한계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미디어 분야는 타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산업적 가치와 문화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요성이 큰 분야임이 분명하지만 콘텐츠 투자 비용 등으로 인해 성장의 한계가 있는 분야라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국내의 경우 지상파, 유료방송, PP 등 레거시 방송미디어 사업자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으며, 시장에 도입된 이후 성장을 지속해 왔던 IPTV의 성장률도 급격히 둔화되고 있다. 문제는 2024년에도 이러한 국면이 반전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티빙, 웨이브 등 국내 사업자들이 적자 속에서도 많은 투자를 감당하고 있는 OTT의 경우 국내 사업자들이 MAU 등 이용률 측면에서 선전하고 있으나 흑자 전환이 쉽지 않아 보이는 상황에서 넷플릭스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디즈니플러스도 ‘무빙’릴리즈 이후 상승 국면을 이어 나가고 있어 국내 OTT 사업자에게 2024년은 2023년 못지않게 힘든 한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디어를 연구하는 연구자 입장에서 한 해를 돌아보는 마음이 착잡할 수밖에 없는데, 최근 몇 년간 가장 크게 하는 반성 중 하나는 콘텐츠를 많이 챙겨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죄책감이 들 때 하는 일은 인터넷 서점에서 미디어 분야 트렌드 책을 주문해서 쌓아두고 읽는 일이다. 작년부터 필자도 OTT 트렌드와 관련된 책을 공저로 쓰고 있기 때문에 다른 연구자들이 쓴 트렌드 책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연말 연초 가장 먼저 손에 잡은 책은 노가영, 선우의성, 이현지, 주혜민이 공저한 『2024 콘텐츠가 전부다』(서울: 미래의 창)이다.
『2024 콘텐츠가 전부다』에서는 OTT를 다루면서 “느린 성장의 시대”라는 표현을 활용하고 있고, 대표저자 노가영은 「머리말」에서 “국내 영상 콘텐츠 산업은 언제든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13쪽)”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필자는 이와 같은 전망이 미디어를 연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산업이 나아질 것이라는 선의로 할 수 있는 전망이라고 느꼈다. 국내 미디어 산업은 여전히 성장의 여지가 있으며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영역이다. 필자도 선의를 가지고 2023년을 마감하고 2024년 맞이하면서 미디어 관련업에 종사하고 있거나, 국내 미디어 산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용자들이 유념했으면 하는 부분들에 대해 한해를 결산하는 마음으로 다루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글로벌화의 영향이다. 이를 ‘넷플릭스 시너지 vs 넷플릭스 딜레마’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자. 대한민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을 받는 국가고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이 대한민국 미디어 시장 위상 제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넷플릭스 국내 투자에 따른 재원 확보와 국내 제작자들의 글로벌한 인지도 형성, 유튜브로 인한 크리에이터 시장의 성장 등은 시너지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넷플릭스 시너지’라고 해보자. 반면,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의 국내 투자로 인한 종속성 심화와 IP 확보의 어려움 등을 ‘넷플릭스 딜레마’라고 해보자. 이러한 상황을 넷플릭스 딜레마라고 명명해 본 이유는 넷플릭스를 포함한 글로벌 사업자의 투자를 받지 않을 수는 없으나 그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해 왔기 때문이다. 너무도 당위적인 얘기지만 2024년에는 딜레마적인 요소를 줄이고 시너지 창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대한민국 미디어 산업이 아직 성장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이유는 대한민국처럼 이용자들이 자국 콘텐츠를 선호하는 국가가 드물다는 것이며, 대한민국 콘텐츠의 경쟁력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지면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대한민국 이용자들은 까다로우며 그 이용자의 니즈를 반영하려고 노력한 결과가 콘텐츠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져 왔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동반 성장의 중요성이다. 대한민국 미디어·콘텐츠 분야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산업화되어 왔고, 글로벌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레거시 방송미디어 산업이 꾸준히 성장해 왔고, 영화산업이 변별적인 위상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디어 산업의 성장 기반이 무너지게 된다면, 콘텐츠, OTT 등 진흥의 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는 영역의 지속 가능한 성장도 담보하기 어렵다. 변화의 흐름에 따라 점진적으로 레거시 영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고 하더라도 단기간에 산업의 기반이 흔들리게 되면 전체 미디어·콘텐츠 분야가 건강한 방향으로 성장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미디어·콘텐츠 분야의 질적 도약을 위해서는 콘텐츠, OTT에 대한 진흥과 함께 레거시 분야의 존립 기반 마련을 위한 고민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레거시 방송콘텐츠 사업자와 유료방송 사업자에 대한 규제 완화, 그리고 규제 완화를 넘어선 규제 혁신이다. 지금은 국내 레거시 사업자들이 혁신할 수 있는 제반 환경 마련이 필요하며 그를 위한 정책 환경 조성이 이뤄져야 한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성장 가능성에 대한 탐색은 계속되어야 하며 미디어 분야는 느린 성장이라고 하더라도 성장을 위한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되는 분야다. 성장에 대한 선의와 그를 위한 최선이 필요한 시기다.
출처: https://www.ajunews.com/view/20231128081552490
이 글은 같은 제목으로 11월 28일 <아주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