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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 Nov 05. 2021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을때 왜 인지 대답할수 없었다면

3년째 요가 수련을 하고 있다. 요가 수련과 개인 코칭에 지금까지 1억 가까이를 쏟아 부었다고 하면 다들 미쳤다고 하겠지. 하지만 그만큼 3년전 나는 절박했다. 2018년의 나는 변호사도 되었고 나이도 32살, 강남역 한복판에 직장도 있었고 결혼을 한달여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아니 하루하루 일어나는게 지옥이었다고 하면 누가 믿어줄 수 있을까. 

공부해서 얻은 자격증은 허울 뿐인것만 같았고(당연히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전문직 집단 안에서 나는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것만 같았다. 20대 초반부터 꿈꾸었던 결혼은, 그 결혼과정에서의 지난한 싸움과 갈등으로 내 인격의 한계를 드러내보이기에 충분했다.




나 스스로에게 실망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결혼을 하지 않기로 했고, 회사에서 퍼포먼스도 내지 못하고 있었기에 회사도 짤리다 시피 나왔다. 그 순간에도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 모든걸 망친 사람이 '나'라는 높은 자의식 때문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는 어떤 순간에도 나이스하고 전문적이며 실수라는 건 모르고 사람들에게 따뜻하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는데, 


당시의 나, 자아는 무책임하고, 남의 시선에 예민하고, 어둡고, 무거웠고 망가져 있었지만 안그런척 하느라 돌아버리기 직전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든것이라고 생각했던 자아상, 

변호사 라는 상, 커리어 우먼이라는 상, 사랑 받는 예비 신부라는 상, 자랑스러운 딸이라는 상(이건 아직 못내려 놓은 듯 하다만,)을 내려놓은 2018년 여름 정말 나는 깊은 절망속에 빠져 있었다. 남은 것은 정말 자기 혐오와 일말에 자존심 밖에 없었다. 약간의 악다구니도. 




이렇게 살 수 없다. 는 생각에서 요가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나를 특별하게 소중하게 만들어 주는 그 모든 요소들이 사라진 순간에서 뭐라도 잡아야 했고 눈앞에 요가가 있었을 뿐이다. 아니 요가 학원이 있었다고 해야지. 


이렇게 3년 이라는 여정을 이어 오게 될지도 몰랐다. 

(처음에 요가 선생님이 3년 회원권을 권유했을때 "이런 상술"이라며 속으로 욕을 해댔지만, 그 강요아닌 강요를 마지못해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이 여정이 이어져 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건 3년간의 회복의 일기이자, 그 회복과 치유의 끝에서 

이제는 정말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야기"이다. 최근 명상 선생님께서 "어떤 삶을 살고 싶으냐"라고 물었을때 대답하지 못했다. 몇 살에 무엇이 되고, 몇 살에 무엇을 얻고, 몇 살에 어떤 모습으로 살지는 매년 예상하고 고민한다. 하지만 그래서 so what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길래 이렇게 회복과 치유의 끝에서 또다시 질문을 던지는 것일까?

 



이 글의 끝에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한다. 요가수련과, 명상과, 삶과, 일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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